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행 17:21-23)
우리는 과학과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 땅의 사람들은 과학적이지 않은 사실을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나, 성경의 이야기를 믿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과학적이고 이성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 이상한 현상들이 있습니다. 대학가마다 점집이 즐비하고, 텔레비젼에서는 굿을 하는 무당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평범하게 소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성경은 과학적이지 않다고 말하면서, 정작 귀신들과 무당은 인정하며 믿습니다. 로마서 1장 23절의 경고가 한국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이렇게 한탄합니다.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 1:23)” 한국의 젊은이들이 자신을 스스로 이성적이고 과학적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귀신과 점쟁이는 인정하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이미 옛날부터 있었습니다. 고대 아테네는 이성적으로 아주 발달한 곳이었습니다. 근대 과학과 이성이, 고대 아테네의 전통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성적이고 과학적이었던 사람들이 살던 아테네에도, 귀신과 우상이 가득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쓰여진 재단에서 귀신을 섬기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이성적이고 과학적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거부하지만, 정작 귀신과 우상들은 인정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인간은 원래, 하나님을 인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그 하나님께 순종하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대신 찾는 것이, 다른 영적인 대상, 곧 귀신과 우상입니다. 성경은 이것들을 버리고, 하나님께 굴복하라고 요구합니다. 그 안에 평안이 있고, 그가 하나님앞에 섰을 때, 영원한 심판을 피한다고 경고합니다
이 세상에는 세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때로는 부족함이 있을 수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선택합니다. 둘째와 셋째는, 자기 자신 또는 귀신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결국 추구하는 것은 <돈, 명예, 쾌락>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살거나, 귀신과 거래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돈, 명예, 쾌락>으로 자신의 결정을 내립니다.
주권의 문제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중간지대>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선택하거나, 아니면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을 버리고 세상을 선택하는 것, 둘중 하나 뿐입니다. 그런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타나나는 삶의 현상은, 긴장 또는 충돌입니다. 긴장은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과 돌아봄이고, 충돌은 외부의 핍박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마게도냐와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간단히 요약하면, “예수님이 왕이시며, 그 왕을 받아들이라”는 요구입니다. 세상은 왼만해서는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돈, 명예, 쾌락>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놓고,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예수믿는 재미없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복음에 저항합니다. 그래서 복음이 분명히 전파되는 곳에는, 어디든지 긴장과 충돌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인에게 이 두가지 삶의 현상은 계속 일어납니다. 평화의 시간에는 반성과 뒤돌아봄이라는 긴장이 있고, 위기의 시간에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오는 핍박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삶을 포기하지 말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끝까지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에게 미래의 소망이 있습니다.
29a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30b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행 16:29a, 30b, 31)
예수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영적인 문제 뿐 아니라, 육체적인 문제까지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우리가 바라는 방식대로가 아닐 지라도, 하나님은 결국 당신의 의지하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갖혔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감옥 안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면서, 감옥문이 열렸습니다. 감옥을 지키던 간수는 바울과 실라가 탈옥한 줄 알고, 자결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 당시 로마는 죄수의 탈옥에 대해서 간수에게 책임을 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간수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립니다. 자신들이 여전히 감옥에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묻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단순히 영혼의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간수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는 방법과, 가련한 자기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 물은 것입니다. 간수의 질문에,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라고 답합니다. 그가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자, 바울의 말대로, 간수가 직면한 실제적인 문제들이 해결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그의 가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 나가시기 바랍니다. 문제의 답을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영적인 문제뿐 아니라, 육적인 문제의 키도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 예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면, 예수님께서 그 모든 문제에서 우리를 구원해 내십니다. 신비한 방식으로 그 일을 행하십니다.
8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행 16:7-8)
하나님께서 막으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길을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연을 끊으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인연을 맺으시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막힌다고 나쁜 것이 아니고, 끊어진다고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시려는 것이 있고, 이으시려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그 선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바울과 바나바가 다투고 헤어지게 하십니다. 그리고 바울에게 실라와 디모데를 연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이 소아시아에서 전도하는 것을 계속 막으셨습니다. 그로 하여금 마게도냐로 가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가 마게도냐행을 결정하자, 모든 길이 순풍에 돛 달듯이 진행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루디아를 만나, 그녀를 통해, 유럽의 최초 교회가 세워지게 하셨습니다.
범죄한 것이 없는데도, 하나님께서 막고 있는 길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새 길을 여시려는 것입니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하나님께서 끊어내시는 인연이 있습니까? 새 인연을 시작 하시려는 것입니다. 막히고, 끊어진다고, 다 나쁜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려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3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행 14:3b-10)
교회안에 기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병자가 일어나야 하고, 귀신들이 떠나야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생각과 마음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바뀌는 경험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러한 기적이 왜 교회안에서 일어나야 합니까? 그런 기적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적을 통해서, 십자가의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손을 통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기도를 통해 병자들이 고침을 받고, 귀신이 떠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는 발을 쓰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나 걸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은 놀랐고,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여,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교회안에 이러한 기적들이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병자가 고침을 받고, 귀신이 떠나가며, 스스로 고칠 수 없는 마음과 생각이 바뀌는 기적말입니다. 지금도 그런일은 교회 안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더욱 기도하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손을 얹고 기도할 때, 그런 기적들은 지금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우리를 통해 이러한 기적들이 일어나길 기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을 붙잡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다시 기적을 일으켜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복음이 사실이라는 것과, 예수님의 이름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십니다. 기적을 위해 기도하는 은혜와 평강 교회 식구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행 13:38-39)
예수님 안에서만 죄 사함이 있습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죄 사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죄사함을 받지 못하면, 우리는 죄에 대한 대가를 하나님앞에서 반드시 치뤄야 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영원한 심판>이라고 하고, 좀더 구체적인 말로 <지옥>이라고 말합니다.
왜 예수님안에만 죄 사함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값을 우리 대신 치뤄 주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죄는 항상 대가를 요구합니다. 그 댓가를 지불하기 전 까지 우리는 죄의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치뤄 주셨습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로와 질 수 없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죄사함을 받고 의로와 질 수 있다”고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어떤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을 다 수행함으로, 우리 스스로 의로와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규칙을 완벽하게 지킬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값을 우리 대신 치루셨을 뿐아니라, 우리가 성취해야 할 모든 규칙(율법)의 의무를 다 수행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곁에 접붙여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해되지 않는다고 거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하기를,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만이, 우리가 의로와지고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길만이 우리가 장차 다가올 심판을 피하는 길입니다.
22 …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행 13:22b)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정직한 사람은 흠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 할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에게도 실패와 죄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직한 사람은 그것을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온전히 인정하며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십니다. 정직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앞에 설수 없습니다.
사울은 다윗보다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정 시대를 열었던 능력있는 지도자였습니다. 또한 그는 다윗 보다 도덕적으로 깨끗했습니다. 다윗은 부하 장수의 아내를 성적으로 범했고, 수 많은 여인들을 아내로 두었지만, 사울은 단 두명의 아내만 두었고, 도덕적으로 부정한 일을 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시고, 다윗을 선택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정직했고, 사울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추구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의 명예>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정직하지 않은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그런 사울을 간파하고 그를 지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명예>를 더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인정받기 보다, 보이는 사람들앞에서 자기의 명예를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앞에서 자기의 실패와 부도덕함이 드러났을 때, 하나님앞에서 납작 업드렸습니다. 감추지도 않았고, 많은 말로 변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의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죄가 드러났을 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떠나지 말아달라고 애통해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정직함을 받으셨고, 평생토록 그의 삶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앞에서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정직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행 13:11-12)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해야,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말로 설득되어 교회에 나왔다고 해도,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않으면, 믿음은 그의 마음안에 자리 잡지 않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할 때, 비로서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 기도해서 기적적으로 병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기도해서 자기 삶의 문제를 신기하게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보다 더욱 강력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속에서 자기의 생각과 마음이 바뀌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나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생각과 마음을 예수님께서 바꾸어 놓으시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그의 신앙이 놀랍게 자라납니다.
바보라는 섬에, 총독 <서기오 바울>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그 총독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총독 옆에는 <마술사 엘루마>라는 사람이 항상 함께 있었는데, 그가 총독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바울과 바나바가 그 마술사를 책망하며 저주했습니다. 그러자 마술사 엘루마의 눈이 멀어, 앞을 못 보게 되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총독은, 예수님의 능력에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이 계속 약해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더이상,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에서 능력을 나타내실 것을 갈망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은 계속해서 약해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안에 있는 능력이, 우리를 통해서 다시 세상에 나타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42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행 10:42-43)
만약 누군가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세가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나의 왕이시다. 둘째, 예수님은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 셋째, 예수님께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신다.” 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가지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착각하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을 똑같이 여기는 것입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예수님에 대해 압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1) 예수님이 왕이라고 믿는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말씀앞에서 자기를 꺽고, 예수님의 뜻을 따릅니다. 2)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신다고 믿는 그리스도인은, 죄에 떨어질때마다, 죄를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3) 예수님께서 산자와 죽은자를 모두 심판하신다고 믿는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살면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삽니다.
만약 누군가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 위와같은 일들이 그의 삶에 일어나고 있지 않다면, 두가지의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닌것입니다. 예수님을 알지만, 순종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둘째, 아직 너무 미성숙한 신앙을 가진 것입니다. 아직도 자기 욕심이 너무 강해서, 순종의 삶이 잘 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 순종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29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 (행 10:28-29a)
우리가 가진 생각의 틀을 깨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일을 시작하려고 하실 때, 우리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의 틀>을 깰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 때 여러분이 붙들고 있던 생각의 틀을 믿음으로 깨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방인 고넬료를 만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그 당시에 유대인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것이 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라고 요구하십니다. 베드로는 그 요구에 순종 했고, 그때로 부터 베드로의 삶에서 이방인을 향한 복음 전파가 적극적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새 일을 시작하려고 하실 때, 우리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의 틀>을 깰 것을 요구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홍수로 범람하는 요단강을 넘으라고 하셨고, 여호수아에게는 여리고성을 돌다가 소리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그 요구에 순종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새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각의 틀>을 깨라는 요구하실때가 있습니다. 그 때, 믿음으로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새 일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깨지 않으면, 우리안에서 하나님의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요구하시는 바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점검하고, 믿음으로 생각의 틀을 깨시기 바랍니다.
2 그가 경건하여 …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9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행 10:2,9)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법칙입니다.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포기했다는 뜻입니다. 기도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고넬료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습관대로, 오후 3시에 기도하는데, 천사가 환상가운데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욥바에 가면,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베드로라는 사람이 머물고 있는데, 그를 집으로 초대하라는 것입니다.
고넬료가 그 환상을 경험하고 있는동안, 베드로도 습관대로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이셨습니다. 그 환상에서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고넬료라는 사람이 찾아오면, 의심하지 말고 따라가라는 환상이었습니다.
베드로의 환상이 끝나자, 고넬료가 보낸 하인들이 베드로에게 도착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을 따라서 고넬료의 집에갔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예수님의 구원에 대해서 전하자, 고넬료와 그의 온 식구들이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기도속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신자의 기도 가운데 일어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신자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숨을 쉬지 않는 성도입니다. 가정기도를 살리고, 개인의 기도 시간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34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행 9: 34,40)
하나님의 백성도 쓰러질 수 있습니다. 병들고 실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시편 34편 1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고난이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들은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룻다라는 동네에 애니아라는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중풍으로 쓰러져서, 8년간 침상에 누워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칩니다. 그는 8년간 누웠던 침상을 정리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비다라는 여인은 하나님앞에서 더 분명한 의인이었습니다. 그녀는 가난한 과부들을 볼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해 그녀를 다시 살려 내셨습니다.
하나님앞에서 의롭게 산 사람도 병들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하나님앞에서 열심을 선을 행하다가 넘어졌습니까? 실망하지 말고,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의인의 길을 멈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20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행 8:20,21)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진리앞에서 진실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복음을 이용하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순전한 마음으로 복음을 따르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8장에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 복음을 이용하는 시므온 이라는 마술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1) 그는 복음을 듣고 받아들인 사람이었습니다. 2) 그는 침례(세례)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여기까지 마술사 시므온은 우리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그가 보통의 그리스도인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고 사마리아 사람들은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마술사 시므온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그런 능력을 자신에게 팔라고 요청했습니다. 그가 그런 능력을 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런 능력을 행해서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고, 그들로 부터 돈을 벌겠다는 소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런 시므온의 중심을 간파하고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는 네가 의지하는 돈과 함께 망할 것이다. 너는 복음과 상관없는 사람이다. 너의 마음은 불의에 매여 있고, 너의 마음은 악독으로 가득하다. 너는 그 마음을 회개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혹여나 너의 죄를 사해 주실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복음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되지 마십시요. 복음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시기 발바랍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이용해야 할 것이 아니라,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진리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그가 목사나 선교사 일지라도,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내가 진리앞에 순종하는 사람들인지, 아니면 진리를 이용하는 사람들인지, 두려움속에서 우리 자신을 뒤돌아봐야 합니다.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행 7:54,57, 59)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찌를 때, 듣는 사람들은 두가지의 완전히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하나는 회개이고, 다른 하나는 분노입니다. 성경의 원리에 따르면, 회개하는 사람은 살고, 분노하는 사람은 심판앞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드러내실때, 겸손히 굴복하고 회개에 이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찌르면 당황스럽고, 때로는 화가 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감추고 싶은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하나님앞에서 겸손한 사람은 자기를 굽힙니다. 그리고 말씀앞에서 자신을 복종시킵니다. 그는 생명을 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앞에서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사람은, 분노하며 거절합니다. 그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앞에 서게 됩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감추어진 교만과 위선을 드러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를 갈며 분노합니다. 그들이 감추고 싶은 것들을, 스데반 집사님이 가차없이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스데반을 돌로 쳐 죽입니다. 끝까지 자신들의 수치를 감추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스데반을 죽여서라도 그 수치를 감추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지적한다면, 겸손히 받아들이고, 납작 엎드려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게 되면, 이스라엘 처럼, 세가지 신앙의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첫째는 자기를 감추는 위선이고, 둘째는 분노와 거절이고, 셋째는 죄를 드러내는 대상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드러내실때, 납작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그가 삽니다.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행 7:51-53)
하나님의 뜻을 정직하게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뜻을 발견했다면, 순종하겠다는 결단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정직하게 구하지 않기 때문이고, 또한 순종하겠다고 결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내 뜻에 하나님의 뜻을 끼워 마추려고 하거나, 내 계획을 하나님의 계획인것 처럼 적당히 포장해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계획과 생각이 하나님의 뜻인 것 처럼 포장했습니다. 자신들의 유익을 구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였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오늘 본문에서, 그런 이스라엘을 꼬집어 비판합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영광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선지자들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천사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그런 이스라엘이,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향해서, 스스로 마음을 딱딱하게 했고, 스스로 감각이 둔한 상태로 내 버려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왜 스스로의 마음을 감각없고 둔한 상태로 내버려 둔 것입니까?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정직하게 찾으면, 그들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하는 것을 멈춰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뜻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포장한 것입니다. 그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이라고 포장한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마음이 곧고, 그들의 마음은 할례를 받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 하나님을 대적하는 방향으로 살아왔다고 지적합니다. 정직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깊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그 뜻을 찾았다면 순종하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이스라엘과 같이 책망받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정직하게 구하시기 바랍니다.
17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 1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19 … 교활한 방법을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새 (행 7:17-19)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려고 할 때, 그것을 막는 사탄의 역사도 함께 일어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려는 바로 전 단계에, 사탄의 역사도 강력히 일어납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탄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결국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스데반 집사님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요약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의 설명가운데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애굽왕이 이스라엘을 괴롭히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 되려고 하자, 이스라엘을 향한 고난이 고조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 보면, 애굽왕의 박해는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려는 사탄의 역사처럼 묘사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뜻이 성취 되려고 하자, 이스라엘의 아기들을 죽이기 시작했고,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일깨우려고하자, 이스라엘안에 분열을 일으켜, 모세가 광야로 쫓겨가게 만든 것입니다.
그 모든 사탄의 방해는, 이스라엘과 모세에게 고난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획은 굽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의 방해를 이용하셔서, 도리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들은 결국 출애굽을 하고, 가나안땅에 정착하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이 일어나려고 할 때, 사탄도 일하기 시작합니다. 그 때 성도는 고난을 겪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방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은 굽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방해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혼란스런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말고, 인내로 서 있어야 합니다. 그가 곧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때문입니다.
15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16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행 5:15-16)
믿음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런 기적도 경험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선한 일을 계획하고, 선한일에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베드로와 사도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믿고, 그들 앞에 병든 사람들과 귀신들린 사람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 때 그들은, 병이 낫고, 귀신이 떠나가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자기 삶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들에게 찾아갔고,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곳으로 나가, 자기 삶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그들에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찾아가고 구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기적은 타나나지 않습니다.
또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할 때,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고, 귀신들린 사람들에게 선포할 때, 병이 낫고, 귀신이 떠나가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을 믿고, 여러분도 병든 사람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고, 귀신들에게 떠나라고 명령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고,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삶의 문제가 있다면, 하나님의 사람들을 찾아가 기도를 부탁하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곳에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할머니 세대는 부흥 강사 목사님들에게 찾아가 기도를 요청했고, 기도원에 올라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믿음으로 찾아가야, 믿음으로 요청해야,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행 4:36-37, 5:1-2)
하나님앞에서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정직하다는 것은,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부족한 것이 있으면, 부족하다고 말하고, 감사한 것이 있으면,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 정직하지 않으면, 사울처럼.. 아니니아와 삽비라 부부처럼..버려지게 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예루셀렘 교회에, 자신들의 밭을 팔아 헌금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두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째, 그들이 헌금을 한 이유는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되려는 목적때문입니다. 둘째, 그들은 밭을 판돈 일부를 헌금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에게 전부를 헌금 했다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죽이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죽이신 이유가, 그들이 밭 판돈 전부를 헌금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해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이신 이유는, 그들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속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밭판돈 전부를 헌금하는 것이 아닌데도, 전부를 헌금한다고 거짓말을 했고, 그 헌금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공동체에서 영향력있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거짓말을 통해서, 자기들의 부족함은 감추고, 자신들의 영광을 극대화 하려고 했습니다. 밭판돈 일부를 챙기면서 실리도 챙기도, 헌금을 통해서 명예도 가지려고 했습니다. 그 목적을 위해서 그들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결국, 그들이 거짓말을 한 이유는, 그들의 자존심을 높이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아니라, 자기를 숭배하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그들을 죽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부족한 것은 부족하다고 고백하고, 연약한것은 연약하다고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숭배하게 되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앞에서 거짓말을 서슴없이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2)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행 4:30, 31)
성령충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이 없으면, 신앙을 지킬 수 없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사는 지금의 세상은 더욱 그렇습니다. 이제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모두 쉽게 믿음에서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할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첫째, 우리를 통해서 복음이 전파됩니다. 둘째,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자를 위해 손을 엊고 기도할때, 병이 낫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또한 귀신들린 사람을 향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할 때, 귀신이 두려워 떠납니다. 셋째, 성도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생명있고 능력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령 충만할 수 있습니까? 성령 충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성령 충만은 항상 기도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제자들이 한곳에 모여 기도하자, 성령이 강하게 임재하시고, 모인 사람들이 성령으로 충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이 없으면, 신앙을 지킬 수 없는 세상속에 살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쉽게 신앙에서 멀어질 것입니다.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충만 길은, 진실하고 뜨거운 기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더욱 기도의 자리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2a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4:2a, 12)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을 견고하게 붙드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에 구원이 있습니다. 다른 것으로는 구원이 오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할때, 구원이 이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기 위해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면서 부터 앉은뱅이 된 자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걸을 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말합니다. “금과 은은 우리에게 없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것으로 너에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앉은 뱅이가 일어나 걸었고, 그것을 본 모든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앉은 뱅이가 일어나고, 죽은자가 부활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적은, 예수님의 이름에 능력이 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이름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뿐 아니라, 우리 삶의 문제들도, 예수님의 이름안에서 해결됩니다. 이것이 죽은 자를 살리는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는, 왜 더 이상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이름에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안에 있는 능력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으니 기도하지 않습니다. 혹여나 기도 하더라도,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지 않으면서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 생활 안에는 더 이상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다시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 이름을 의지해서, 끝까지 기도하고, 그 이름을 의지해서, 귀신을 내어 쫓고, 병든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 생활에 다시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지금도 믿고, 계속 기도합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이름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결국 보이실 것입니다.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 2:1-4)
교회는 사람의 능력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세워집니다. 사람의 능력으로 세워지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고 무너집니다. 하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세워져가는 교회는, 복음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힘있게 세상에 드러냅니다.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했을 때, 교회가 만들어졌고, 교회를 통해서 복음이 힘있게 전파 되었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세워집니다. 이 원리는 지금도 동일합니다. 교회는 사람의 재주나 능력에 의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세워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성령께서 세워가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까? 먼저, 주님께 순종을 결심해야 합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사람들은, 주님께 순종을 결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성령님이 임했을 때, 그들을 통해 교회가 시작됩니다. 성령님은 주님께 순종을 결심한 사람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둘째, 성령님은 기도하는 성도들을 통해 교회를 세워가십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기대는 사람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이 기도입니다. 그들이 기도할때, 성령께서 그들가운데 임하시고, 그들을 통해 교회가 세워집니다.
성령님께서 세워가지 않으시면, 은혜와 평강교회는 세워지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께서 일하셔야, 교회가 세워집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두가지가 <순종>과 <기도의 삶>입니다. 이 두가지가 우리 안에 풍성하기를 소망합니다.
책망하십시오. 그러나 또한 긍휼 또한 잊지 마십시요. 하나님도 우리에게 항상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23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행 1:23, 26)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겸손한 사람은 세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둘째,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로 부터 감추어져 있습니다. 셋째,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착하고 충성스럽게 감당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공동체 가운데서 가룟 유다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고, 스스로 목메어 죽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가룟 유다의 자리에 다른 사람을 채워 넣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두명의 후보를 세웠는데, 첫째가 요셉이고, 둘째가 맛디아입니다.
그런데 이 둘 가운데 요셉이 맛디아 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본문 23절은 요셉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반면, 맛디아를 묘사하는 말은 너무 짧습니다. 단지 “하나는 맛디아라” 라고만 묘사합니다.
분명히 초대교회에서 요셉이 맛디아보다 더 잘 알려진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이 아니라 감추어져 있던 사람 맛디아를 선택해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진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하고 겸손한 그를 통해 일 하실 때, 하나님의 영광이 온전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겸손해야겠습니다. 자기를 드러내지 말아야겠습니다. 착하고 충성되게 자기 일을 감당해야 겠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책망하십시오. 그러나 또한 긍휼 또한 잊지 마십시요. 하나님도 우리에게 항상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행 1:11)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십니다. 여러분은 이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 믿음은 기독교 정통 신앙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예수님의 <재림>도 믿어야 합니다. 이 두가지 믿음은 쌍둥이 믿음입니다.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믿음입니다.
죽으셨던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셔서, 그 육체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하늘로 올라갔다는 말은, 상징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몸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늘로 올가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땅에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간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이 땅에 오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언제 다시 오신다는 말입니까? 종말의 날에 다시 이 땅에 재림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종말의 날이 언제인지 알지 못합니다. 성경은 그 누구도 그 날을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날이 가까울수록 이 세상에 나타날 징조에 대해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종말의 징조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모든 민족에게 예수님이 전파된다. 2) 전쟁, 기근, 지진,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게 된다. 3) 그리스도인이 핍박을 받기 시작한다. 4)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를 신이라고 말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5) 성도가 자신의 믿음을 포기하지 못하면, 사회에서 쫓겨나가야 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이 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주님께서 재림 하실 날이 아주 가까이 왔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우리 세대가 될지, 우리 자녀들의 세대가 될지, 아니면 그 다음이 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만약 위의 징조들이 보인다면, 우리는 주님이 오실 날이 아주 가까이 와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을 점검하고, 주님의 뜻 안에 더욱 깨어 있어야 합니다.
책망하십시오. 그러나 또한 긍휼 또한 잊지 마십시요. 하나님도 우리에게 항상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33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34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35 죄인들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들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시리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시편 104편 33-35)
하나님을 즐거워하십시오. 왜 그래야 합니까? 우리가 읽은 본문은 두가지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1) 첫째,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 둘째, 하나님께서 결국 악인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이 두가지를 경험할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을 즐거워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할 것을 평생 다짐하게 됩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듣지 않는 것 처럼 느낍니다. 내가 기도하고 있는데도, 내 상황이 나아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듣지 않는 것 처럼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그렇지 않아 보여도, 결국 하나님은 기도하는 그에게 당신의 선하심을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가, 결국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악인을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 처럼 느낄때가 많습니다. 의인을 고난을 당하는데, 악인은 평안하고 번영하는 것 같을 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반드시 심판 하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원수를 값는 것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고 말합니다. (롬 12:19)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직접 악인을 심판하신 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을 경험할때,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끝가지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고, 결국 악인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인내하는 사람이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결국 그 선하심과 공의로우심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즐거워 하게 됩니다. 기도를 멈추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멈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책망하십시오. 그러나 또한 긍휼 또한 잊지 마십시요. 하나님도 우리에게 항상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8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11 여호와여 그의 재산을 풍족하게 하시고 그의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 (신명기 33:8, 11)
모세는 죽기 전에 레위지파를 축복합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게 하소서! 2) 레위 지파의 재산이 많아지게 하소서! 3)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을 받으소서! 4) 레위지파를 대적하는 자들과 미워하는 자들의 허리를 꺽으사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하소서!
사실, 레위지파는 그들의 조상 야곱에게 저주를 받은 지파였습니다. 그래서 그 저주의 운명대로 살아야 하는 지파였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런 레위지파를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레위 지파는 모세의 축복대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존중받는 지파가 됩니다. 레위지파의 운명은 어떻게 저주에서 축복으로 바뀐 것입니까? 그들이 하나님께 헌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헌신 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길 때, 그들은 그들과 자신들을 구별합니다. 그리고 모세가 우상 숭배자들을 칼로 치라고 명령 했을 때, 레위지파가 나서서 그들을 칼로 칩니다. 그들가운데는 그들의 친구과 이웃이 있었고, 심지어 그들의 부모, 형제, 자녀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위지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그들을 모두 칼로 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헌신을 받으시고, 그들의 운명을 저주에서 축복으로 바꾸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바른 헌신이, 우리의 운명을 바꿉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가족까지도 포기하는 헌신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십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사람을 포기해야 한다면,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삶에 복을 주십니다.
책망하십시오. 그러나 또한 긍휼 또한 잊지 마십시요. 하나님도 우리에게 항상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46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언한 모든 말을 너희의 마음에 두고 너희의 자녀에게 명령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47 이는 너희에게 헛된 일이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 차지할 그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신명기 32:46,47)
성경은 행복을 오래 간질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복을 오래 지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얼마 전,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목사로 살다보면, 여기 저기서 도움을 요청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여러모양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기만 하다보면, 솔직히 마음에 힘듬이 찾아옵니다. 도움에는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도울 수 있는 힘을 주셨다면, 그러한 요청에 바르게 응답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도울수 있는 힘을 주셨는데, 다른 사람을 돕지 않고, 나를 위해서만 그 힘을 쓴다면, 하나님은 더이상 우리를 풍요롭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행복을 오래 간질 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러한 삶을, 자녀들에게도 가르치라고 명령합니다. 그것이 헛되지 않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왜 헛되지 않습니까? 그 길이 행복을 오래 지키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십시오. 그리고 애써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행복을 오래 지키는 길입니다.
책망하십시오. 그러나 또한 긍휼 또한 잊지 마십시요. 하나님도 우리에게 항상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15 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20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겨 그들의 종말이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세대요 진실이 없는 자녀임이로다 (신명기 32:15-16,20)
부유해 질 때 더욱 조심하십시오. 고난이 멈추고 평안이 계속될 때 더욱 조심하십시오. 우리가 깨어 있지 않으면, 부유해질 때 하나님 떠나고, 고난이 멈출 때,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집니다. 이것이 부유함과 평안함 속에서, 겸손을 잃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가 그 부유함에 취해 하나님을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슬픈 노래를 짖습니다. 마치 이 노래는 이스라엘의 미래를 예언하는 노래와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부유하게 될 때, 그들이 하나님을 잊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것을 “그들이 차버렸다” 라고 표현합니다. 무엇을 차 버렸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차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차버린 그들이 선택한 것이 우상과 귀신 숭배입니다. 귀신과 우상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건한 삶은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번영을 준다고 약속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평안함속에서, 더 높은 쾌락을 누리려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차 버린 것입니다. 쾌락을 따라가게 되면,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차버리게 됩니다. 쾌락을 따라가는 것이 우상 숭배입니다. 이 우상 숭배는 우리가 부유해지고, 평안해 질 때, 갑자기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평안과 부요함을 주시면, 더욱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 때 쾌락을 추구하게 되면,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차버리게 됩니다. 그 때, 성도의 삶에 다시 고난이 시작됩니다. 부유할 때, 더욱 깨어 있는, 겸손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책망하십시오. 그러나 또한 긍휼 또한 잊지 마십시요. 하나님도 우리에게 항상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신명기 30:20)
신앙은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오직 나와 하나님만이 내 신앙의 상태를 알수 있습니다.
마음안에 하나님을 두시고, 하나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안에서,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합니까? 성경은 세가지를 요구합니다. 1)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2)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3)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성경은 이것을 우리의 마음상태와 연결해서 이렇게도 표현합니다. 1)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2) 모든 의지를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3) 힘을 다해서 하나님께 순종하십시오. 라고 말입니다. 마음을 다 기울여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의 상태는, 대충 대충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마음이 식었습니까? 그렇다면 다시 회복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회복하려고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의 마음을 회복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신 30:6)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열심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책망하십시오. 그러나 또한 긍휼 또한 잊지 마십시요. 하나님도 우리에게 항상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19 이 저주의 말을 듣고도 심중에 스스로 복을 빌어 이르기를 내가 내 마음이 완악하여 젖은 것과 마른 것이 멸망할지라도 내게는 평안이 있으리라 할까 함이라 20 여호와는 이런 자를 사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그 위에 여호와의 분노와 질투의 불을 부으시며 또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를 그에게 더하실 것이라 (신명기 29:19-20a)
모세는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합니다. 그들이 가나안땅에서 평안히 살게 되어도, 하나님을 떠나면 안된다고 경고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나님을 충분히 경험 했으니, 그 하나님을 떠나면 안된다고 경고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것이 행복을 지키는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떠난 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면, 두가지 현상이 나타납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미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뜻에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하나님과 멀어질 때 나타나는 첫번째 현상입니다.
두번째 현상은, 다른 신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우상은, 우리가 어떻게 살 건 상관없이, 우리에게 성공과 쾌락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멀어지면, 우상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합니다. 우상이 쾌락과 성공을 약속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멀어지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을 충분히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면, 그들에게 저주가 임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복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신 10:13)
여러분, 우리는 이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안에서 이미 말씀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하나님께서 반복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있다면, 그 음성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행복을 위한 길입니다.
책망하십시오. 그러나 또한 긍휼 또한 잊지 마십시요. 하나님도 우리에게 항상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5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6 너희에게 떡도 먹지 못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은 주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명기 29:4,5,6)
하나님께서 왜 고난을 허락하십니까? 두가지 목적입니다. 첫째, 하나님이 하나님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난을 겪고나면, 우리 안에 이 두가지 목적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옷 한벌과 신발 한켤레로, 40년을 살게 하셨습니다. 정말로 가난한 삶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신과 옷이, 40년간 헤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하신 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과 함께하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떡과 포도주를 먹지 못했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아침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뿐이었습니다. 만약, 이 만나가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모두 굶어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매일 만나를 기대하며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칠고 험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그곳으로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만 의지하게 했고, 하나님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살아 남을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남게 하셨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고난으로 이끄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기 시작하면, 우리 삶에 불법이 일어납니다. 불법이 일어나면 관계가 깨어집니다. 관계가 깨어지면, 우리 삶에서 평안이 사라집니다. 하나님만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 평안이 있습니다.
책망하십시오. 그러나 또한 긍휼 또한 잊지 마십시요. 하나님도 우리에게 항상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58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59 여호와께서 네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리니 그 재앙이 크고 오래고 그 질병이 중하고 오랠 것이라 (신명기 28:58,59)
위의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고 경고하십니다. 1) 재앙을 극렬하게 일어납니다. 2) 재앙이 크고 오래 진행됩니다. 3) 그들이 쉴곳을 찾지만 찾지 못하고, 눈이 쇄하고, 정신이 산란해집니다. 4) 마음에 근심과 두려움이 생겨서, 아침에는 저녁을 기다리고, 저녁에는 아침을 기다립니다.
또한, 위에 소개하지 않은 성경 구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1) 질병이 오래고 중할 것이며, 2) 살던 곳에서 뽑혀나가고, 3) 하늘의 별처럼 많던 자손들이 얼마 남지 않게 되고, 4) 만민 중에 흩어져 살게 되며, 5) 생명을 위협받아, 주야로 두려워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삶입니까? 두가지 삶입니다. 첫째, 하나님이 없는 것 처럼 불법을 행하는 것입니다. 불법을 행하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둘째,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으니, 더이상 회개하지 않습니다. 이 두가지 모습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일어날 일들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게 되면 우리 삶에 아픔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책망하십시오. 그러나 또한 긍휼 또한 잊지 마십시요. 하나님도 우리에게 항상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5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15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말하되 아멘 할지니라 (신명기 27:5,15)
하나님을 우상 숭배하듯 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상을 섬기듯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통해 번영과 행복만을 얻으려는 신앙을 말합니다. 사람이 귀신들에게 자기의 번영을 빌듯…큰 나무와 바위 앞에서 자기의 행복을 빌듯…그러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번영과 행복을 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 때, 철연장으로 돌을 예쁘게 다음어서 만들라고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다듬지 않는 돌을 쌓아 제단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그냥 주변에 흔한 돌을 쌓아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왜 제단을 성의 없이 만들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모든 인간의 마음에는 <종교성>이 있습니다. 종교성이란 <절대자>를 의지해서 행복과 번영의 길로 들어서고 싶어하는 마음입니다. 종교적인 마음에는, 하나님과 동행하려는 마음은 없습니다. 단지, 절대자의 도움으로 번영과 행복만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적인 형상물이 있으면, 그것 앞에서 자기의 행복과 번영을 빕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단을 쌓을 때, 그것을 예쁘게 다듬어 만들라고 하지 않고, 그냥 평범한 돌을 쌓아 올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든 제단 자체가 우상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마음은 없으면서, 단순히 제단을 향해 번영과 행복을 비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신앙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신앙을 가진 사람을 자기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그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우상 섬기듯 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책망하십시오. 그러나 또한 긍휼 또한 잊지 마십시요. 하나님도 우리에게 항상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10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1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신명기 26:10-11)
헌금은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둘째,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헌금을 통해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구약에서 헌금은 세가지 목적으로 사용됩니다. 첫째, 이스라엘 종교 시스템을 관리하고 운영하는데 사용됩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교회를 관리하고 유지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둘째, 레위인들에게 생활비를 제공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사역자들의 생활비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셋째, 고아, 과부, 객들을 위해서 사용합니다. 다시 말하면,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사용합니다.
교회는 헌금을 바르게 사용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헌금을 통해 교회를 관리하고, 유지해야 합니다. 둘째, 사역자들의 사례비를 지급해야 합니다. 셋째, 가난한 사람들을 돌봐야 합니다. 헌금을 통해 이 세가지가 잘 집행되고 있다면, 그 교회는 헌금을 바르게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헌금이 이러한 목적대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면, 교회는 돌아봐야 할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교회가 넘치는 헌금으로, 이러한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는다면, 그 역할을 온전히 다하지 못하고 있는 주변 교회들을 돌봐야 할 책임도 있습니다.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은, 성실한 헌금생활의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들입니다. 만약 우리가 정말로 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헌금을 통해서, 그 믿음을 표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헌금이 우리의 신앙 상태를 말해주는 절대적 기준은 아닙니다. 그러나 헌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신앙 상태에 대해서 말해주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헌금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과 돈중에 누구를 주인으로 삶고 있는지 표현합니다. 우리의 헌금 생활을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책망하십시오. 그러나 또한 긍휼 또한 잊지 마십시요. 하나님도 우리에게 항상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2 악인에게 태형이 합당하면 재판장은 그를 엎드리게 하고 그 앞에서 그의 죄에 따라 수를 맞추어 때리게 하라 3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지니 만일 그것을 넘겨 매를 지나치게 때리면 네가 네 형제를 경히 여기는 것이 될까 하노라 (신명기 25:2-3)
사람을 책망하되, 그 책망이 너무 심해서, 다시 일어나지 못 할 정도로 책망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태형>을 허락하셨습니다. 태형은 죄 지은 사람을 때리는 형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태형의 한계를 정하십니다. 40대 이상은 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40대 이상 때리는 것은 형제를 경히 여기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경히 여긴다는 말은, 가치 없이 여긴다는 말입니다. 태형을 당하는 사람이 아무리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도 하나님께서 지은 사람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범죄자를 때리는 이유는, 그로 하여금 다시는 죄를 짖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 그를 죽이거나 망가지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책망하고 징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책망과 징계때문에, 어떤 사람이 완전히 무너지게 해서는 안됩니다. 책망과 징계중에서도 그를 향한 긍휼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책망과 징계의 목적은, 그를 다시 살리는 것이지, 죽이고자 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책망하십시오. 그러나 또한 긍휼 또한 잊지 마십시요. 하나님도 우리에게 항상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14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20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21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신명기 24:14,20-21)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기 바랍니다. 고아와 과부는 그 사회에서 가장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말것을 명령하십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가난한 사람의 재판이라고, 그것을 불의하게 처리하면, 그것이 그의 죄가 된다고 경고하십니다. 그리고 그 죄가 하나님보시기에 죽어야 하는 죄라면, 그는 그 죄로 죽는다고 경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줘야 할 임금이 있다면, 정당하게 지불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만약, 추수를 하고 곡식단을 메고 나오다가, 곡식단이 밭에 떨어지면, 다시가서 주워 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감람 나무 열매와 포도나무 열매를 수확할때도, 수확하고 가지에 남은 것이 있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남겨 두라고 명령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 몫을 챙기지 말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추수한것을 다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떨어뜨린 곡식단이 있다면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고 하시고, 감람나무 열매와 포도 열매를 다 가지라고 말씀하시지만, 가지에 남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알뜰하게 다 따지 말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의 삶에 가난한 사람들이 머물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머물면, 항상 무엇인가를 먹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알뜰하게 산다는 이유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하나도 없다면, 우리 삶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가난한 사람들이 머물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6 길을 가다가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 새가 그의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보거든 그 어미 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7 어미는 반드시 놓아 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되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 (신명기 22:6-7)
다 가지려고 하지 마십시요. 무엇인가가 주어졌다면, 조금 아쉽다고 느낄 만큼만 취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모두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 때부터 죄와 잔인성이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흥미로운 명령을 하십니다. 만약, 길을 가다가, 어미새가 새끼나 알을 품는 것을 보거든, 새끼나 알은 취하지만, 어미새는 취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명령을 하시는 것입니까? 저는 세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인간성을 잃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어미새는 자기의 새끼와 알을 지키려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런 어미새와 새끼를 잡아 한꺼번에 잡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성을 품은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마음입니다.
둘째, 경제적 이유입니다. 어미새를 두고, 새끼나 알만 가져가 가면, 후에 어미새는 다시 새끼를 낳게 됩니다. 그러나 새끼와 어미새를 한꺼번에 다 잡아먹으면, 그 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셋째, 절제입니다. 사람의 욕망은 항상 지나침으로 나갑니다. 욕망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이것은 항상 더 갖고 싶고, 더 먹고 싶고, 더 느끼고 싶어합니다. 이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살면, 인간성을 상실하게 되고, 결국 모든 것을 다 잃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절제를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이 행복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앞에 무엇인가가 주어 졌을 때, 조금 아쉬울 만큼만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정말 복을 받는 길은, 갖고 싶은 것을 다 갖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을 갖되, 조금의 아쉬움을 남기는 것입니다.
15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을 받는 자와 미움을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이 장자이면 17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신명기 21:15,17
모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틀린것을 옳다고하지 마시고, 내가 싫어 하는 사람이라고, 옳은 것을 틀렸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게 이익이 된다고, 옳은 것을 틀렸다고 말하지 말고, 내게 불이익이 된다고 틀린것을 옳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앞에서 모든 것에 공정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복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은, 유산 상속에 대한 율법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문화 속에서, 한 남자가 두명의 여인을 아내로 둘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여인이 낳은 아들 가운데, 자기가 별로 안좋아하는 여인이 장자를 낳고, 자기가 좋아하는 여인이 차자를 낳은 것입니다.
이런 경우, 사람의 마음은 자기가 좋아하는 여인과 그 아들을 향해서 기울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자기가 안 좋아하는 여인이 장자를 낳았다면, 그를 장자로 대우하고, 그에게 다른 아들보다 두 몫의 유산을 남기라고 명령합니다. 자기의 감정이나 기분에 따라서, 장자와 차자의 위치를 바꾸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자연스럽다는 말은, 모든 일을 순리대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자기의 감정이나 기분을 섞어서, 억지로 상황을 바꾸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한 시도 속에서 항상 죄가 발생합니다. 모든 일을 순리대로 공정하게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옳은 것을 옳다하고, 틀린것은 틀리다고 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할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1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신명기 20:1)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걷고 있다면, 그 길을 막는 거대한 고난과 난관을 두려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들이 아무리 크게 보여도, 그 난관 앞에서 주저 앉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국 무너지는 것은 난관이지, 바른 길을 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싸움에 나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합니다. “너희가 적군과 싸우러 나갈 때, 그들이 가진 말과 병거때문에 겁먹지 마라. 대신, 너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해라”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싸움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대적해서 나온 적들의 수가 얼마나 많고 강한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전쟁이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전쟁 앞에 서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서 앞으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십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여도,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전쟁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전쟁이 아니고, 나를 위한 전쟁이라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더욱이 그 전쟁이 죄와 연관된 전쟁이라면, 더욱 그 전쟁에는 승리하지 못합니다. 마치, 타락한 엘리제사장의 아들들이, 전쟁에서 이기겠다고 하나님의 법궤를 가지고 전쟁터에 나갔다가, 모두 몰살한 것과 같은 전쟁이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전쟁을 수행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죄와의 연관성이 없는 전쟁입니다. 그것은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전쟁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전쟁입니다. 그 전쟁을 막는 큰 고난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전쟁을 이기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이같이 하면 그의 피가 네게로 돌아가지 아니하리라 12 네 눈이 그를 긍휼히 여기지 말고 무죄한 피를 흘린 죄를 이스라엘에서 제하라 그리하면 네게 복이 있으리라 19 그가 그의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신명기 19:10,12,19절)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악함은 값을 치루게 하십니다. 연약함이란,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죄에 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반대로 악함이란, 우리가 의도하고 계획함으로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고의적으로 계획해서 남을 해롭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 고의적인 악에 대해서 값을 치루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사람들이 행한 범죄에 대해서 세가지 명령을 하십니다. 첫째, 만약 어떤 사람이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면, 그를 처벌하지 말고 살 길을 만들어 주라고 하십니다. 그의 죄를 용서해도, 하나님께서 나무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어떤 사람이 고의로 사람을 죽였다면, 그도 죽임을 당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에게 정당한 형벌을 받게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셋째, 누군가가 고의 적으로 악을 계획하고, 그것을 사람에게 실행 했다면, 그가 계획했던 악대로, 그에게 값아 주라고 하십니다. 그가 다른 사람의 눈을 해하려고 했다면 그의 눈을 해하고, 그가 손이나 발을 해하려고 했다면, 그의 손과 발을 해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가운데, 다시는 그런 일을 고의적으로 계획하는 일이 없게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앞에서 항상 깨어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지만, 우리의 고의적인 악함은 값을 치루게 하십니다. 우리의 죄가 연약함에서 나왔다면, 용서하시지만, 다른 사람들을 고의적으로 해롭게 하려고 한것은 책망하십니다.
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30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마가복음 15:16-32)
조롱 당했다고 생각될 때, 너무 분노하지 마시고, 복수를 마음에 품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조롱 받았다고 생각될 때, 주님께서 받으신 조롱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아무 죄가 없는데도 조롱을 당 하셨고, 자신을 조롱하는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군병들은 체호한 예수님의 머리를 조롱하듯 갈대로 톡톡 쳤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옷을 벗켜 붉은 망토를 입혀 “네가 왕이다”라고 조롱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너가 남은 잘 구원 하면서, 정작 너는 구원을 못한다”고 말로 조롱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조롱에 합당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모든 조롱앞에서 잠잠 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존심이 너무 강합니다. 내가 조롱 받고, 무시 당했다고 생각되면, 좀처럼 분을 풀지 못합니다. 그리고 복수를 다짐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조롱받기에 합당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조롱 받기에 합당한 죄를 숨기며 살고 있고, 우리는 조롱 받기에 합당한 무능력과 연약함을 숨기며 살아갑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그것들로 우리를 조롱하면, 분을 이기지 못해 합니다.
그때, 예수님의 조롱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조롱받을 일이 없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조롱 앞에서 한발 물러 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본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4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막 15:14-15)
선택해야 할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 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의지해서, 정직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해서 정직한 것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쉬운 선택이 있습니다. 선과 악이 분명한데, 선을 선택했을지라도 나에게 불이익이 없는 선택입니다. 그때 상식적인 사람들은 선을 선택합니다. 어려운 선택이 있습니다. 선과 악이 분명한데, 선을 선택하면, 내가 손해를 볼 때입니다. 그 선택으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잃어야 한다면 그 선택은 더욱 어려운 선택이 됩니다.
빌라도는 어려운 선택 앞에 놓여 있습니다. 선과 악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습니다. 그러나 군중은 예수님을 죽이라고 요구합니다. 빌라도는 전날밤 아내의 꿈을 통해서, 죄없는 예수님을 풀어 줘야 한다는 암시를 받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빌라도는 예수님을 죽일 것을 선택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풀어주면, 예루살렘 안에서 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폭동이 일어나면, 예루살렘의 총독으로 와 있는 자신의 권력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죽이는 선택을 합니다.
우리는 자주 선택앞에 섭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앞에서 정직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자기에게 손해로 다가올 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해서, 정직한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바른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71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72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막 14:71-72)
자기를 의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를 의지하면 베드로 처럼 울일이 생깁니다. 우리의 결심이나 능력이 항상 불완전하기 때문에,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은 결국 베드로처럼 울어야 할일을 마주하게 됩니다. 자기를 확신하거나 의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약속하기를…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버릴지라도 자신은 결코 그렇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베드로가 고난 앞에 서자, 그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그냥 부인한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저주하며 부인합니다. 베드로가 믿었던 그의 결심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의지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결단이나 용기로는 그 고난 속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의지해서 믿음으로 고난 앞에 나가면, 성령님께서 그 고난을 이기도록 도와 주십니다. 우리의 지혜와 분별로는 어떤 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의지해서 주어진 길로 들어가면, 성령께서 지혜와 분별을 주셔서, 그것을 성취할 수 있게 하십니다.
자기를 의지하면 넘어집니다. 그러나 성령을 의지하면, 성령께서 인내하게 하시고, 일을 성취하게 하십니다. 성령님을 의지해서, 여러분에게 주어진 길을 걸으시기 바랍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그것을, 성령께서 도우셔서, 이루게 하십니다.
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막 14:50)
그리스도인들도 고독과 두려움속으로 들어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주로, 나의 죄와 실수 때문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어쩔수 없이 들어가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마음을 준비하면, 그 시간을 더욱 잘 견딜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죽음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 하시길, “할 수 있으시거든, 이 잔을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을 위해 마음을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감당해야할 고통은 십자가의 죽으심 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죽음 앞에서 철저하게 고독해 지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거나, 심지어 배신하고 떠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상황을 이미 다 아시고, 베드로에게 경고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군병들에게 체포 되시자,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혼자가 되셨고, 십자가의 고통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이미 당신의 마음에 준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순종과 인내로 이겨내십니다.
우리도 철저한 고독과 두려움안으로 들어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죄와 실수 때문일수도 있지만,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또는 하나님의 계획속에서 들어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준비 시키십니다. 그 때,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을 준비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성숙한 믿음입니다.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막 14:5,6)
우리는 <나쁜 생각>을 옳아 보이는 말로 포장하여 전달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좋아보이고 옳아 보이는 말이지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않은 말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런 언어 습관을 버리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 죽음을 앞두고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한 여인이 예수님의 머리에 옥합을 깨뜨려 부었습니다. 옥합의 가격은 300데나리온 이었습니다. 한 데나이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고, 이것을 캐나다 기준 최저 시급으로 바꾸면 하루 133불 정도입니다. 따라서 300데나리온은 약 4만불 정도의 가치입니다. 여인은 4만불의 옥합을 한번에 다 쏟아 부은 것입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어떤 제자가 아주 옳은 말을 하며 여인을 책망합니다. 그것을 그렇게 허비하지 말고,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 12장은 그렇게 말한 사람이 가룟유다였다고 말합니다.
가룟 유다의 말은 누가 봐도 옳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말속에 담긴 진심을 간파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자들은 너와 앞으로도 늘 있다. 너가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이라면, 그들을 돌봐라. 그러나 나는 곧 십자가에서 죽는다. 이 여인은 나의 장례를 준비하는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가룟유다의 진심은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었습니다. 그는 300데나리온이 아까웠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진심을 파악하고, 그에게 “가난한 자는 너가 돌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헌신한 여인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너무 정직하지 않은 말을 자주 합니다. 옳은 말 속에 우리의 나쁜 진심을 속여 넣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좋게 보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정직하지 않은 것입니다.
36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막 13:36-37)
예수님이 갑자기 오십니다.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징조가 보이면 더욱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판단하기에 징조가 더욱 분명해 지고 있다면, 더욱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 때, 세상안에 타나나는 징조는 이렇습니다.1) 곳곳에서 전쟁의 소문일 일어나고, 2) 기근과 지진이 일어나며, 3) 난리와 난리에 대한 소문이 심해집니다. (눅 21:9)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징조가 나타납니다. 1) 자기를 사랑하고, 2) 돈을 사랑하고, 3) 거만하고 자랑하며, 4) 부모를 거역하고, 5) 무절제하고 조급하며, 6) 원통함을 풀지 않고 사나우며, 7)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합니다. (딤후 3:1-5)
더 긴박한 징조는 이런것들입니다. 1) 예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일어나고, 2) 그가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고 감옥에 넘기며, 3) 어떠한 표를 받지 않으면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막 13, 계13)
여러분은,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보이에는 마지막이 너무도 가까이 왔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고 경고하십니다.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20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막 13:20)
고난 앞에서 겁먹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수 있는 고난만 허락하십니다. 고난은 무섭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의 상상이 무서울 뿐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만나면 다음과 같이 상상합니다. “1) 고난은 더 심각해 질 것이다. 2) 고난은 오래 갈 것이다. 3) 그 고난때문에 나는 결국 망할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앞서서 이러한 상상을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그 상상력 앞에서 좌절하거나 병들어 버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고난중에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 할 수 있는 고난만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감당할수 없는 고난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감당할수 없는 고난은 우리의 상상력 속에서 나오는 고난일 뿐입니다. 허구의 고난일 뿐입니다.
마지막날에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이 임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줄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줄여 주지 않았다면, 누구도 믿음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종말이 가까와 올수록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큰 고난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우리가 감당 할 수 있는 고난들입니다. 고난 앞에 서도 끝까지 주님을 의지하고, 견디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고난만 허락하십니다.
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13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마가복음 13:8,13)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고, 깨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몇년 전 까지만 해도, 종말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이단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거의 모든 목사님들이 종말에 대해서 설교합니다. 우리가 긴박한 종말의 시간을 산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말의 날을 정확히 알수 없습니다. 그 날은 예수님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종말의 시간에 대해서 구체적인 말을 한다면, 그는 피해야 할 이단입니다.
우리가 정확한 시간과 날자는 알지 못하지만, 종말의 징조들에 대해서는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날이 가까이오면 이런 일들이 일어 난다고 했습니다. 1) 민족과 민족이 싸우고, 나라와 나라가 싸웁니다. 2)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일어난다. 3) 세상이 예수믿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그들을 감옥에 넘깁니다. 이런일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면, 우리는 예수님이 아주 가까이 왔다고 여겨야 합니다.
믿음안에 사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 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핍박 받고 소외 당해야 하는 시간이 곧 올 것입니다. 그 때에도 끝까지 견디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지금부터, 마음안에서 환난의 때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9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막 12:9)
교만해지면, 눈이 멀어 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인이신 것을 까먹고, 내가 주인행세를 하게 됩니다. 목사가 교회에서 그렇게 되면, 주님은 목사를 쫓아내시고, 돈과 명예를 맡은자가 그렇게 되면, 주님은 맡기션던 돈과 명예를 다시 빠앗아 가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앞에 겸손히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특별한 민족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택하셔서, 그들에게 먼저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방인인 우리보다 구원에 더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교만하여 주인 행세를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구원에서 멀어졌습니다.
예수님은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 교만해서 망한 유대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맡기고 멀리 다른 나라에 갔습니다. 그러자 농부들이 포도원의 주인 행세를 합니다. 그래서 주인이 그의 아들을 보내서, 포도원의 소출을 걷어오게 합니다.
그런데 농부들이 그 주인의 아들을 죽입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그 아들을 죽이면 자신들이 포도원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마치 아담이 에덴 동산의 주인이 되려고, 선악과를 따 먹은 것 처럼, 그들이 주인 행세를 하려고, 주인의 아들을 죽인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을 이렇게 비유한 것입니다.
교만하면 눈이 멀어 버리면, 내 위에 있는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때 모든 것을 가져 가십니다. 주님앞에서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를 낮추고, 모든 것에 신중합니다.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함부로 말하지 않고, 함부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겸손해야 합니다. 그가 하나님앞에서 우리의 삶이 안전합니다.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막 11:24-25)
두가지의 기도가 이루어집니다. 첫째, 믿음으로 구하는 기도, 둘째, 다른 사람을 먼저 용서하고 하는 기도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도의 응답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믿음이 없다면, 주님께 믿음을 달라고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귀신들린 아들을 예수님께 데려왔던 아버지가, 자신의 믿음적음을 도와 달라고 예수님께 구했던 것 처럼, 그도 먼저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가 기도하는 것도 응답해 주십니다.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고, 분노와 복수심을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먼저 형제를 용서하고, 기도하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래야 우리의 기도가 응답됩니다. 이 원리는 주기도문에도 나온 원리이며, 제물을 바치다가 형제와 다툰일이 생각나면, 먼저 사과하고 다시 예물을 드리라는 원리와도 일치합니다. 기도하기 전에, 형제를 용서하는 마음이 먼저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용서는 감정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먼저는 의지적 결단입니다. 믿음의 결단입니다. 이 결단을 정직하게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도우셔서, 용서의 마음이 생기게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 용서를 먼저 요구하십니다. 그래야 우리가 기도하는 것에 응답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안 생긴다면, 믿음을 달라고 먼저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기도가 응답됩니다. 형제를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의지적으로 하나님앞에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우리 마음에 점점 용서가 들어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시작하십니다.
4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막 11:4)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은, 모든 일이 자연 스럽게 열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뜻하지 않은 일은, 모든 것에서 막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에도 방해하는 장애물과 핍박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도 믿음안에서 자연스럽게 극복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일은 방해와 장애물이 없는데도 열리지 않습니다. 그때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춰서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을에 내려가서 나귀 새끼를 가져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나귀새끼는 제자들의 재산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재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져 오라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왜 가져가냐고 따져 물으면, “주께서 쓰시려고 한다”라고 말하라고 합니다. 결국 제자들은 자신들의 것도 아닌 나귀새끼를 무리 없이 가져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은 우리의 생각으로는 말이 안되는 일인데도 무리 없이 진행됩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이 소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사역이 계속 막혔습니다. 그러던 중, 바울은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손짓하며 자기를 도와 달라고 요청하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그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유럽으로 부르고 계심을 확인하게 됩니다.
바울이 유럽으로 가려고 결심하자, 그 때부터 막혔던 모든 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항구로 가자 배가 출항을 준비했고, 배가 순풍을 타고 빠르게 유럽에 도착했고,도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루디아라는 여인을 만나 복음을 전했고, 그 여인이 무리 없이 예수님을 받아들였고, 그녀를 통해 빌립보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사역을 평생 후원하는 교회가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막으시면, 모든 것이 막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시는 일은,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열립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은 어떤가요? 하나님께서 막고 계십니까? 아니면 열고 계십니까? 인내가 필요합니까? 믿음의 변화가 필요합니까? 때로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잠잠히 우리의 길을 돌아봐야 합니다.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막 10:47-48)
예수님을 찾으십시오. 체면 불구하고 찾으십시오. 사람들이 이제 그만 하라고 해도, 멈추지 말고 예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더욱 소리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결국 예수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아멘!
예수님께서 수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눈먼 바디매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군중 속에서 소리를 지릅니다. “예수님, 나를 도와 주세요. 내 눈을 고쳐 주세요” 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바디매오를 꾸중합니다. 시끄럽다고 말입니다. 잠잠하라고 말입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너의 소리는 들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바디매오는 더 크게 소리쳐 예수님을 부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가던 길을 멈추셔서 바디매오를 데려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를 고쳐 주십니다.
여러분,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문제를 해결 해 주실 수 있다고 믿고, 예수님께 소리쳐 구하면, 예수님께서 결국 나타나셔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체면때문에 멈추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꾸중때문에 믿음을 잃어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체면 불구하고 끝까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반드시 길을 여십니다. 아멘입니다!
41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막 9:41-42)
같은 믿음을 가진 성도들과 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성도가 나 때문에 실족하게 되었다면, 주저하지 말고 찾아가서, 용서를 구하고 그의 마음을 다독여 주시기 바랍니다.
주기도문에 의하면, 우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립니다. 우리가 땅에서 풀지 않으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복도, 하늘에서 풀리지 않습니다. 믿음의 형제들을 향해서 유순한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같은 믿음을 가진 성도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신앙안에 있는 다른 성도를 섬기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시고, 반드시 상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시대는 점점 더 악해지고, 그리스도인의 삶은 더욱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시대가 그렇게 변할 수록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서로를 의지해야 합니다. 어쩌면 미래에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재산을 잃고, 직장을 잃고, 학교를 떠나야 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시간이 가까와 올 수록,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서로를 의지해야 합니다. 믿음을 지키고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서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그런 날이 되면, 정말 누가 예수님안에서 형제였고, 자매였는지 드러나게 될것입니다. 지금부터 믿는 사람들에게 더욱 선을 베푸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막 9:35)
사람들 속에서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점점 높아지고,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점점 낮아집니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여러분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높이는 사람입니까? 주님은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높아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과 함께하면, 내 가치가 높여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높아지려고 하지 않았는데, 함께 하는 그가 자기를 낮추고 나를 항상 높여 주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하면 내가 존귀하다고 여겨집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과 동행하고 싶어합니다. 그 사람을 리더로 따릅니다.
반대로, 함께할 수록 나를 누추구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를 이용해 자기는 높이는데, 계속해서 나는 누추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는 점점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낮아집니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높아지고, 자기를 높이는 사람이 낮아지는 원리는 세상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그러나 죄성을 가진 우리는 항상 나를 높이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라도 나를 높이려고 합니다. 주님은 그가 점점 낮아지고, 반대로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계속 높여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낮아져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스스로 높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시면, 우리의 삶이 많이 아픕니다. 스스로 낮아지는 삶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그 삶에 평안과 높음이 들어 있습니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막 9:23-24)
옛날에는 교회안에 기적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기도로 병을 고치고, 기도로 귀신을 내어 쫓고, 기도로 사업과 가정과 직장에서의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그러나 요즘 교회안에는 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줄어 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더 이상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않는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도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어 쫓고, 가정과 사업과 직장의 문제를 해결 하실 수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기도합니다. 작정하여 기도하고, 금식하며 기도하고, 기도원에 올라가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더이상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다 포기해 버립니다.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귀신들린 아들을 가진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아버지가 귀신들린 아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나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 내 아들이 귀신 들렸는데, 하실 수 있으시다면, 이 아들을 고쳐 주세요” 라고 말입니다. 이 말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 아버지가 예수님께 소리쳐 말합니다. “주님, 내가 믿습니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 주세요!” 라고 말입니다. 다른 성경 번역에 보면, 아버지가 울며 외쳤다고 번역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에게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지금도, 흔들리는 믿음 속에서도, 소리쳐 기도하고, 울며 주님께 매달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적을 보여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회복되길 소망합니다. 흔들리는 믿음속에서도 주님의 도움심을 구하며서, 끝까지 기도하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 믿음 위에 기적은 다시 일어납니다. 삶의 문제가 있을 때마다, 예수님께서 해결 해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고,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이외에는 이러한 기덕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2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3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막 8:2-3)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이 마음에서 하나님의 일이 시작됩니다.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을, 하나님도 긍휼히 여겨 주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마리와 빵 일곱개로 사천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 기적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였고, 그들은 삼일동안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배고픈 상태로 집에 돌아가는 것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먹이기 위해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덕 7개로 4천명을 먹이셨습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선을 행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선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선이 아닙니다. 그 선의 열매는 결국 문젯거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일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막 7:27-28)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서 언제 일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믿음을 보여 드릴 때 입니다. 성경의 원리를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믿음을 보여 드릴 때, 하나님께서 일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 자신의 믿음을 입증해 보인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방 여인이었던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께 나와, 자신의 귀신들린 딸을 고쳐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녀에게…“자녀들에게 줄 떡을 개들에게 줄수 없다”라 하셨습니다. 그 여인과 귀신들인 그녀의 딸을 <개>에 비유하면서, 이방 연인에게는 기적을 베풀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여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자신과 딸을 개로 비유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서, 개들도 주인의 떡 부스러기를 먹는데, 개와 같은 자신들에게 그 부스러기라도 달라고 끈질기게 요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서 분명하고 확실한 믿음을 확인하십니다. 그리고 그녀의 딸을 고쳐 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은 믿음이 확인된 곳에 나타납니다. 믿음이 확인 되지 않는 곳에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여러분의 믿음을 입증해 보이시기 바랍니다. 그때 우리 삶에 다시 기적이 일어납니다.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사람의 마음은 죄로 망가져 있습니다. 그 죄는,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그리고 우매함 입니다. 그런데 이 죄의 목록들 가운데 아주 흥미로운 죄가 있습니다. 음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죄를, 세개의 단어로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음란, 간음, 음탕 입니다. 그 만큼 저나 여러분이 음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면, 사람은 항상 죄를 향해 기울어집니다. 마치 자석이 철을 향해 끌려 가는 것 처럼, 사람도 죄를 향해 끌려갑니다. 그리스도인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십자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우리 안에는 여전히 죄의 욕망이 있습니다.
제임스패커라는 신학자는, 우리가 완전해지는 날은, 우리가 부활의 몸을 입는 날이라고 말합니다. 그 날까지 우리는 불완전한 모습으로 이 땅에서 살아갑니다. 다시 말해서, 여전히 죄의 본성에 흔들리며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죄의 본성에 흔들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육체를 따라살지 말고,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육체를 따라 살면, 우리가 위에서 말한 죄가 우리 삶에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성령을 따라 살려고 하면, 성령의 열매가 맺혀지는데, 그것은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마음에도 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 죄를 따라 살지 말고, 성령을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따라 살다가 연약해서 죄에 넘어졌다면, 예수님께서 주신 <회개의 약속>을 믿고, 죄를 회개하고 다시 일어나서, 거룩한 삶을 향해 계속 나가시기 바랍니다.
13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막 7:13)
만약, 어떤 장로님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교회에 많은 헌금은 하는데, 가난한 자신의 형제와 부모님은 외면하고 산다면, 여러분은 그분을 어떻게 생각 하시겠습니까? 네, 그것은 좋은 믿음이 아닙니다. 뭔가 문제가 있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고르반” 이라는 전통이 있었는데, 만약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헌금을 많이해서, 부모를 돌볼 수 었면, 그것은 죄가 아니라고 인정해주는 제도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전통속에서,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려는 자신들의 속 마음을 감추고, 사람들이 앞에서는 자신들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 처럼 나타내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그들의 이중성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이 정직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규칙을 잘 지켰어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신앙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앞에서 마음을 점검하고, 그 마음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직한 마음, 겸손한 마음, 긍휼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부족하면 부족하다고 인정하는 마음, 연약하면 연약하다고 고백하며 도움을 구하는 마음, 넘어졌다면 넘어졌다고 고백하며 회개하는 마음…이런 마음이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인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마음을 원하십니다.
4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막 6:4-5)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믿지 않기 때문에, 병이 안 낳고, 믿지 않기 때문에, 귀신이 안 떠나고,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지금도 우리 삶에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고향에 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곳에서 사람들에게 능력을 행하지 못하셨습니다. 왜 입니까?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동네에서 함께 자란 친구일 뿐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일 뿐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익숙함과 고정관념이,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능력을 행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마가복음 6장 5절을 정확하게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고향에서 능력을 < 안 > 행하신 것이 아니라, < 못 > 행하셨습니다. 왜입니까?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예수님은 능력을 < 안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 못 >행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의 기록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고치실 수 있고,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기도합니다. 끝까지 기대하고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반대로, 믿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기도하지 않습니다. 또는, 잠깐 기도하다 멈춥니다.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끝까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막 5:39-40)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어리석다고 비웃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리석고, 세상이 창조 되었다는 믿음이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비웃는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여러분, 이 비웃음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감당하겠다고 마음에 결단하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도 흔들립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죽은 회당장의 딸이 다시 살아 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이미 죽은 소녀를 살려낸다는 생각은 바보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회당장의 딸을 결국 살려 내십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점점 더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비웃을 것입니다. 그 비웃음을 감당하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도 흔들립니다. 흔들리지 말고, 믿음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옳았다는 것이, 만 천하에 드러나는 날이 옵니다.
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마가복음 5:35-36)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은 <믿음>은 진짜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호기심>과 <기대감>이지, 믿음은 아닙니다. 진짜 믿음은, 끝까지 믿는 믿음입니다. 죽기 직전까지 믿는 것이 아니라, 죽을 각오를 하고 믿는 것이고, 망하기 직전까지 믿는 것이 아니라, 망할때까지 믿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합니다.
회당장의 딸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회당장은 예수님께 달려와 자신의 딸을 살려달라고 간구합니다. 예수님은 회당장을 따라, 그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그의 집으로 가던 길에, 시간을 지체하는 사건이 끼어듭니다. 12년간 혈루병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께 고침을 받는 사건입니다. 그녀의 등장으로, 회당장의 집으로 향하던 예수님의 시간이 지체됩니다. 그리고 결국 회당장의 딸은 죽습니다.
어떤 사람이 회당장에게 와서, “딸이 죽었으니, 더 이상 예수님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다 끝났으니, 더 이상 미련을 두지 말고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회당장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라고 말입니다. 회당장은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예수님을 모시고 그의 죽은 딸에게로 향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딸을 결국 살려 내십니다.
믿음은 끝까지 믿는 것입니다. 중간에 포기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예수님을 따라왔는데, 호기심과 기대감이 채워지지 않자,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것은 원래 부터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까? 죽기 직전까지…혹은 망하기 직전까지…가 아닙니다. 죽을때까지…망해서 모든 것이 끝날때까지…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그가 결국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합니다.
16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17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막 5:16-17)
마음을 미리 정하지 않으면,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주저하게 됩니다. “상황이 이끄는대로, 혹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선택해야 지…” 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정작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바른 것을 선택하지 못합니다. 마음을 미리 정해 놓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남자를 고쳐주십니다. 그 남자에게 들어간 귀신의 이름은 <군대>였습니다. 그 수가 군대 처럼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덤 사이에 살면서, 밤낮 소리를 지르고, 자기 몸을 돌로 자해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그를 제어하지 못해서, 그는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들어온 귀신들에게 명령하여, 주변에 있던 이천마리의 돼지떼들에게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귀신들이 돼지떼에게 들어가고, 돼지들은 갑자기 절벽아래 바다로 뛰어들어 죽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그 지방에서 나가 달라고 부탁합니다. 왜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의 산업에 손해를 입혔기 때문입니다. 귀신들렸던 사람이 고침받은 것도 좋고, 예수님의 능력도 좋지만, 자신들의 2천마리 돼지떼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자신들의 삶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언젠가 선택의 시간이 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예수님입니까? 아니면 이천 마리 돼지떼입니까? 지금부터 마음을 정해 놓지 않으면, 우리도 이천 마리 돼지떼를 선택합니다. 지금, 마음을 정해 놓으시기 바랍니다.
3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나니 삼십배나 육십배나 백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마가복음 4:3-8)
오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씨>로 비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마음을 <땅>으로 비유합니다. 예수님은 4종류의 마음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첫째, 길가와 같은 마음입니다. 이곳에 씨가 떨어지면, 그냥 굴러다니다가, 새에게 먹힙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아무 관심이 없는 마음입니다.
둘째, 얇은 흙 같은 마음입니다. 이곳에 씨가 떨어지면, 일단 싹을 틔우지만, 뿌리가 깊지 않아서, 해가 뜨면 말라 죽습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호기심을 가지지만, 고난이 오고 헌신을 해야 하면, 말씀을 버리는 마음입니다.
셋째 마음은, 가시 덩굴 같은 마음입니다. 이곳에 씨가 떨어지면, 일단 자라지만 곧 가시 덩굴에 기운이 막혀 죽습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지만, 염려와 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과 쾌락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더이상 능력으로 작동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넷째 마음은, 좋은 땅 같은 마음입니다. 이곳에 씨가 뿌려지면 결국 열매를 맺습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끝까지 간직히고 지켜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모두가 좋은 마음의 받을 가자시기 바랍니다. 염려와 근심이 여러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흔들지 못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대한 자랑과 쾌락때문에, 말씀이 시들지 않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말씀을 받아 키우고 열매 맺게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신뢰하고 기댑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말씀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붙드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끝까지 간직하면, 결국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와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마가복음 3:35)
자녀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따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형제와 자매라고 부릅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누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누가 하나님 안에서 형제와 자매인지, 정확히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분명하게 알 게 될 때가 찾아 옵니다. 그리스도인이 믿음 때문에 핍박받는 시간이 올 때입니다.
그 때 우리는 믿음 때문에 재산과 직장을 잃을 수 있습니다. 내가 속한 사회에서 배척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켜 나갈 것입니다.
그 때, 같은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형제와 자매처럼 여기며, 진실로 서로 돕고 기대며 살 것입니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이지만, 목숨을 다해 믿음을 지켜가는 형제와 자매를 보면서, 서로를 아껴주며, 도우며 그 환난의 날을 함께 생존할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형제며 자매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려고 몸부림 치는 그를, 형제와 자매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이 진정으로 가족입니다.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마가복음 3:4)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신명기 10장 13절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둑질 하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살인하지 말고,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사람을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위해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안식일날에 손이 마비된 사람을 고쳐주시자, 예수님이 안식을 범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질문하십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2장 2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사람을 위해서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진리 안에서 사람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길입니다.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7)
예수님은 죄인에게 긍휼을 베풀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안에서, 자신이 죄인인것을 알고 고백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만,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 죄인이 처할 마지막 운명은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가 치뤄야 할 우리의 죄값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치루게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예수님께 기대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필요한 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오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을 의롭다고 여겼고, 세리와 창녀와 죄인들은 자신들이 죄인인것을 알았습니다. 결국, 세리와 창녀와 죄인들은 고침을 받았지만, 바리새인들은 고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안에서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아는 것이 복입니다. 결국, 죄인은 살고,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는 사람들은 심판 속에 죽습니다.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이 차야, 하나님의 일이, 우리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며 진행됩니다. 성도는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지, 인내하고 기다리며, 자기의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찼을 때, 예수님도 본격적으로 당신이 해야 할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때가 차자 어떤 일을 가장 먼저 하셨습니까? 12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갈리리 해변에서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셨고, 그 다음으로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정하신 시간이 오기 전까지, 아버지 요셉을 도우며, 목수의 삶을 사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을 돌보면서 그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시간이 되었을 때에, 예수님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본격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부르시기 전까지, 어부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이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셨고,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사람들로 사용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이 있습니다. 그때가 되어야, 하나님의 역사가 손으로 만져지고, 눈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전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인내와 믿음으로 주어진 일상을 날마다 성실히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믿음과 인내로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때가차면, 하나님의 일이 눈으로 보이고 손으로 만져질 것입니다.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 침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라 (마가복음 1:3-5)
회개 하시기 바랍니다.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면, 그 길에서 돌이키고, 경건하지 못한 삶속에 빠져 있다면, 그 삶에서 나오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곧 이 땅에 다시 오시기 때문입니다.
침례요한이 회개를 선포할 때, 예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님은, 구원자로 오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심판하시는 예수님으로 오십니다. 우리는 더욱 회개로 준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중심과 삶을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날과 시간은 우리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예수님이 오실 날이 더욱 가까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도둑과 같이 갑자기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시간에, 갑자기 오신다는 것입니까? 항상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간혹 생각 하기를…나중에 회개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죄를 즐기며 살다가…내일…혹은 미래의 어느 시간 즈음에… 회개 하면 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속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갑자기 오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본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우리에게 확인 시켜 줍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합니다. 그들은 회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오늘 회개 합니다. 부족해서 넘어지고 완전하지 못해도, 오늘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깝습니다. 날마다 오늘 회개 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13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라 정한 기한이 다가옴이니이다 (시편 102:13)
모든 일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한이 있습니다. 특별히, 고통의 시간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한이 있습니다. 그 날이 차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회복하십니다. 그 고통이, 우리의 죄 때문에 일어난 고통일지라도, 우리를 회복하십니다.
오늘 시편의 저자는 “정한 기한이 다가온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실 날이 찾아온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들은 현제, 하나님께 범죄해서 이방 나라에 포로로 끌려간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하실 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죄때문에 고통속에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우리가 망할 정도로 오래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정한 시간이 지나가면, 우리의 마음과 상황을, 다시 회복 시켜 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통속에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정한 기한이 지나면, 모든 것을 다시 회복하십니다. 하나님을 바라 보시면서,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1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하게 하소서 2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시편 102:1-2)
하나님의 백성도 깊은 고통속에 들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저자도 인생의 깊은 고통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상태가 다음과 같다고 말합니다.
1) 고난 때문에 그의 마음이 숯과 같이 탔다고 말합니다. 2) 마음이 시들어서, 음식 먹을 마음도 잃었다고 합니다. 3) 너무 고독해서, 홀로 밤을 새우는 참새 같다고 합니다. 4) 삶이 너무 쓰라려서, 눈물 섞은 물을 마시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5) 하나님께서 자신을 들어 던지셨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도 고통속에 들어갑니다. 어떤 신실한 선교사님은 선교지에서 자녀를 잃었고, 어떤 신실한 집사님은 하나뿐인 젊은 아들을 갑자기 천국으로 보냈습니다. 우리도 사고로 장애를 입을 수 있고, 병으로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시편을 기록한 사람과 같이 말입니다. 그 고통속에서 우리가 할 일은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분앞에서 울고, 그분앞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길입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2 구름과 흑암이 그를 둘렀고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 8 여호와여 시온이 주의 심판을 듣고 기뻐하며 유다의 딸들이 즐거워하였나이다 (시편 97:1,2, 8)
여러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공의>로 세상을 다스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때문에 인내하고, 하나님때문에 절제하고, 하나님때문에 손해를 감수합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서 모든 <불법>를 행하며 더욱 번성해 갑니다. 더욱이, 악인들은 의인들을 핍박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의인이라 일컬어지는, 시온과 유다의 딸들이 기뻐하고 즐거워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악인들을 향한 “주의 심판”에 대해서 들었기 때문입니다(8절). 하나님의 불이 그들을 불사르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3). 그래서 시온의 딸들이 기뻐합니다.
단순히 악인들이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즐거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혼냈기 때문에 즐거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때문에 인내하고, 하나님때문에 절제하고, 하나님때문에 손해를 감수했던 그들의 삶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그들이 확인했기 때문에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뻐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내가 헛되지 않습니다. 결국, 의인이 승리하고, 악인은 심판을 받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기쁨입니다.
10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가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하시리라 할지로다(시편 96:10)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망하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그 나라가 망하고 흔들리는 것 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악이 득세하고, 의인이 핍박을 당하고, 공의가 사라지며, 불법이 승리하는 것 처럼 보일때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승리는 의인의 몫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들을 붙들고 있기 때문에, 결국 의인들이 승리한다는 믿음입니다. 만약 살아서 그 승리를 보지 못한다면, 죽고 부활함으로 그 승리를 보게된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두가지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첫째, 평안합니다. 현실이 아무리 복잡하게 돌아가도, 최종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이기실 것이기 때문에, 평안을 지켜 나갈 수 있습니다. 둘째, 인내합니다. 최종 승리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의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현재의 고난을 결국 인내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능하신 손안에서 결국 승리합니다.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은 그 승리를 보게 됩니다. 가끔은 하나님을 다 이해 할 수 없지만, 그 날이 되면,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은 정말 선하시고, 공평 하시다” 라고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흔들리지 마시고, 하나님을 신뢰 하면서, 평안과 인내의 삶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이 승리합니다.
9 그 때에 너희 조상들이 내가 행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하고 조사 하였도다 11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시편 95:)
하나님을 <시험>하고 <조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많은 증거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증거들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믿고, 가야할 길을 계속 가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던 길을 멈췄습니다. 물이 없어 죽을 것 같은 상황에 놓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과 원망>을 쏟아 놓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을 광야로 끌고와서 결국 목말라 죽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시험>하며, <조사> 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미 수 많은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증거들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편한 현실을 만날때마다, 자신들이 가야할 길을 멈추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조사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결과, 그들은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시험하고 조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당신을 의지해야 할 수 많은 증거들을 이미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더이상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다시 하나님을 믿고, 가야 할 길을 계속 가시기 바랍니다.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서 4:2)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다툼과 불열>을 피하라는 마음을 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생각을 내려 놓고, 그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빌립보 교회는 모범적인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정말로 사랑한 교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안에 분열이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를 대표하는 두 여인,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분열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사이에 <분열과 다툼>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두 사람에게 아주 정중하게 권면합니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라고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한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까? 자기를 부인 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자기를 주장하게 되면, 다툼과 분열이 멈추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사람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다툼과 분열을 피합니다. 하지만 성령안에 거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분열과 다툼을 통해 결국 자기를 증명해 냅니다.
교회 안에서 <분열과 다툼>은 항상 있을 수 있는 현상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스타일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반응 하는 가가 중요합니다. 만약, 예수님때문에 자기를 부인하고, 분열과 다툼을 피하고 있다면, 그는 <성령의 사람>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입니다.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 1:21)
침례교회는 < 침례 >를 강조합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성경에서 왔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 형식이 담고 있는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침례식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는 <예수님과의 연합>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이 연합에 대해서 기록했습니다.
성도가 침례를 통해서 온 몸을 물속에 담그는 것은, 죄를 따라 살던 내가 예수님과 연합하여, 십자가에서 죽고 장사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가 물에서 다시 올라오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연합해서, 부활의 생명을 가진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의식은 예수님과 <연합>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주님과 우리의 연합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 성도는 예수님과 연합한 사람입니다. 그분과의 연합을 통해서, 속죄를 얻고, 생명을 얻고, 또한 열매를 맺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내 안에 사시는 분이 예수님이니, 내가 죽는 것도 유익하다” 라고 말합니다. 그에게 살고 죽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살라고 하시면 사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가자고 하시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연합하여, 삶의 모든 주권을, 주님께 맡긴 사람입니다.
예수님과 연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예수님과 분리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영원히 살아야 할 삶의 방식입니다.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빌립보서 1:3-5)
누군가의 기억에 < 감사와 기쁨이 >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남들이 모두 나를 떠날 때, 끝까지 나와 함께해준 사람들입니다. 또한, 내가 궁핍할 때, 나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워준 사람들입니다. 은혜와 평강교회 성도들 모두가, 누군가에게 < 감사와 기쁨 >이 되는 사람들이길 소망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하면 <감사와 기쁨>이 넘쳤습니다. 두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첫째,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의 선교 사역에 항상 재정으로 함께 했습니다. 둘째, 그들은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갖혀 있는 때에, <에바브로 디도>라는 형제를 보내서, 바울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심지어 그 에바브로 디도는 바울을 돌보다가 병이 들어 거의 죽을 상황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이 이런 빌립보 교회를 <감사와 기쁨>중에 기억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워 주어야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함께하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끝까지 함께 해 주어야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우리를 보고, 예수님을 보게 되고, 우리를 <감사와 기쁨>으로 기억하게 됩니다.
드디어 욥기가 끝났습니다. 욥기를 묵상하는 내내, 우리도 아침마다 우울했습니다. 계속되는 욥의 고통 때문에 우울했고, 욥의 친구들의 독선 때문에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오늘로, 이 긴 고통의 묵상이 끝났습니다. 욥기를 통해, 저는 세가지를 기억하고 싶습니다.
첫째, ‘욥의 세 친구들의 권면은 다 틀린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욥의 세 친구들의 말들은 정말 신앙적이었고, 철학적이었고,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말에 노여워 하셨고, 그들의 말이 우매하고 틀린 말이라고 하셨습니다(41:7-8).우리의 지혜로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욱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나의 기준으로 쉽게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내 삶도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그의 세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시고, 욥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욥의 삶을 회복 하셨습니다(41:10). 참 놀라운 기록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힘들게하는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줄 때, 우리의 삶도 회복되어 간다는 사실입니다. 정말로 기억해야 할 진리이고, 예수님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끝까지 신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다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욥처럼, 하나님이 원망스럽고, 자기의 운명이 저주스러 울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끝까지 신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울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울며 끝까지 그분의 선하심을 신뢰합시다.
넷째, 신자는 결국 욥의 회복과 복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을 회복하시고, 그의 부를 그 전보다 더 크게 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이 부분에서 항상 물음표를 달았습니다. 정말 모든 신앙인이, 이 땅에서 자기 신앙에 대한 보상을 욥처럼 받을까? 라고 질문하며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제 확신합니다. 모든 신자는 결국 욥의 복을 누립니다. 그것이 언제 입니까? 예수님의 재림의 때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은, 우리가 최종적인 구원의 상태인, <육체의 부활>로 들어가는 때입니다. 그 때는, 죄로 망가진 창조 세계가 완전한 회복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 때, 성도는, 욥 보다 더 큰 육체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사실, 이러한 측면에서 욥기는, 성경 전체의 핵심 주제인, <종국적 구원론>을 다루는 책이라고 저는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인내 하십시요. 우리는 결국 욥 보다 더 큰 복을 우리가 누리게 될것입니다. 이것을 믿어야만, 끝까지 믿음안에 인내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제 욥의 고난이 끝났습니다. 욥과 함께 오랜 시간 고난을 묵상하시느라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우리가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질문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그리고 심지어 소리치며 대항합니다. 뒤돌아 보면 저도 그랬습니다.
욥도 인내하며 입술을 지키려고 했지만, 결국 불평을 쏟아 놓았습니다. “자신은 의로운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불의한 자 취급 하신다”(34:5)고 했습니다. “자신은 정당한데, 하나님은 자기를 거짓말쟁이 취급하신다”(34:6)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고통속에 죽이기로 작정했다”(13:15)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삶에는 ”평안도 안일도 없다”(3:26)고 했습니다. 자신은 “당장 죽기를 바라지만 죽음도 오지 않는다”(3:21)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태어난 생일을 저주했습니다(3:1).
그런 욥에게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너가 나의 창조물인 < 리워야단-고대의 거대 공룡 > 한마리라도 통제 할 수 있느냐? 그것 하나 통제 하지 못하는 너가, 어떻게 나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평가 할수 있냐?(41장)”라고 말입니다. 네,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을 다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선하심을 끝까지 신뢰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이 요구가, 죄인인 우리의 마음에 무척이나 부대끼고 반항심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끝까지 인정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주님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우리의 본분(Duty) 라고 말합니다(전 12:13). 여러분, 이해 할 수 없어도, 주님의 선하신 주권을 인정하고, 받아들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것이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그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고 욥기에서 약속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이 신앙의 단계에 이르게 하실 것을 믿고 소망합니다.
13 혹은 징계를 위하여, 혹은 땅을 위하여, 혹은 긍휼을 위하여, 그가 이런 일을 생기게 하시느니라 (욥 37:13)
여러분,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사건이 각 사람들에게 <두세가지> 다른 결과를 가져 오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가령, 어떤 회사의 악한 사장님이 갑자기 죽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은 그 일로, 그 당사자의 가족에게는 경고와 고난을 주십니다. 그런데, 그 악한 사장님에게 고통을 받던 사람들은,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악한 사장님 아래에서 묵묵히 인내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던 어떤 사람은, 그 사장님의 자리에 올라가면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긍휼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성경은, 한가지 일로, 세가지 목적을 이루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하늘에서 번개가 치거나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땅은 유익을 얻어서 많은 곡식을 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 비와 번개가 징계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들이 긍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가지 사건으로, 결과가 전혀 다른, 두세가지의 목적을 성취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입장에서만 모든 것을 해석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슬픔이면, 하나님께서 슬픔을 행하셨다고 결론짓습니다. 그것이 기쁨이면, 하나님께서 기쁜일을 하셨다고 결론 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한가지 사건을 통해서, 당신이 이루시려는 두세가지 혹은 대여섯가지 일을 한꺼번에 이루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를 다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선하시고 공의로운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그리고 이 우주 전체를 운행 하심에 있어서, 당신의 선하심과 공의를 꼭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당장의 슬픔이 슬픔으로 끝나지 않고, 당장의 기쁨이 기쁨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선하심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그 선하심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10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나니…13 마음이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이 속박할지라도 도움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욥 36:10,13)
신앙은 단순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듣고 순종하는 것이 입니다. 신앙이 복잡해지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순종하지 않으려고 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귀를 열어서, 당신의 뜻을 듣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죄에서 떠나게 하십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내 귀를 열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귀를 여시고, 하나님의 뜻을 듣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단순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경건하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마음에 분노를 쌓습니다. 순종이 싫은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그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께 나가지 않는다고 13절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귀를 여시고 말씀하십니다. 순종이 없으면 고난을 통해서라도 다시 말씀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7 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8 그대의 악은 그대와 같은 사람에게나 있는 것이요 그대의 공의는 어떤 인생에게도 있느니라 (욥 34:7-8)
성숙한 사람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고집이 없어지고, 말이 줄어듭니다. 그러나 미성숙한 사람은, 자신을 옳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고집이 강하고, 말이 많아집니다. 이것이 성경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성숙한 사람과 미성숙한 사람의 정의입니다.
이 정의에 비추어 나를 볼 때, 나는 미련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여전히 내가 의롭다고 여기는 것이 많고, 그래서 고집이 많고, 많은 말로 그 의로움을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고집이 멈추고, 말이 없어지는 그 지점에 서 있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욥과 그의 친구들이 서로 <많은 말>을 주고 받았습니다. 욥은 욥대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했고, 욥의 친구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했습니다. 서로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고집을 부리며,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말들을 주고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부족하다 생각하여, 이들의 말을 듣고만 있던, 젊은 사람 엘리후가, 드디어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욥을 책망하고, 욥의 세친구들까지 책망했습니다.
“너희들이 서로 옳다고 주장하는데, 실존적으로 그것들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 “너희들의 옳다고 주장하는 그것들이 하나님께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다.” “너희가 주장하는 의로움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지, 너희가 특별한 것도 아니다.” 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옳다고 생각며 하는 말들과 고집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 성숙한 사람은 <고집과 말>이 줄어듭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고집과 말>이 너무 많습니다. 성숙에서 한참 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고, 그 말을 다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 앞에서 잠잠하라고 하십니다.
31 내 장막 사람들은 주인의 고기에 배부르지 않은 자가 어디 있느뇨 하지 아니하였는가 32 실상은 나그네가 거리에서 자지 아니하도록 나는 행인에게 내 문을 열어 주었노라 (욥기 31:31-32)
내 주변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나에게 유익이 되건 안 되건…그들의 인간성이 마음에 들건 안들건… 그들이 결국 나를 배신할 사람이건 아니건 상관없이…그들이 어렵고 힘들다면,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도우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다 하는 사랑입니다. (마 5:46)
욥은 자기 주변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을 넉넉하게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의 삶으로 들어오면, 외면하지 않고, 그들이 자기 주변에서 쉴수 있게 했습니다. 욥의 주변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은 고기를 먹었고, 넉넉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에게 찾아온 것은, 재앙이었습니다. 자식들이 한 날에 죽고, 모든 재산이 사라지고, 부인 마저 그를 저주하고 떠나버렸습니다. 욥이 나락으로 떨어지자, 그 주변에서 그로 인해서 넉넉히 살던 사람들도, 얼굴을 바꾸어 그를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을 기억하시고 다시 그를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 삶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보내십니다. 그들이 나에게 유익이 되건 안되건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기억하십니다.
13 만일 남종이나 여종이 나와 더불어 쟁론할 때에 내가 그의 권리를 저버렸다면 14 …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내가 무엇이라 대답 하겠느냐 15 나를 태 속에 만드신 이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이가 한 분이 아니시냐 (욥기 31:13,14b,15)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안 기뻐하십니다. 내가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 우리도 언젠가,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취급받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대로 너도 남을 대하라”는 성경의 원리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주인과 종> 의 관계는 대표적인 <강자와 약자> 의 관계입니다. 주인은 종을 함부로 대 했고, 때로는 능욕하고 죽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의 종들이 그와 쟁론을 해도, 그들을 힘으로 압제 하지 않고, 그들의 <권리>를 보호해 줬다고 말합니다.
“쟁론 할 때” 라는 표현은, 영어 성경에서 “종들이 불평 할 때” 라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욥의 종들이, 욥에게 불평을 했다는 것도 놀랍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이 그 종들의 권리를 지켜 줬다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욥은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어떻게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던 것입니까? 그는 “그들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들”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함부로 하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함부로 대하고 있는 그 사람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되어, 그들을 함부로 대하고 무시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도, 사람들에게 함부로 취급받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3 내가 아나이다 주께서 나를 죽게 하사 모든 생물을 위하여 정한 집으로 돌려보내시리이다 (욥 30:23)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을, 우리의 계산 속에서, 예측합니다. 그래서 미래가 밝을 것 같으면 기뻐하고, 그렇지 않을 것 같으면 절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예측하여 미리 절망하고 자랑하는 일을 멈추시기 바랍니다.
욥이 자신의 처지를 예측했습니다. 지금까지 자기 형편을 보니 “하나님께서 자신을 죽이실 것"이라고 자신의 삶을 예측합니다. 그의 삶은 이런 방식으로 노년에 비참하게 끝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에게 이전 보다 더 큰 회복을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셨고,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잠언 27장 1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 하루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선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오늘을 버티고 견디는 것입니다. 우리가 망할 것처럼 예측해도, 하나님은 완전히 회복해 놓으시고, 우리가 성공할것 처럼 자랑해도, 하나님은 한날에 그 모든 것을 내려 앉히실 수 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께 미래를 맡기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짧은 생각으로 예측하여, 그 예측에 반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을 버티고, 즐기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1 그러나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비웃는구나 그들의 아비들은 내가 보기에 내 양 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 만하지 못한 자들이니라 (욥기 30:1)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넘어진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넘어져 있다면, 그를 무시하지 말고, 그에게 도움을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가 다시 일어날 때, 우리를 기억해 줄 것입니다.
욥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합니다. 자신이 건강하고 부유할 때, 감히 자기와 함께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욥이 넘어지고 나니까, 자신을 함부로 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욥은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그들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들은 내 양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 만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라고 말입니다.
욥의 표현이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욥의 실망과 분노가 얼마나 크면, 욥이 그들을 그렇게 표한하겠습니까? 그들이 욥이 영향력 있을때는 욥 앞에서 감히 얼굴도 못들다가, 욥이 넘어지니까, 그를 함부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그들을 “개 만도 못했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결국 욥을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리고 그가 전에 가졌던 부보다 더 큰 부와 권세를 갖게 됩니다. 그 날에 욥의 넘어짐을 보고 즐거워하던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누군가가 넘어졌다고, 함부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가 다시 일어날 날이 있습니다.
2 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도 도와 주는구나 기력 없는 팔을 참 잘도 구원하여 주는구나 3 지혜 없는 자를 참 잘도 가르치는구나 큰 지식을 참 잘도 자랑하는구나 (욥 25:2-3)
고통 당하는 사람의 귀는 <위로>를 향해서 열려 있지만, <충고>를 향해서는 닫혀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어떤 훌륭한 <충고>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들을 향해서, 충고를 내려 놓고 위로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욥이 친구 빌닷이 욥에게 말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말할 수 있냐? 심지어 달과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 빛을 잃어 버린다. 그런데 욥아, 너의 알량한 의로움을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주장할 수 있냐?” 라고 말입니다. 너무도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할 충고입니다.
그런데 욥은 그 말 앞에서 어떻게 반응합니까? “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도 도와 주는 구나! 네가 고통 당하고 있는 나에게 참 잘도 가르치는 구나!” 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런 말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소리가 자신의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다는 것입니다. 당장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이지, <충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음식>입니다. 돈없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돈>입니다. 아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입니다. 그들의 귀는 <충고>에게는 닫혀 있지만, <위로>에게는 열려 있습니다.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위로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12 성 중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신음하며 상한 자가 부르짖으나 하나님이 그들의 참상을 보지 아니하시느니라 (욥 24:12)
악한 사람들은 멀쩡히 잘 살아가는데, 하나님을 찾는 나는 계속 고난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우리는 하나님이 없는것 처럼 <절망>을 느낍니다. 이러한 느낌은 어떤 불행한 사람들 만의 경험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자주 자주 겪는 느낌입니다.
욥도 그런 느낌속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양을 훔치고, 땅도 훔칩니다. 그들은 고아와 과부도 학대합니다. 그런데도 잘 살아갑니다.” “학대 받는 사람들과, 벌거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신음하지만, 하나님은 왜 그들의 고통을 돌아보지 않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욥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악한 일들을 보면서, 침묵 하시는 하나님께 원망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다시 믿음의 고백 붙들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악인들은 결국 그들의 죄값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잠간 동안 평안케 하시고 높여주시지만, 결국 그들을 심판 하시며, 그들이 천대받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 앞에서 침묵하시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은 그 교만한 악을 모두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회복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끝까지 믿고 붙드시기 바랍니다.
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기 23:10)
모든 사람에게는 <소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돈이 가장 많다던 어느 대기업 회장의 딸도, 절망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버렸습니다. 어느 대통령도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목숨을 버렸습니다. 인기를 누리던 연애인들도, 스스로 삶을 포기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소망이 보이지 않는 <각자의 상황>을 가지고 있습니다.
욥도 소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앞으로 가도.. 뒤로가도..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다. 그가 왼쪽에 있다하여 왼쪽으로 가도 그를 볼수 없고, 그가 오른쪽에 있다하여 오른쪽에 갔는데도 만날수가 없다 (욥 23:8-9).”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절망적인 느낌은, 하나님이 없다고 느껴질 때입니다. 하나님이, 다른 사람과는 함께하는데, 나와는 함께하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질 때입니다. 욥이 지금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이 여전히 소망을 놓지 않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 23:10).” 욥은 절망앞에서 불평과 탄식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욥의 소망대로 그를 회복 시키십니다.
여러분, 끝까지 소망을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결국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믿음을 지켰던 모든 사람들의 경험입니다.
2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유익하게 하겠느냐… 3 네가 의로운들 전능자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한들 그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 (욥 22:2a, 3)
경건하시기 바랍니다. 경건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깊이 동행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면,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지 않게 됩니다. 경건을 위해서 애써야 합니다.
욥이 자신의 <경건>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러자 엘리바스가 “사람의 의로움이 전능자에게 무슨 유익과 기쁨이 되냐?”고 말합니다. 꽤 그럴싸한 말입니다. 설득력 있는 <철학적 논리>가 담긴 말입니다. 정말로 인간의 경건이 하나님께 무슨 실제적인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스바냐 3장 17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인해서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의로운 우리를 보면서, 기쁨이 차 올라,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가슴 저릴만큼 아름다운 표현입니까? 하나님께서 의로운 우리를 보면, 기쁨을 이지기 못한다고 하십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에서는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때문에 <근심>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긋나고 있을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면서, 마음 아파하시고 <근심>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전능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까지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시8:4).
여러분, 우리가 함께 경건을 위해서 애씁시다. 그러면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 위에 머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에 “의로운 해가 떠올라, 치료하는 광선이 발하리니, 너희가 외양간의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4:2)” 라고 약속하십니다. 오, 하나님! 우리에게 이러한 경건을 갖도록 도와 주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하고 싶습니다.
21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고통 중에 있는데, 아무도 찾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에게 선을 베풀어도 돌려 받을게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모든 이들이 외면하는 사람들입니다. 그에게 찾아가서 그를 불쌍히 여겨 주는 것이 <진짜 위로>입니다.
욥도 한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부유했고, 존경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욥은 사람들에게 어떤 기대감도 줄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욥이 자신의 세 친구들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라고 말입니다. 아프고 외로운 욥의 처절한 외침이었습니다.
부자가 슬픔을 당하면, 많은 사람이 위로 합니다. 권세자가 어려움을 당해도 많은 사람들이 위로합니다. 그러나 기대할 것이 없는 사람이 고통을 당하면 아무도 위로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정말 <고통당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찾아가 위로하기 원합니다. 그것이 <진짜 위로> 입니다.
11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라게 하고 그 뒤를 쫓아갈 것이며 13 질병이 그의 피부를 삼키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의 지체를 먹을 것이며 21 참으로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이러하니라 (욥 18: 11,13,21)
다른 사람에게 <훈계>을 가장해서 <비난>을 쏟아 놓을 때가 있습니다. <권면>를 가장해서 <협박>을 늘어 놓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쓴 말을 쏟아 낼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특별히 목사인 저와 같은 사람에게서 나타나기 쉬운 모습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을 위로 하겠다는 명분으로 찾아와, 욥에게 고통스런 충고들을 늘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 친구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빌닷이라는 친구가 욥에게 거의 협박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냅니다. “너는 함정에 빠지고, 무서운 것에 쫓기고, 올무에 걸려들고, 질병에 걸릴 것이며, 재앙을 만날 것이며, 그래서 사람들이 너의 운명을 보고 모두 놀라게 될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을 분석했고, 그에 따른 자신들의 충고를 늘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들이 <헛된 말>을 한다고 반박했습니다(16:3). 그러자 기분이 나빠진 빌닷이 거의 <협박과 저주>에 가까운 말로 욥을 충고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욥을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와서, 정작 쓰고 아픈 말들로 욥에게 자신들의 속 풀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욥의 친구들 처럼 말하지 않는지 돌아봅니다. <훈계>를 가장해서 <비난>을 쏟아내고, <권면>을 가장해서 <협박>을 늘어놓고, <위로>를 가장해서 <저주>를 쏟아 놓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러고 있다면, <말의 정직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2 나를 조롱하는 자들이 나와 함께 있으므로 내 눈이 그들의 충동함을 항상 보는구나 6 하나님이 나를 백성의 속담거리가 되게 하시니 그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구나 (욥 17:2, 6)
사람을 의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사랑>할 대상이지 <의지>할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실망합니다. 갈대 처럼 부러지기 쉬운 사람을, 지팡이 의지하듯 의지하면, 결국 갈대가 부러지고, 그 부러진 갈대가 우리의 손을 찌르게 됩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욥이 부유 할 때, 그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욥이 모든 것을 잃고 몸에 병까지 얻자, 사람들은 그를 떠났고 그를 멸시했습니다. 욥은 그런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조롱한다. 내 눈은 나를 조롱하는 그들의 충돌질을 계속 봐야만 한다. 그들은 나를 속담거리로 만들었고, 내 얼굴에 침을 뱉는다” 라고 말입니다.
사람들은 변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내 곁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아직도 나에게 기대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외면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의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그가 반드시 실망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사랑>할 대상이지, <의지>할 대상이 아닙니다.
혹시 여러분도, 더이상 유익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버린 사람들이 있다면, 오늘 그 사람들을 기억해 내시기 바랍니다. 그들에게 안부를 묻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실제적인 도움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복을 부어 주십니다.
11 하나님이 나를 악인에게 넘기시며 행악자의 손에 던지셨구나 12 … 나를 세워 과녁을 삼으시고 13 그의 화살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사정 없이 나를 쏨으로 그는 내 콩팥들을 꿰뚫고 그는 내 쓸개가 땅에 흘러나오게 하시는구나 (욥 16:11,12b,13)
하나님께서 우리를 < 고난에게 > 넘겨 주시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것도 폭풍같이 몰아치고, 불합리하게 몰아치는 고난에게 말입니다. 그 속에서 저항하거나 한마디 말도 못한체, 그냥 계속해서 고난이 날리는 <펀치>를 맞아야만 하는 시간속으로 말입니다.
욥이 당하는 고난이 그러했습니다. 욥은 자신의 고난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악인들의 손에 던지셨다. 하나님께서 나를 과녁으로 삼으시고, 고난의 화살을 쏘아 대신다. 어떤 화살은 내 콩팥에 명중 했고, 어떤 화살은 내 쓸개에 명중했다. 그래서 내 쓸게즙이 흘러내리고 있다.”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욥과 같은 고난을 당하신 분이 또 있습니다.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은 죄 없으신 예수님을 <고난이란 짐승>에게 던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짐승은 예수님을 사정없이 찢었지만, 하나님은 침묵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욥과 예수님의 결말을 알고 있습니다. 두분은 결국 < 하나님의 영광 >을 보게 됩니다.
성도가 고난이란 짐승에 넘겨지는 시간이 옵니다. 그러나 성도는 결국 그 고난의 끝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희망 고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자존심과 교만을 내려 놓고,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곧 보게 됩니다.
2 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하지 않으니라 3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15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 16 경건하지 않은 자는 그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
교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의로움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 우리 가운데 누구도 당당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인이고 먼지일 뿐입니다. 이것을 발견한 사람만이 진실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듭니다.
욥은 그를 책망하는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강조하며 말했습니다. 그의 말을 각색하면 이렇습니다. “너희가 충고하는 바를 나도 이미 다 안다. 그러나 나의 수준은 너희와 다르다. 그래서 나는 너희의 충고를 듣기 보다는 하나님과 직접 말할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욥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희망없이 죽을 것이다. 그러나 내 온전한 삶에 대해서 하나님께 다 아뢰고 죽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감히 하나님앞에 서지 못하지만, 나는 하나님께 설 수 있다. 내 행위가 나의 구원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입니다.
욥은 자신의 <의로운 행위>에 완전히 기대서 말을 합니다. 그는 자신의 <의로움>이 구원의 근거라고 말합니다. 욥이 그의 의로움에 대해서 당당함을 넘어 <교만>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욥기 후반에서 그런 욥의 교만함을 책망하십니다.
여러분, 우리의 의로움으로는 하나님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 의로움을 근거로 하나님앞에 서려는 것이 교만함입니다. 우리는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숨을 쉴수도 없고, 천국에 이르지도 못합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은혜입니다.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너희만 참으로 백성이로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 3 나도 너희 같이 생각이 있어 너희만 못하지 아니하니 그같은 일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욥 12:1-3)
여러분, 고통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뻔한 말>을 멈추시기 바랍니다. 그 말은 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입이 간지러워서 정말 못 참겠다면, 그의 손에 100불 쥐어 주고, 단 한마디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고도 또 하고 싶다면, 그때에도 100불 쥐어주고, 단 한마디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고통 당하는 사람도 여러분의 뻔한 충고에서 조금의 진심을 느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던지는 <뻔한 충고>는 고통 당하는 그에게 <언어의 쓰레기>일뿐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고통 속에 있는 욥에게 <뻔한 충고>를 반복했습니다. “욥의 고통이 죄때문에 왔으니까 회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충고를 여러 미사여구와 종교적언어를 동원해서, 반복적으로 말 했습니다.
그러자 참다 못한 욥이 그들을 조롱하듯 말합니다. “너희만 참 백성이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 너희가 하는 말들은 누군들 못하겠냐” 라고 말입니다. 그들이 너무 뻔한 충고를 대단한 지혜인것 처럼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통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뻔한 충고>를 삼가시기 바랍니다. 그런 충고는 그를 위로하지도 못하고, 그의 삶에서 어떤 변화도 끌어 내지 못합니다. 그의 귀만 괴롭게 할 뿐입니다.
2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말이 많은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욥 11:2)
고통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긍휼이 담기지 않은 충고는 <독>이 될 뿐입니다. 누군가가 욥과 같은 고통속에서 <원망과 불평>을 쏟아 놓고 있다면, 침묵속에서 들어 주기만 하시기 바랍니다. <어쭙잖은 충고는> 그에게 <독>이 됩니다.
욥이 자신을 위로한다고 찾아온 친구들에게, 자신의 고통을 <원망과 불평>으로 쏟아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일을 저주 했고, 차라리 하나님께서 자신을 죽여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소발>이라는 친구가 나서서 이런 식의 말했습니다. “너가 말이 많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충고를 받는 것이다. 많은 말이 너를 옳다고 인정해주지 않는다.”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욥을 향해서 “회개하라”는 요지의 긴 충고를 이어갑니다.
소발의 말이 원론적으로 틀리지 않습니다. 결국 이 땅의 모든 고통은 죄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소발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욥기 마지막 부분을 보면, 하나님은 이 소발에게도 진노하십니다.
극심한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불평한 원망>은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들을 향한 우리의 당연한 반응은 <긍휼과 울어줌> 이어야 합니다. 고통 당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죄를 분석해 주는 <어쭙잖은 선지자 노릇>은 훗날 하나님앞에서 책망의 근거가 될 뿐입니다.
16 내가 머리를 높이 들면 주께서 젊은 사자처럼 나를 사냥하시며 내게 주의 놀라움을 다시 나타내시나이다 17 주께서 자주자주 증거하는 자를 바꾸어 나를 치시며 나를 향하여 진노를 더하시니 군대가 번갈아서 치는 것 같으니이다 (욥기 10:16-17)
여러분, 고난이 무섭게 몰아치고 있습니까? 숨쉴틈 조차 허락하지 않고 계속해서 몰아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려고, 나의 입을 누르고 눌렀지만, 결국 원망이 터져 나옵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서 “왜?” 냐고 따지듯 묻고, “차리라 나를 죽여 달라”고 항변하십니까? “도데체 내 죄가 뭔데 그러시냐?”고 묻게됩니까?
만약 여러분이 이런 고통중에 있다면, 어떤 위로가 여러분의 귀에 들어오겠습니까? “믿음으로 살라”는 말은 한가한 <종교용어> 처럼 들릴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산다!”는 것은 여유있는 사람들의 <사치>처럼 들릴 것입니다. 강단을 통해 흘러나오는 목사님들의 설교는, 그야 말로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처럼 들릴 것입니다.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삶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고통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은 여전히 우리를 향해 선하십니다. 이것이 욥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해 주시는 메세지입니다.
피투성이 일지라도 좋으니, 살아만 있으시기 바랍니다 (겔 16:6). 결국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회복 시키실 것입니다. 욥을 회복 하셨던 하나님께서 여러분도 회복하실 것입니다. 마침내 욥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에게도 복을 주십니다.
15 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 16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 것이니이다 (욥기 7:15-16)
여러분, 이런 기도를 해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 차라리 나를 죽여주세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으니, 제발 내 생명을 거둬가 주세요!” 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욥의 기도 였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발견하고 그들과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가끔 <자기 분>에 이기지 못해서,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계획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고, 그래서 내 삶이 부끄러움에 처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죽여달라고 성질을 부립니다. 그러나 욥의 기도는 그런 종류의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앞에서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항상 자신을 돌아봤고,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돌봤습니다. 그런데 욥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이 휘몰아친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차라리 죽여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종류의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태어나 보니…또는 그냥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이해 할 수 없는 고통속으로…그 끝을 알수 없는 고통 속으로… 계속 내동댕이 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살고 싶지 않으니, 차라리 죽여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욥의 기도였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욥처럼 기도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이렇게 해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 정말로 잘 살고 싶어요. 그런데 더이상 버틸 힘이 없어요. 제발 나를 도와 주세요. 나,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요!”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욥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실천 가능한 메세지>입니다. 그를 찾아내어 그와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25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 (욥기 6:25)
넘어진 사람에게는 <위로>만이 필요합니다. 그에게 왜 그런 고통이 찾아 왔는지에 대한 분석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고통당하는 본인 스스로가 이미 하나님앞에서 알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의 곁에서, 그와 함께 울어 주는 것입니다. 충고는 <넘어진 사람>에게하는 것이 아니라, 교만으로 <승승장구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넘어진 사람에게는 위로만이 필요합니다.
고통당하는 욥을 향해, 엘리바스가 계속 옳은 말로 충고합니다. 그러자 욥이 말합니다. “너의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엘리바스는 욥을 위로한다고 찾아왔지만, 욥에게 엘리바스는 위로가 아니라 고통을 더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엘리바스의 말들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로마서 12장 15절은, 그리스도인들이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그것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입니다. 고통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충고>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굳이 유익을 하나를 찾는다면, 충고하고 있는 그 당사자의 속만 시원해지는 것입니다. 고통속에서 충고를 듣는 사람들은 그 속이 더 타들어 갈 뿐입니다.
충고는 <넘어진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만으로 <승승장구 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하는 것입니다. 넘어진 사람에게는 <위로>만이 필요합니다. 그의 곁에서 그와 함께 울어주는 것 입니다.
8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27 볼지어다 우리가 연구한 바가 이와 같으니 너는 들어 보라 그러면 네가 알리라 (욥기 5:8,27)
하고 싶은 말이 한 보따리 일지라도, 입을 닫고 가만히 있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언제입니까? 내가 틀릴수도 있다는 <겸손과 신중>을 잃고, 내 <확신>에 사로 잡혀 있을 때 입니다. 그때는 옳아 보이는 말이 한가득 있어도, 입을 닫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 말의 겸손과 신중 >을 요구하십니다.
엘리바스가 욥에게 계속해서 맞는 말들을 합니다. 욥의 고난이 “그가 하나님을 찾지 않아서 온 것이다”고 합니다. 그것이 < 자신이 연구하여 얻은 결론 > 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욥은 그 충고를 듣고, 하나님 찾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바스의 충고는 욥의 상황에서는 틀린 말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엘리바스의 말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사람들에게 많은 말을 해야 할 상황에 자주 놓입니다. 그 가운데는 <겸손과 신중>을 잃어 버린 말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엘리바스처럼 합당한 말을 하지만, 하나님은 틀렸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상황에 맞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겸손함과 신중을 잃은 말이라면, 일단 삼켜야 합니다. 나의 확신이 <겸손과 절제>를 앞서는 순간, 그 말은 맞아도 틀린 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우리 마음을 겸손하신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채우시길 갈망합니다.
7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8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9 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의 콧김에 사라지느니라 (욥 4:7-9)
뿌린대로 거둡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 입니다. 그래서 죄를 두려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안에서 <하나님의 공의>보다 더 큰 원리가 있습니다. <은혜의 원리>입니다.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의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원리입니다. 그 긍휼을 의지해서,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욥의 고난에 대해서 욥의 친구 엘리바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의 고난은 너의 죄때문이다. 너는 너가 뿌린대로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너가 해야 할 것은 회개하는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뿌린대로 거둔다”는 원리를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짖지 말아야 하고,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기 42장 7절에서, 욥을 진단했던 엘리바스의 말이 옳지 않다고 꾸짖습니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원리는 세상의 모든 <종교가 가진 원리>입니다. 이 원리가 보편적인 원리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이보다 더 큰 원리가 있습니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이 원리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애절하게 선포하십니다.
여러분의 죄가 하늘을 찌릅니까? 너무 늦었다고 생각됩니까? 너무 멀리왔다고 생각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죄가 여러분을 찢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도로 낫게 하실 것이며, 하나님의 훈계가 여러분을 치셨을지라도, 다시 싸매 주실 것입니다.이 하나님의 긍휼앞으로 다시 나오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믿고 기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욥 1:11)
신앙은 자라야 합니다. 쑥쑥 자라지는 않을 지라도, 어제보다 오늘 더 자라 있어야 살아 있는 신앙입니다. 자라지 않는 신앙은 병들거나 죽은 신앙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이 어느 정도까지 자라길 바라실까요? 모든 것을 잃어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키는 신앙까지 입니다.
욥은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매순간 자신을 돌아보면서, 혹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께 범한 죄가 있을까 하여 회개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욥을 자랑스럽게 여기셨습니다. 그러자 사탄이 말합니다. “욥이 저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복을 주고 계시니까 그러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욥에게 주셨던 복을 다 빼앗으시면, 욥도 하나님을 배반할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을 시험해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욥의 시련은 시작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욥의 인내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욥은 끝내 자신의 신앙을 지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해도, 끝까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키는 신앙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가족, 직장, 그리고 생명까지도 버렸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에 소망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호기심과 개인적인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께 나왔고, 박해가 시작되자 모두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신앙은, 모든것을 잃어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끝까지 지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거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부활을 약속 하셨고, 또한 이 땅에서의 보호와 인도를 약속하셨습니다.
20 사로잡혔던 이스라엘의 많은 자손은 가나안 사람에게 속한 이 땅을 사르밧까지 얻을 것이며 예루살렘에서 사로잡혔던 자들 곧 스바랏에 있는 자들은 네겝의 성읍들을 얻을 것이니라 (오바댜 1: 20)
소망을 끝까지 하나님께 두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자기 백성을 다시 회복 시키십니다. 울더라도 하나님앞에서 울고, 불평이 터져나와도 하나님앞에서 터뜨리며, 심지어 죄중에 있다 할지라도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찢으셨을 지라도, 다시 싸매고, 도로 낫게 하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오래 참아주셨지만 그들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 부터 혹독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심판은 그들을 완전히 멸하기 위한 심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새롭게 하기 위한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신 후에는 다시 회복 시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날에 이스라엘은 그들이 쫓겨났던 땅으로 다시 돌아가며, 그들이 잃었던 모든 땅을 되 찾게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내가 죄가운데 징계를 받는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은, “누구든지 주를 의지하는 자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입니다. 당신께서 “찢으셨을 지라도, 다시 싸매고, 도로 낫게 하신다” 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에 담긴 약속이기도 합니다.
3 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바위 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오바댜 1:3)
교만이 우리 자신을 속이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우리안에 있는 교만은 우리 자신을 속입니다. “너 자신이 대단하다”고 말합니다. “너의 지혜와 돈이 너를 안전하게 한다, 하나님 없이도 너는 아무 지장이 없이 살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이러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면, 우리안에 교만이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마음에 동의하고 있다면, 교만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돔>의 멸망을 예언합니다. 에돔이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바위틈에 숨어있는 자신들을 무엇이 부술 수 있는가?”, “높은 곳에 머물고 있는 나를 땅바닥에 있는 누가 끌어 내릴수 있겠는가?” 라고 말입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에돔에게 말씀하십니다. “교만이 너를 속였다”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에돔을 멸하실 때, 사람들이 말하기를 “어떻게 저렇게 하나도 남김없이 망하게 되었는가?”라고 말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묵상 내내, 우리는 무거운 본문을 묵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심판을 예언하는 본문 묵상이 또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을 묵상하고 정리하는 목사의 마음도 무겁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금 우리가 들어야 할 본문인가 봅니다. 교만하지 맙시다. 교만이 나를 속이게 하지 맙시다. 교만하면 망합니다.
우리 모두는 자주 교만에 빠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회개합니다. 하지만 회개가 멈춰지는 순간, 그래서 교만이 나를 속이고 있는데도 내가 속고 있는줄 모르는 수준이 되는 순간,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됩니다. 마음을 겸허히 해야 합니다.
48 여호사밧이 다시스의 선박을 제조하고 오빌로 금을 구하러 보내려 하였더니 그 배가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하였으므로 가지 못하게 되매 49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내 종으로 당신의 종과 함께 배에 가게 하라 하나 여호사밧이 허락하지 아니하였더라 (열상 22:48-49)
하나님의 싸인을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건을 통해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타나내기도 하십니다. 참새 한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물며 그리스도인의 삶속에 나타나는 사건들은 어떻겠습니까?
여호사밧왕이 금을 실어오려고 보냈던 배가 풍랑을 만나 <파선>했습니다. 여호사밧왕은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금을 실어오려는 일을 원치 않는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아하시야가 사람을 보내어 안전한 항해를 도울테니, 다시 배를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왕은 그 도움을 거절하고, 그 일을 포기합니다.
여호사밧왕은 하나님앞에서 정직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전쟁터에서 군인보다 찬양대를 가장 앞에 세웠던 왕이었습니다. 그 순종으로 엄청난 위기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한 왕이었습니다. 그가 금을 실어오려고 보냈던 배가 <파선>되는 사건을, 자기 삶의 하나님의 뜻과 연결한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의 의미로 그 일을 포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생활속에서 <어떤 사건>을 통해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실패>일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실패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여호사밧왕은 모든 사건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 했고, 또한 그 뜻 앞에 자신을 맞췄고, 결국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29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왕상 21:29)
부모는 변덕쟁이 입니다. 자녀들의 잘못을 엄격하게 다루다가도, 어느날 자녀가 눈물로 다가오면, 엄격함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애처로운 마음에 그냥 자녀를 안아 줍니다. 자녀들은 이런 부모의 마음을 아주 잘 압니다. 그래서 가끔은 그 마음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저도 부모님께 그랬고, 지금 우리 딸도 그러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동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서 악하게 행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엄격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길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 회초리를 드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느 순간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앞에서 겸비해지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엄격함은 사라지고, 우리를 그냥 안아 주십니다.
오늘 아합왕이 그랬습니다. 아합이 얼마나 악한 왕이었습니까?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징계가 시작되려고 하자, 순식간에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선지자의 말을 듣고,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겸비하게 갖춥니다. 그럴때마다 하나님은 그를 향한 엄격함을 멈추십니다. 그리고 그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를 멈추시거나 미루십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이런 아합이 너무 얄밉게 느껴지지만, 하나님은 그런 아합을 받아 주십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이 큽니다. 우리가 언제든지 마음을 고치고, 하나님앞에서 마음을 겸비케하는 순간,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당신의 엄격함을 멈추시고, 우리를 향한 징계를 멈추십니다. 하나님앞에서 겸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하게 됩니다.
7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이르되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왕상 21:7)
승리를 경험한 이후에 더욱 겸손해 지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교만의 기회로 삼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낭떨어지앞에 서게 됩니다.
아합왕이 나봇이란 사람에게 포도원을 팔라고 권합니다. 나봇은 그것을 거절합니다. 그러자 아합왕과 아내 이세벨은 나봇을 죽이고 그 포도원을 뺴앗기로 결심합니다. 그들은 그것이 왕이라면 마땅히 할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어쩌다가 그렇게 생각한 것일까요?
얼마전 아합왕은 아람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아람은 강력한 나라였습니다. 이스라엘도 아람에게 조공을 바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아합이 아람과 싸워 이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합에게 승리를 주신것은 아합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합은 그 승리를 자신의 것으로 취합니다. 그리고 그 후로 스스로를 크게 생각하며 교만해 졌습니다. 그래서 왕인 자신은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결국 그는 나봇에게 누명을 씌워 죽이고 포도원을 뺴앗습니다.
아합이 하나님이 주신 승리를 교만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결국 그는 그 대가를 치루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앞에서 더욱 겸손해 지십시요. 주님은 우리에게 “선 줄로 생각하거든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왕상 18:21)
하나님은 양다리를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남편의 마음이 <나에게 반, 다른 여인에게 반 가있는 상태>를 마땅히 여기는 부인은 없습니다. 아내의 마음이 <나에게 반, 다른 남자에게 반 가있는 상태>를 허락하는 남편도 없습니다. 서로는 서로에게만 충실해야 합니다. 이렇듯 하나님도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만 충실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양다리를 걸쳤습니다. 한쪽 발은 하나님께, 다른 발은 바알과 아세라 우상에게 말입니다. 하나님을 버리자니 마음이 찝찝해서 버리지 못하고,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포기 하자니, 그것들이 주는 쾌락을 버릴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룩한 삶을 살라고 요구 하시지만, 바알과 아세라는 내가 어떻게 살던 상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바알과 아세라가 성적인 타락까지도 정당화 시켜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과 아세라에게 마음을 기울여가고 있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고 요구합니다. 바알과 아세라에게 서던지, 아니면 하나님편에 서던지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 요구에 아무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알기는 하지만, 그들의 쾌락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훗날 북 이스라엘의 멸망을 낳게 됩니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하나님께만 충실 하십시오. 계속 해서 양다리를 걸치는 삶을 살면, 선택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머뭇거리게 됩니다. 우리는 머뭇거렸던 롯의 아내가 머뭇거리다가 소금 기둥이 된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 부터 하나님앞에 분명히 서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결정정인 순간에 머뭇거리게 됩니다. 하나님편에 서는 삶을 지금 하시기 바랍니다.
32 그들이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러 이르되 왕의 종 벤하닷이 청하기를 내 생명을 살려 주옵소서 하더이다… (왕상 22:32)
성경의 메세지는 단순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살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죽는다” 입니다. “하나님앞에서 겸손하면 결국 이기고, 그렇지 안으면 결국 패한다.” 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겸손 하십시오. 그러면 승리합니다.
아람이란 나라가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아람은 이스라엘보다 훤씬 강한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아람왕 벤하닷은 아주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왕은 아합이었습니다. 그도 하나님앞에서 선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합이 전쟁의 위험 앞에 서자, 자신을 낮추고 선지자의 말을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그 아합을 보호하시고, 결국 벤하닷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성경의 메세지는 항상 간단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악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나오면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오늘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뿐 아니라 평생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영원히 살게 됩니다.
36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왕상 18:36)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나의 영광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속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에게만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오, 하나님!! 나로 하여금 정직하게 하나님의 영광만 구하게 하소서!’
엘리야 한 사람과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 850명 대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각자가 제단을 만들고 그 위에 각뜬 송아지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제단에 불이 내려와 송아지를 불태우는 신이 참 신인것으로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들이 자신의 신들에게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칼로 몸을 자해 하면서 하루종일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불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엘리야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가만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참 하나님이신것과 내가 하나님의 종인것을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알게 하소서!” 라고 말입니다. 엘리야의 짧은 기도가 끝나자, 하늘에서 갑자기 불이 내리고 송아지를 태워 버렸습니다.
그 대결에서 엘리야의 제단에 불이 내리지 않으면 그는 죽습니다. 만약 바알 제사장들의 제단과 자신의 제단 둘 모두에게 불이 내리지 않아도 그는 죽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권력을 가진 바알 제사장들을 농락 했고 그들을 지지하는 아합왕에게 도전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사는 길은 무조건 제단에 불이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도한 것이었습니다.
누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자기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만 구하는 마음을 주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삶에도 타나나게 하소서!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왕상 18:21)
하나님은 양다리를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남편의 마음이 <나에게 반, 다른 여인에게 반 가있는 상태>를 마땅히 여기는 부인은 없습니다. 아내의 마음이 <나에게 반, 다른 남자에게 반 가있는 상태>를 허락하는 남편도 없습니다. 서로는 서로에게만 충실해야 합니다. 이렇듯 하나님도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만 충실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양다리를 걸쳤습니다. 한쪽 발은 하나님께, 다른 발은 바알과 아세라 우상에게 말입니다. 하나님을 버리자니 마음이 찝찝해서 버리지 못하고,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포기 하자니, 그것들이 주는 쾌락을 버릴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룩한 삶을 살라고 요구 하시지만, 바알과 아세라는 내가 어떻게 살던 상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바알과 아세라가 성적인 타락까지도 정당화 시켜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과 아세라에게 마음을 기울여가고 있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고 요구합니다. 바알과 아세라에게 서던지, 아니면 하나님편에 서던지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 요구에 아무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알기는 하지만, 그들의 쾌락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훗날 북 이스라엘의 멸망을 낳게 됩니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하나님께만 충실 하십시오. 계속 해서 양다리를 걸치는 삶을 살면, 선택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머뭇거리게 됩니다. 우리는 머뭇거렸던 롯의 아내가 머뭇거리다가 소금 기둥이 된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 부터 하나님앞에 분명히 서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결정정인 순간에 머뭇거리게 됩니다. 하나님편에 서는 삶을 지금 하시기 바랍니다.
4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백 명을 가지고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더라 (열왕기상 18:4)
모든 사람들이 <유행>을 따라 삽니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상관하지 않고 따라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유행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삽니다. 만약 유행이 성경의 가치와 반대된다면, 그리스도인은 유행을 거부하고, 유행에 도전하며, 유행을 거슬러 살아갑니다.
바알 숭배가 이스라엘의 유행이 되었습니다. 출세를 위해서는 왕과 왕비가 섬기는 바알을 숭배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유행을 거부한 두 사람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한 사람은 왕궁을 관리하는 오바댜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바알을 숭배하는 왕 곁에서, 여전히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지킨 사람입니다. 왕에게 핍박받는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몰래 숨겨, 먹을 것과 마실것을 공급했습니다. 발각되면 왕에게 바로 죽게 되는데, 그 위험을 각오하면서 말입니다.
다른 한사람은 엘리야 선지자였습니다. 모든 종교인들이 유행을 따라 왕과 함께 바알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왕은 그를 죽이려고, 계속해서 그를 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그 왕을 찾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것은 목숨을 내 놓아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께 순종하여 왕 앞으로 나갑니다.
이 세상의 유행은 거의 대부분 하나님과 멀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바댜와 엘리야>와 같이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삶을 <근본주의적 삶>이며, 시대에 뒤떨어진 <극단 적인 보수주의적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행을 선택하면 결국 죽고, 하나님을 선택하면 결국 삽니다. 이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내 삶에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특별히 만나게 하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분별하고,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에 심각한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도 먹을 것이 없어 곧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사르밧에 살고 있는 어떤 과부에게 내려가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 곳에서 “과부를 통해 음식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사르밧으로 가서 그 과부를 만납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보니까, 과부도 먹을 것이 없어 당장 죽을 처지 였습니다. 과부는 자기에게 있는 마지막기름과 밀가루로 아들과 빵을 만들어 먹고, 이제 죽을 날을 기다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그 마지막 것을 먼저 자신에게 주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녀의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여인은 그것을 엘리야에게 줍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엘리야가 말한대로 여인의 기름병에서 기름이 떨어지지 않고, 밀가루 통에서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 현상은 기근이 끝날때까지 일어났습니다. 결국, 엘리야는 여인 때문에 살고, 과부는 엘리야 때문에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를 통해 나에게 하시려는 바가 있고, 나를 통해 그들에게 하시려는 바가 있어서 입니다. 하나님께서 서로를 통해서, 모두를 살아나게 하시기 위해서, 그 사람을 우리에게 보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사람이 보내졌습니까?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보이고 느껴집니까? 그렇다면 그 일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그가 여러분 때문에 살아나고, 여러분도 그 때문에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사람을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28 유다의 아사 왕 셋째 해에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고, 29 왕이 될 때에 여로보암의 온 집을 쳐서 생명 있는 자를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다 멸하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실로 사람 아히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으니 (왕상 15:28,29)
하나님은 우리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십니다. 그때 죄에서 돌이키면 우리가 살고, 그 기회를 놓치면 하나님의 심판속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에게 “그의 온 집을 칠 것이다”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경고가 있은 이후로도, 여러보암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 나답 >이 왕권을 이어 받았을 때, 하나님의 경고가 성취됩니다. < 바아사 >라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켜 < 나답왕 >과 그의 가족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제거한 것입니다. 여로보암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가 결국 다 이루어 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경고 하셨는데도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 징계가 시작됩니다. 지금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돌이킬 시간을 주고 계신 것입니다.
니느웨를 멸하기로 작정 하셨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서자, 작정하신 심판을 취소하십니다. 우리가 죄에서 돌이키면, 하나님은 약속하신대로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시간을 주시면, 그 죄에서 돌이키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11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12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13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왕상 15:11,12,13 부분)
6일 전에 YWAM의 창시자인 로렌커닝헴이 소천 했습니다. 그는 그의 책에서 성도들에게 [ 벼랑끝에 서는 용기 ]를 요구했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여 벼랑 끝에 서야 하는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날에 우리는, 그 벼랑 끝에 서서, 내가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언젠가 반드시 < 믿음의 결단 >을 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두렵고, 갈등 되고, 주저하게 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때 믿음을 보이면, 우리 삶은 다른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솔로몬 이후로 남유다 왕국은 계속해서 고난을 겪었습니다. 모든 왕들이 하나님앞에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특별한 결단을 했던 왕이 등장합니다. < 아사왕 >입니다. 그가 어떤 결단을 했습니까? 그의 어머니를 폐위시키는 것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세라 상을 세우고, 그것에 절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아사왕은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일지라도 용납하지 않고 어머니를 폐위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아사왕을 기쁘게 여기시고, 그의 나라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성경은 그가 다윗과 같이 정직하게 행한 왕이라고 평가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요구 하셨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족과 직업을 버리고 당신을 따르라고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요단강에 발을 담그라고 요구 하셨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물 위로 걸어 오라고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이와같은 믿음을 요구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믿음의 결단을 보이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3 아비얌이 그의 아버지가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의 마음이 …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나 4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그의 아들을 세워 뒤를 잇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셨으니 (열왕기상 15:3-4)
내가 하나님앞에서 바르게 살면, 내 주변 사람들이 복을 누립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의 때에 애굽에 큰 복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애굽때문이 아니라 요셉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아비얌>이 르호보암의 뒤를 이어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아버지 르호보암왕 같이 계속 범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왕권을 끝까지 붙들어 주시고, 그의 왕권이 그의 아들에게 이어지도록 인도 하셨습니다. 본문은 그 이유가 <다윗>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기억하시면서, 그의 후손인 아비얌을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범죄하는 아비얌 자신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앞에서 신실하게 산 다윗때문에 그나마 아비얌이 복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높여 주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고, 반면 그를 대적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약속 하셨기 때문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창세기 12:3a)” 하나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과 마음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복을 누리게 됩니다.
22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보다 뛰어나게 하여 그 범한 죄로 여호와를 노엽게 하였으니 (열왕기상 14:22)
여러분의 고난은 어떤 고난입니까? 연단을 위한 고난입니까? 믿음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고난입니까? 이 두가지 고난은 결국 승리로 끝납니다. 문제가 되는 고난은, 죄 때문에 오는 고난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우리를 맞추지 않을 때 오는 고난입니다. 이 고난은 소모적인 고난이며, 피해야 할 고난입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평안하기만 했던 남유다에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의 죄 때문입니다. 그들이 어떤 죄를 지었습니까? 1) 솔로몬 성전을 잘 지어 놓고, 산과 골짜기에서 우상을 위해 몰래 몰래 향을 피웠습니다. 2) 그들가운데 남자가 남자를 성적으로 탐하는 도덕적 타락이 있었습니다. 22절은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 보다 <뛰어나게 범죄했다>”고 기록합니다. 그 결과 남유다는 애굽으로 부터 치명적인 공격을 받고, 반란으로 세워진 북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유다를 괴롭혔습니다.
여러분의 고난은 어떤 고난입니까? 연단을 위한 고난입니까? 아니면 믿음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고난입니까? 만약 범죄함 때문이라면, 그 고난은 소모적인 고난입니다. 그 고난은 죄에서 떠나면 멈춥니다.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맞추면 멈춥니다.
우리시대는 하나님을 가볍게 여깁니다. 그래서 너무 쉽게 경솔함에 빠집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들인데,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 안에 있는 < 하나님에 대한 오해 > 때문입니다. 그 오해는… 우리가 “하나님의 턱수염을 막 잡아 당겨도,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참아 주기만 하는 착한 할아버지’ 쯤으로 여기는 오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지만, 언제까지나 참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돌아올 시간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돌아오지 않고, 경솔함을 멈추지 않으면, 결국 회초리를 드십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게 만들고, 당신의 엄격함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여로보암이 금송아지 두마리를 세우고, 백성들로하여금 우상 숭배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그 길로 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서 여로보암에게 경고를 하셨습니다. 그러자 여로보암은 화가나서 “선지자를 체포하라"고 팔을 벌려 명령합니다. 그 순간, 여로보암의 팔이 굳어져 버립니다. 그리고 그가 제사하던 우상의 제단이 무너지고, 제단위의 재가 쏟아져 내립니다.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에게 당신의 엄격하심을 보이시며 경고의 회초리를 보내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계속 참으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여러 모양으로 경고하시고, 돌아서지 않으면 회초리를 들으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솔함을 멈추면 평안하지만, 멈추지 않으면 하나님의 징계안에 들어갑니다.
26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33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열왕기 상 12:26, 28a, 29)
< 스스로 생각 >하지 마십시오. 주님으로 부터 그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점검 받으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다면 버리고, 합당하다면 행하고, 잘 모르겠다면 신중하게 다시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생각을 하나님앞에서 점검하는 사람들입니다.
< 여로보암 >이 < 르호보암 왕 >에게 반기를 들고, 또 다른 나라를 세웠습니다. 여기까지는 하나님께서도 허용하시는 일이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가 문제입니다. < 여로보암 >이 새로 세운 나라에 금송아지를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로 하여금 그곳에 가서 예배하라고 말합니다. < 여로보암 >이 왜 이런 일을 했습니까?
26절에 보니까, 그가 < 스스로 생각한 것 >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의 백성이 하나님을 예배하러 예루살렘 성전에 다니면, 다시 백성들의 마음이 < 르호보암 왕 >에게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 스스로의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금송아지를 세우고, 자기 마음대로 제사장을 세우고, 자기 마음대로 특정한 날을 정하여, 금송아지에게 예배하는 새로운 종교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 스스로의 생각 >은 항상 우리를 근거 없는 두려움과 염려속으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엉뚱한 일을 계획하고 행하게 합니다. 주님 앞에서 생각을 점검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24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열왕기상 12:24절 중)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하나님께서 멈추라고 하시면 멈추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니라고 하시는데, 그 일을 기어코 하는 것은 하나님께 맞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여로보암 > 이 솔로몬의 아들 < 르호보암 왕 > 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을 설득해서 이스라엘을 두개로 나눴습니다. < 르호보암 왕 > 이 반역을 진압하기 위해서 80만명의 군대를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 르호보암 왕>에게 선지자를 통해, “전쟁을 멈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라가 두개로 쪼개지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일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서 성전을 짖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길을 계속 막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막으실 때에는,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바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옳다고 생각해도, 하나님께서 아니라고 말씀하시면 뒤로 물러나야 합니다.
뒤로 물러나는 것이 옳지 않아보여도, 하나님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시며 멈추게 하시고, 상황을 막아가며 멈추게 하시면, 뒤로 물러나야 합니다. 그것을 잘 분별하는 우리의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7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열왕기 상 12:7)
겸손한 길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 주십니다. 나를 높이는 길을 계속 선택하면, 그 길이 결국 나를 멸망으로 이끕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앞에서 항상 자기를 낮추는 사람들입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솔로몬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신하가 르호보암에게 도전을 합니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아버지와 같이 백성들에게 많은 짐을 지게 한다면, 우리는 당신을 떠나 새로운 나라를 세울 것이오. 그러니 백성들의 짊을 가볍게 해 주시오.” 라고 말입니다.
왕은 이 문제를 신하들과 의논했습니다. 신하들 가운데 나이가 많은 신하들은 왕이 강경한 마음을 내려놓고 그의 말을 들어주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나 젊은 신하들은 그의 청을 거절 하라고 말합니다. 그가 왕을 얕보고하는 말이니, 그들을 더 강하게 통치할 것이라고 대답하라고 권면합니다. 왕은 젊은 사람들의 권면을 선택합니다. 자신을 강한 왕으로 보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나라는 둘로 쪼게지게 됩니다.
먼저 겸손한 길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지는 길 같지만, 결국에는 이기는 길입니다. 우리에게 믿음과 인가 있으면, 그 겸손한 길이 주는 승리를 결국 경험하게 됩니다.
19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삿 16:19)
알고 지내는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목사님은 목회가 너무 힘들어서 목회를 내려 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목회를 내려 놓자마자 자기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가는 것같은 느낌을 가졌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영적인 지도자에게 주셨던 힘이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힘, 설교를 하는 힘, 기도를 이끄는 힘, 영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힘 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를 감당해 나가라고 주신 힘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정체성과 부르심을 포기하면 그 힘은 더이상 우리에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삼손은 <나실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실인의 상징은 <머리>를 깍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방탕한 삶을 살고, 결국 그의 마지막 정체성인 머리카락 마저 잃게됩니다. 그 결과, 그는 힘을 잃어 버립니다. 그리고 눈이 뽑힌체 블레셋 사람들앞에서 재주를 부리는 사람이 됩니다.
정체성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포기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셨던 <능력>도 사라집니다.
13c …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그대가 만일 나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베틀의 날실에 섞어 짜면 되리라 하는지라 (삿 16:13)
처음부터 죄와 섞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자기의 힘으로 죄를 이길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죄와 정면으로 부딪혀 싸우려고 하기보다, 그 상황을 피해는 것이 지혜입니다. 요셉은 자신을 유혹 했던 보디발의 안내에게서 도망쳐 나옵니다. 그러나 본문의 삼손은 죄와 함께 뒹구르기 시작합니다.
삼손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여자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삼손은 그의 삶을 결정적으로 망가뜨릴 여인을 만납니다. 드릴라입니다.
드릴라는 삼손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은밀한 대화를 시작하고, 삼손은 그 대화에 재미삼아 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가 말하면 안되는 부분을 말하게 되고, 인생 자체가 파멸을 맞게 됩니다.
죄에게 이끌려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애초에 죄를 피하시기 바랍니다. 그 끝에는 반드시 파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 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15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집어들고 그것으로 천 명을 죽이고 16 이르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 하니라 (사사기 15:15-16)
오늘도 삼손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이것이 삼손의 <바른 열심>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의 <잘못된 삶>을 통해서였습니다.
삼손은 자신의 <블레셋 아내>를 친구에게 줘버렸습니다. 그리고 얼마뒤 그 아내와 다시 <합방>을 하려고 했습니다. 장인은 그것을 막았고, 화가난 삼손은 분풀이로 블레셋 사람들의 밀밭을 태웠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군대를 이끌고 삼손과 싸우려고 했는데, 삼손은 그들 또한 죽였습니다. 그 수는 천명이었습니다.
삼손은 이스라엘의 사사입니다. 그들의 적인 블레셋으로 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것이 그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책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단지 하나님이 그에게 준 은혜를 누리면서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손을 통해서 블레셋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순종이나 불순종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어느편에서 살았는가에 따라 우리 인생의 삶이 달라집니다.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한 사람은 <은혜와 복>을 누리고, 불신앙으로 자신의 길을 간 사람은 그 <결과> 또한 맞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은혜와 복>을 누리는 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길 소망합니다.
4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사사기 14:4)
하나님의 뜻은 멈추지 않고 진행됩니다. 심지어 <악>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계획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삼손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선택하셨습니다. 하지만 삼손은 그 역할에 충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준 힘으로 자기 <욕망>을 채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삼손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욕망을 따라 <블레셋 여인>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욕망을 채우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렇다면 <삼손>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일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 속에서도 자신의 일을 이루십니다. 삼손의 망나니 삶을 통해서, 결국 블레셋의 불량배들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않으면, 그의 불순종으로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을 이루십니다.
성도의 <영광>은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은 실패하지 않고 성취됩니다.
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삿 11:30-31)
믿음과 욕망이 하나로 섞여 있으면 삶에 혼돈이 찾아옵니다.
암몬 족속과 이스라엘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이끄는 <입다>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승리를 주신다면, 자신을 축하하기 위해 온 그 첫 사람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승리를 한 후 그를 축하하기 위해서 온 첫 사람은 그의 <딸>이었습니다. 입다는 약속대로 그 딸을 번제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입다가 왜 그런 기도를 한 것입니까?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에 집중했던 것입니다. 그 집착이 <입다의 욕망>이었고, 결국 잘못된 <서원>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믿음과 욕망>이 섞이면 삶에 질서가 무너집니다. 승리가 있지만 기쁘지 않고, 성취가 있지만 평안이 없습니다. 도리어 그 성취가 가져다주는 혼란이 뒤따릅니다.
믿음안에서 욕망을 걸러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걸려져야 삶에 질서가 잡힙니다. 그것이 걸러져야 우리가 얻는 성취와 승리가 진정한 평안이 됩니다.
27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하건대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 (삿 11:27)
악을 행하는 사람가운데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 무작정 악을 행하는 사람과, 둘째 합리적인 이유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첫째의 경우는 무섭지만 저항하기는 쉽습니다. 그 악이 정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번째의 경우는 다루기가 힘듭니다. 악이 <정당함> 이란 옷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입다>가 이런 경우 앞에 섰습니다.
암몬왕이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습니다. 공격의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뺴앗은 자신들의 땅을 찾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의 땅을 뺴앗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암몬왕은 그들의 조상들이 그들의 땅을 뺴았았고, 자신들은 그것을 찾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공격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입다는 본문처럼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암몬 사이에서 판결하시옵소서!” 라고 말입니다. 입다는 하나님께 암몬을 맡기는 것입니다. 결국 암몬이 전쟁에서 패합니다.
우리 삶에도 저항하기 힘든 <악>이 있습니다. 분명 악인데, 그것이 <정당함>이란 옷을 입었을 경우입니다. 그것을 잘못 다루면 우리 스스로가 다치게 됩니다. 그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그 악을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판결하십니다.
내가 다루기 힘든 악이 있다면, 하나님께 올려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공의로 판단하십니다.
1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 3 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11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삿 11:1, 3, 11b)
<배경과 출신>이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어려운 <배경과 출신>속에서 하나님께 붙들려 사용된 사람들의 이야기기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특별한 사람들로 훈련하셨습니다. 1) 고난을 극복하는 법을 알게하셨고; 2) 인생을 해석하는 법을 알게하셨고 3)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하셨고; 4)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입다>라는 사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가 농담으로 “성경에서 옷을 가장 잘 입는 사람”이라고 가끔 말하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
입다는 <서자>였습니다. 본 부인이 아니라, 아버지가 <기생>과의 외도로 낳은 자식이었습니다. 형제들은 입다를 형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집에서 쫓아 냈습니다. 입다는 거리에서 별볼일 없는 사람들과 어울렸습니다. 그런데 그는 결국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지게 됩니다.
출신과 배경이 사람의 인생을 결정짖지 않습니다. 인생을 결정 짖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사십시요. 하나님을 의지 하십시요. 그것이 인생의 승패를 가르는 <트리거, Trigger>입니다.
6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9 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과 싸우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 (사사기 10:6,9)
고난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다양한 각도에서 고난의 원인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런데 가장 대표적인 고난의 원인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길때>입니다.
<우상 숭배>는 단순히 다른 신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우상 숭배의 본질은 <자기 숭배>입니다. 그래서 나타나는 현상이 1) 극단적이 <자기애-자기 사랑>입니다. 2) 자기애를 실현시켜 줄 돈만 추구합니다. 3) 그것을 이뤄준다면, 어떤 신이든 찾아갑니다. 4) 그들의 삶을 결정하고 통제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돈과 번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우상 숭배>로 돌아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나만을 돌아보는 <자기애>에서, 하나님에게로 시선을 돌리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의 <자기애-자기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하나님의 통제와 순종함이 없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고난이 찾아오면, 우리는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리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시선을 고정하지 말고, 하나님에게 시선을 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앞에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27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사사기 8:27)
성경은 우상 숭배를 <영적인 음란, 영적인 간음> 이라고 표현합니다. <간음과 음란>은 합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쾌락을 즐기는 것을 말입니다. <영적인 음란>도 합법적이지 않은 믿음의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1) 바른 마음의 상태, 2) 공의로운 삶, 3) 회개와 돌이킴 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그러나 <무당과 점쟁이>는 그런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단지 영적인 묘수로 1) 건강, 2) 돈, 3) 권력과 쾌락 을 줄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선택합니다. 이것이 영적인 <간음과 음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영적인 간음과 음란>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과의 동행 없이, 돈, 건강, 명예만 구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해 줄 어떤 방법들, 즉 예언하는 사람을 찾아 간다든지… 무엇을 본다는 사람을 찾아 간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안에 들어온 <영적이 음란>입니다.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의 옷 <에봇>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그것에 <신통한 효험>이 있는 것처럼 여기고, 그것을 위했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 없이, 그 앞에서 복을 빌고, 번영을 빌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그들이 영적인 <음란>을 행한다고 말합니다.
먼저 하나님과 동행하십시요. 그리고 하나님께 필요를 구하십시요. 하나님은 그 사람의 삶을 이끌어 주십니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조롱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배고픔을 외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미디안 연합군의 두 왕>을 추격하는 기드온의 군대가, 배고픔과 목마름에 지치게 됩니다. 기드온 <숙곳>이라는 성을 지날 때, 그 성의 리더들에게 먹을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드온을 조롱하며, 기드온의 청을 거절합니다.
기드온의 군대가 사실 보잘것 없는데, 음식을 내어 주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기드온의 군대가 어제 얻은 승리는, 운이 좋아서 어쩌다가 얻은 것이지 그들의 능력이 아니라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300명의 기드온 군대가, 도망하는 미디안의 두왕을 따라간다해도 이길 수 없다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먹을 것을 내어 주는 것은, 나중에 하나도 이익이 안되는 일이라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결과가 어떻습니까? 기드온은 300명 군대가, 미디안 연합군의 오천명 도망자를 전멸하고, 그 두 왕의 목을 벱니다. 그리고 기드온은 돌아오는 길에 숙곳 사람들을 전멸합니다.
약한 사람들을 아프게 하지 말고, 가난한 사람들이 청하는 도움에 반응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난한 사람을 조롱하는 것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잠언 17:5). 하나님께서 그 조롱을 값으십니다.
22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사사기 7:22)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적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일수도 있고, 상황일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 하십시요. 하나님께는 내 앞의 적들을 이길 방법을 가지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과 미다안 족속이 전쟁을 합니다. 이스라엘은 <300명>, 그리고 그들을 대항하는 적들은 미디안과 아말렉, 그리고 동방 사람들로 구성된 <연합군> 이었습니다. 결과는 불보듯 뻔한 싸움입니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300명이 이깁니다. 미디안 연합군들 안에 내분이 일어납니다. 그 때 이스라엘 300명의 용사들이 소리를 지르고 항아리를 깨자, 그 소리에 놀란 연합군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칼을 휘두르게 되고, 결국 전멸하게 됩니다.
적들은 크고 두렵습니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길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는 방법이 있습니다.
두려운 것은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더 이상 하나님을 소망하지 않는 상태에 놓이는 것입니다. 무조건,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 하십시요.
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시니 6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사사기 6:1,6)
모든 고난의 원인을 <사람의 범죄함> 때문으로 보기는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 가장 대표적인 <고난의 이유>는 <사람들의 범죄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죄할 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셨습니다.
고난의 목적은, 1) 그들이 가고 있던 죄의 길을 멈추게 하는 것입니다. 2) 높아진 마음을 낮추고 하나님께 집중하게 하는 것입니다. 3) 스스로 정결케 할 힘이 없었는데, 고난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사기를 묵상하고 있는데, 사사기에 등장하는 반복적인 특징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범죄할때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고난을 허락했고, 그들이 다시 하나님께 마음을 맞출 때,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거두어 가셨다는 것입니다.
이 단순한 삶의 원리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흐릅니다. 여러분이 고난을 만난다면, 1) 죄의 길을 멈추십시요. 2) 높아진 마음을 겸손케 하십시요. 3) 마음을 하나님께 고정하고, 하나님께 나가십시요.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사사기는 이 <단순한 원리>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을 지배하는 법칙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31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 (사사기 5:31a)
사람은 운명은 결국 두 갈레로 나뉘어집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산 사람들의 <멸망>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산 사람들이 얻게될 <영광>입니다.
하나님이 안 보인다고 막 살면 안됩니다. 결국 그 삶이 처하게될 운명은 <영혼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영광>으로 이끄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죄의 심각성>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에는 두가지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첫째, 우리의 죄값을 우리 대신 치루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입니다. 둘째, 죄에 넘어질 때마다 예수님안에 있는 죄 용서의 약속을 믿고, 날마다 회개합니다.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죄인인것을 인정하고, 예수님앞에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8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 때에 전쟁이 성문에 이르렀으나 이스라엘의 사만 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가 (사사기 5:8)
죄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낙심하지 말고, 다시 주님을 바라 보십시요.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십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드보라>는 그 당시 이스라엘이 처했던 상황에 대해서 8절에서 설명합니다. 1)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고, <새신들> 곧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2) 그 결과 이스라엘은 <전쟁>이라는 고난 앞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3) 전쟁을 해야 했지만, 이스라엘백성 가운데는 <방패와 창>이 없었습니다.
이 상황을 우리에게 가져오면 이렇습니다. 1) 하나님앞에 범죄했습니다. 2) 그 결과 삶의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3) 고난을 벗어나 보려고 하지만, 그것을 벗어날 힘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내 죄 때문에 고난가운데 빠지게 되면, 우리는 크게 낙심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돌아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은 그들이 다시 하나님께 나올 때, 그들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인내의 시간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놀라운 방법으로 회복 시키십니다.
여러분의 고난이, 죄로 말미암아 왔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다시 하나님앞에 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오는 자들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고난을 거두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인내와 자비가 크십니다.
21 그가 깊이 잠드니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가지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의 관자놀이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그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사사기 4:21)
상황이 뻔하다고, 자포자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하시면, 우리의 기대와 상식을 넘어서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여자와 남자가 싸우면, 남자가 이기고, 힘센 사람과 약한 사람이 싸우면, 힘센 사람이 이깁니다. 이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결과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과 가나안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사람은 <여자> 선지자 <드보라>였고, 가나안을 다스리던 왕은 <야빈>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조직화된 군대가 없었지만, 가나안 왕 야빈은 철병거만 900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야빈의 군대는 전쟁에서 잔 뼈가 굵은 <시스라>가 지휘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전쟁의 결과는 뻔합니다. 야빈과 시스라가 이겨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결과가 나옵니까? 철병거 900대를 가진 야빈의 군대가 전멸하고, 군대를 시휘하던 시스라는 <야엘>이라는 가녀린 여인의 손에 죽임을 당합니다. 그것도 여인에 의해 머리에 장막 말뚝이 박혀서 죽습니다. 결국 야빈왕은 몰락합니다.
상황이 뻔하다고 자포자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면 역전이 일어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속에서 일하시도록 하나님의 자리를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속에서 일 하실 수 있도록, 1)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요. 2) 하나님의 뜻에 여러분을 맞추십시요. 3)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이 있다면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13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1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15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사사기 2:13-15)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왜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의로운 삶을 요구합니다. 그들이 의로운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돌보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우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그들을 섬기면 돈, 명예, 쾌락을 보장해 준다고 말합니다. 의로운 삶은 요구하지 않은체, 그것들을 얻을 <묘수>를 안내해줍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에게 갑니다.
우상에게 간 이스라엘 백성이 행복을 찾았습니까? 본문을 보니까 그들의 삶에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1) 그들의 삶이 노략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2) 대적들의 손에 넘겨지지만 대적을 이길힘이 없었습니다. 3)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재앙이 그들을 따라다녔습니다.
사람들은 <과일>의 달콤함을 얻으려고, 땅을 파고 나무를 심는 대신, <사탕과 초콜렛>을 만들었습니다. 사탕이 당장 입에 달지는 모르지만, 여러분의 핏속에서 죽음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에 빠지면 병들어 죽습니다. 우상 숭배가 마찬가지입니다. 의로운 삶을 요구하지 않는 우상을 따르며, 번영만 추구하면, 곧 멸망으로 가게 됩니다.
우상을 버리십시요.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십시요. 그것이 <흔들리지 않는 번영>으로 가는 길입니다. <허탈하지 않는 기쁨>을 얻는 길입니다.
2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사사기 2:2-3)
하나님과 세상 가운데 하나를 분명히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세상과 하나님을 다 섬길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가능하고 유익한 것 처럼 보입니다. 힘들때는 하나님께 달려가고, 즐길 때는 세상을 선택하면 좋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여러분이 즐기던 그 세상이, 결국 여러분을 넘어뜨립니다. 그 전에 그 세상을 끊어 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족속을 모두 몰아 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이스라엘 가운데 내버려두면, 그들이 결국 이스라엘을 고통스럽게하는 올무가 될것이라고 경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족속과의 동거를 선택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전쟁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쟁의 위험은 피하면서, 그들에게서 좋은 것을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면 된다고 생각하고, 가나안 족속과의 동거를 결정합니다.
그것은 사람의 생각일 뿐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경고대로, 가나안 족속들로 인해서, 사사시대 내내 큰 고통을 겪게됩니다.
끊어 내야 할 세상을 오늘 끊어 내시기 바랍니다. 그 유익 때문에 주저하면, 나중에 그것으로 인해 무너집니다.
22 요셉 가문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 32 아셀 족속이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니 이는 그들을 쫓아 내지 못함이었더라 (사사기 1:22, 32)
오늘 하나님의 명령을 행하십시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마십시요.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점령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눈 앞에는, 그 땅을 점령하지 못할 <수 많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도 분명한 이유 였고, 이해 할 수 있는 이유들 이었습니다.
본문에는 그런 상황 앞에서, 서로 다른 결정을 한 지파들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요셉지파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점령할 땅으로 올라가는 사람들과, 현실 때문에 점령을 포기한 지파입니다.
명령을 따라, 점령할 땅으로 올라간 지파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 땅을 점령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지파들은. 가나안 족속들과 더불어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후에 그들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격게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전쟁을 하는 것은 귀찮고, 두렵고, 어려움을 감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이유를 따르는 것은, 쉽고 평안하고, 위험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하지 않은 쉬운 선택은, 후에 반드시 더 큰 어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오늘 말씀대로 행해야 할 그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귀찮고, 두렵고, 어려워 보이는 그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십시요. 그것이 하나님앞에서 사는 길입니다.
12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13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하였으므로 갈렙이 그의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15 b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사사기 1:12-13, 15b)
믿음에는 정당한 대가가 주어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우리의 믿음은 어떻게 확인 됩니까? 성경의 모든 경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은 위험을 감수하는 삶의 <헌신과 수고>로 표현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옷니엘은 자신이 아낙 자손의 땅을 점령 하겠다고 자원합니다. 아낙 자손은 이스라엘백성에게 40년간 광야 생활을 하게 만들었던 강력한 족속이었습니다. 본문으로 부터 40년전, 가나안을 정탐했던 이스라엘 민족들은 아낙 자손들을 보면서, 자신들은 메뚜기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을 점령할 수 없다고 했고, 그 결과 40년간 광야를 떠돌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옷니엘은 그 족속의 땅을 공격하여 마침네 점령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에 정당한 보상을 하십니다. 옷니엘에게 갈렙을 딸을 주고, 밭을 주고, 두개의 샘물을 줍니다. 그리고 옷니엘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게 됩니다.
하나님앞에서 바른 믿음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위험을 감수하는 삶의 헌신과 수고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하나님앞에서 눈물로 씨를 뿌리는 사람은,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날이 옵니다.
30 그들이 또 순금으로 거룩한 패를 만들고 도장을 새김 같이 그 위에 ‘여호와께 성결’ 이라 새기고 31 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 전면에 달았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출애굽기 39:30-31)
목사는 <하나님앞에서 성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결의 중요한 요소는 <정직>입니다.
정직함은 사람들앞에 보여 지는 것에서 깨끗함이 아니라, 보이지지 않는 <마음과 동기>에서 깨끗함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흠이 없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연약함으로 넘어 질 수도 있지만, 하나님과 사람 앞에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정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앞에서 회개하고 다시 서는 용기가 정직입니다.
오늘 본문은 제사장이 머리에 쓰게될 관에 쓰여진 문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성결> 입니다. 백성을 대표해서 하나님앞에 나가는 제사장이 머릿속에 기억해야 할 문구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뿐 아니라, 더욱이 목사와 선교사와 전도사가 머리에 품어야 할 표어입니다. 그것은 <여호와께 성결>입니다.
이 문구에 의하면 우리의 성결이 향하고 있는 곳은 “여호와께…” 입니다. “사람에게…!” 가 아닙니다. 사람이 인정하지 않는다고해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면 순종해야 합니다. 반대로, 사람이 인정해도, 하나님이 아니라고 한다면, 고독한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이 정직이고, 하나님앞에서 성결한 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 정직함으로 <성결>한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1 그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성소에서 섬길 때 입을 정교한 옷을 만들고 또 아론을 위해 거룩한 옷을 만들었더라 (출애굽기 39:1)
목사, 선교사, 전도사가 입어야 할 옷은 <거룩과 정직>의 옷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 아론을 위해서 화려한 옷을 만드셨습니다. 염색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그때에,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옷을 짰고, 여기에 금실을 더했고, 수 많은 종류의 보석까지 장식으로 붙였습니다. 이것은 제자장 자신을 높여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보이기 위해서 입니다.
제사장이 이 옷 안에 입어야 할 옷이 있습니다. <거룩과 정직함>이라는 옷입니다. 그 속옷을 입지 않은체, 화려한 겉옷만 입게되면, 제사장은 지성소 안에서 직무를 수행하다가, 하나님의 영광에 쏘여 죽게됩니다.
목사, 선교사, 전도사가 져야 할 사명의 무게가 있습니다. 평생을 거룩함과 정직함으로 사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짊어 져야 할 무게이지만, 사역자들에게는 더욱 요구됩니다. 그래야만 그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그가 하나님의 사람들을 이끌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포함한 한국 교회 목사, 선교사, 전도사님들이 이 무게를 던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다 망가졌습니다. 회개합니다. 성도여려분들의 책임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옆에서 조언하고 기도해 주지 않기 떄문입니다. 여러분의 목사님과 선교사님과 전도사님이 하나님앞에서 거룩하고 정직하게 해달라고 조언해 주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함께> 지어지는 곳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막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 지어졌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째, 성막 제작에 사용 될 전체 비용을 계산하고 관리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다말>이었습니다. 둘째, 성막 기구들을 만든 사람입니다. 그는 <브살렐>이었습니다. 셋째, 성막을 이루는 천막을 만든 사람입니다. 그는 <오홀리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 모든 재료를 헌금 했습니까? 이스라엘 민족 전체입니다. 38장 26절에 의하면, 모아진 돈은 은으로 1,750세겔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 전체 인구인 603,550명이, 한 사람당 반 세겔씩 낸 것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모든 성도들에 의해 지어져 갑니다.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각 분야의 리더로 세워지고, 성도들은 감당할 수 있는 분량으로 교회를 섬깁니다.
모든 성도들이 교회를 세워나가고 있다면, 그 교회는 건강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혼자 그것을 짊어지고 있다면, 건강하지 않은 교회입니다. 곧 문제가 발생하고 병들게 됩니다.
은사를 따라, 여러 모양으로, 교회를 섬기시기 바랍니다.
8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 (출애굽기 38:8)
오늘 본문은 성막 물품가운데 <물두멍>의 제작 과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두멍은 물을 담아 놓는 <큰 세수대야> 였습니다. 제사장들은 성막에 들어가기 전에 그곳에서 손과 발을 씻었습니다. 물두멍은 놋으로 만들어 졌는데 그 재료로 쓰여졌던 놋이 모두 성막에서 일하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막에는 성막일을 돕는 레위족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막을 청소하고, 그릇들을 씻고 관리하는 일을 했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들이, 성막 물두멍이 만들어질 때, 자신들의 청동 거울을 물두멍의 재료로 헌금을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인들이 가졌던 신앙의 모습을 엿볼수 있습니다. 외모가 아니라 속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인들은 자신들의 거울을 내어 줌으로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내적인 거룩함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신앙은 마음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동기를 정직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드러나는 것을 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속 사람을 감찰하십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내면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29 마음에 자원하는 남녀는 누구나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빌어 명령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드렸으니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린 예물이니라 (출애굽기 35:29)
헌금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헌금을 모아 성막을 만드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문 가운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마음>이란 단어입니다. “자원하는 마음, 마음에 감동된자, 마음에서…”라는 표현입니다.
헌금에 있어서, 자원하는 마음은 두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첫째, 마음의 결단입니다. 옳다 생각하고 헌금을 결단하는 것입니다. 둘째, 마음의 감동입니다. 드려야겠다는 감동이 자연스럽고 반복적으로 올라오는 것입니다.
자원하지 않은 헌금은 부작용을 일으킵니다. 첫째, 원망하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둘째, 공동체안에서 나의 위치를 주장하게 됩니다. 헌금하는 만큼 내가 인정되지 않으면 공동체 안에서 불화를 일으킵니다. 셋째, 주인의식입니다. 내가 이렇게 헌금을 하니, 내가 주장 할게 있다고 생각하며 행동합니다.
자원함이 없는 헌금은 멈추시기 바랍니다. 자원하는 결단이 없는데, 사람들의 눈치 때문에, 혹은 분위기 때문에 떠밀리는 헌금은 멈추어야 합니다. 자원하는 마음이 결정되었을때 헌금을 하시기 바랍니다.
2 엿새 동안은 일하고 일곱째 날은 너희를 위한 거룩한 날이니 여호와께 엄숙한 안식일이라 누구든지 이 날에 일하는 자는 죽일지니 3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 (출애굽기 35:2,3)
모든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죽게 하실 수도 있고, 살게 하실수도 있습니다.
일의 결과가 사람의 재능과 노력에 달려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나를 도울 힘을 가진 어떤 사람의 손에 달려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이 착각이라고 가르칩니다. 모든 것의 결국은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사는, 세가지 구체적인 방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35:2) 매일 일을 해야 먹고 살것 같은 압박을 느끼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일주일에 하루를 떼어,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먹이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둘째,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드리는 삶입니다. (35:5) 내가 얻는 것을 내가 다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안전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께 드려야 할 부분을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산업을 돌봐 주십니다.
셋째, 시간과 재능으로 섬기는 것입니다.(35:10) 내 이익과 명예를 위해서는 내 시간과 재능을 쓰지만, 그 이외의 것에는 쓰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쓰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믿음의 투자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시기 바랍니다.
23 너희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 24 내가 이방 나라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네 하나님을 뵈려고 올 때에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 (출애굽기 34:23,24)
하나님은 이스라엘 모든 남자들에게 일년에 3번 하나님께서 정하신 곳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예배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이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 남자들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배 처소로 가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살던 곳을 잠시 떠나야 합니다. 그것도 한두 사람만 떠나는 것이 아니라 민족 전체의 남자들이 떠나야 합니다.
그때 생길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이 움직이는 틈을 타서, 이방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방 민족들의 공격을 자신이 막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먼저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에 집중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두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른 것들을 이끌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것들을 소중히 여기면, 그때부터 삶은 무질서 해지고, 혼동속으로 들어갑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복의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인정 하십시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다른 것들을 돌보시고 보호하십니다.
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출애굽기 34:7)
죄를 두려워 하십시요. 왜냐하면 죄가 여러분을 망가지게 할 뿐 아니라, 자녀들과 손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우리를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해 주시고, 죄로 찢어진 살을 꾀메주십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고, 회개의 자리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두려워 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죄의 상처는 하나님께서 꾀메 주셔서 낫게 되지만, 그 꾀멘 흔적은 평생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살인을 하면, 그의 아들도 평생 <살인자의 아들>이란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합니다. 그 꼬리표가 아들을 위축들게 만들고, 해결되지 않는 감정을 겪게 만듭니다. 그 감정이 아들의 삶에서 여러가지 부정적인 영향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아들은 죄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회개한 아버지도 더 이상 하나님앞에서 죄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저지른 죄의 흔적이 남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손주들을 괴롭히게 됩니다.
죄를 두려워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지만, 죄의 흔적은 나와 나의 자녀들과 나의 손자들까지 괴롭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죄를 피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입니다.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출애굽기 32:1,4)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은, 지금의 고난을 인내합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선하게 이끄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인내로 증명됩니다.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가 40일이 넘도록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을 이끈 모세가 죽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지도자를 잃었다는 조급한 생각이 들자,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백성들이 동요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아론에게 새로운 구심점을 만들라고 요청했습니다.
아론은 그들의 요청대로 새로운 구심점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금 송아지 형상>이었습니다. 소는 그 당시 많은 이방인들이 신으로 섬기던 동물이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자신들의 신으로 삼은 것입니다.
믿음을 잃으면 조급해집니다. 그리고 조급함은 항상 쓰레기를 만듭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을 잃고 조급해졌을 때, <이스마엘>을 만들었고, 지도자를 잃었다고 생각하고 조급해진 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믿음은 인내를 요구합니다. 아무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끝까지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잃고 조급해지면, 치워야할 쓰레기를 만들게 됩니다.
3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 6 내가 또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세워 그와 함께 하게 하며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모든 자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이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을 다 만들게 할지니 (출애굽기 31:3, 6)
누가 하나님의 일을 맡습니까? 첫째,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셋째, 일을 행함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따라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막을 만드는 일을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맡깁니다. 하나님은 그 두 사람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1) 타고난 재주가 있었고, 2)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 했고, 3) 하나님으로 부터 부어지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재주는 <타고나거나 훈련>을 통해 습득됩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기도와 말씀>의 삶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정직과 순전함>으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착하고 충성된 삶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19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20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21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출애굽기 30:19a, 20, 21)
예수님안에서 여러분의 죄를 씻으시기 바랍니다.
휘발유를 몸에 바르고, 활활타는 불 앞에 서 보시기 바랍니다. 온 몸에 불이 붙어 타 죽게 됩니다. 죄를 씻지 않고, 하나님앞에 서는 것은, 지금 말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앞에서 필연적으로 파괴됩니다. 성경은 이것을 지옥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제사장들은 하나님앞에 나가기 전에, 물두멍에서 자신을 씻어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고 성막안에 들어가면, 그는 죽게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 될 예표적 메세지입니다. 사람이 자기 죄를 씻지 않으면, 하나님앞에서 파괴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하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머무시던 에덴동산에서 내 보내십니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베려 입니다. 그들이 죄인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면, 필연적으로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씻을 길을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입니다. 예수님안에서의 죄를 씻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앞에 설 수 있습니다.
이제 어떤 사람들은 이 구호를 미련하고 무식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리입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입니다.
9 너희는 그 위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며 번제나 소제를 드리지 말며 전제의 술을 붓지 말며 (출애굽기 30:9)
하나님은 순전한 것을 기뻐하십니다.
순전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식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모습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내 편리대로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은 성막에 있던 <분향단>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두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향을 태워 올리는 용도로만 사용해야 합니다. 다른 불을 올리면 안됩니다. 둘째, 다른 향을 사용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제조된 향만 올릴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방식,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서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순전함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상황속에서 순전함이 무엇인지 알려고 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많은 경우, 우리의 양심은 그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앞에서 순전한것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순전한 향을 받으십니다.
20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21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 (출 27:20-21)
기도의 등불을 끄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매일 밤마다 성막의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성막에서 <기도의 등불>을 끄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세가지 이유로 기도하지 않습니까? 1) 신앙이 성숙하지 않을 때입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 내 힘으로 살 수 있는데, 무엇때문에 구지 기도하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2) 기도에 실망할 때 기도를 멈춥니다. 기도하는데로 안 이루어지는 것 같으니까 기도를 멈춥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우리가 기도하는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십니다.
3) 영적인 침체가 오면 기도를 멈춥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서 하나님을 붙들 힘이 없는 상태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붙들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붙들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가서 하나님앞에서 투정도하고, 소망하는 바를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여러분의 성막안으로 들어가십시요. 5분부터 시작해서 10분, 20분…기도의 양을 늘여 가십시요. 성도는 자기의 성막안에서 하나님과 기도로 만납니다.
1 너는 성막을 만들되 가늘게 꼰 베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 놓은 열 폭의 휘장을 만들지니 2 매폭의 길이는 스물여덟 규빗, 너비는 네 규빗으로 각 폭의 장단을 같게하고 (출애굽기 26:1-2)
하나님의 일은 두가지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첫째, 정직한 마음입니다. 정직한 마음은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단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두번쨰 태도는 법대로 하는 것입니다. 쉽고 편한 길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원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어떻게 성막을 만들어야 하는지, 그 원리를 너무도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모세가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정한 원리대로 성막을 짖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성막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 후서 2:5절에서, 하나님앞에서 상받는 자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는 법대로 경기하는 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직한 마음과 정해진 원리를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정직한 마음과 하나님께서 정한 원리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이뤄진 일을 받으십니다.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갈라디아서 2:4-5)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은 그들을 <절제와 사랑>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이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율법이란 권위를 내세우며 <절제와 사랑>으로만은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구약에 써있는 모든 디테일한 율법을 다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그들을 경계합니다. 그들의 <숨은 의도>는 사람들을 자신들에게 복종 시키는 것입니다. 그들이 율법에 관해서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복종 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집행자인 자기들에게 복종 시키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그들의 숨은 의도를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이 추구하는 두가지는 <하나님 사랑, 그리고 이웃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 두가지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안에 모두 성취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어떤 율법보다 더 강력하게 우리를 <절제와 사랑>으로 이끕니다. 누군가가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는 에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교회만을 다니기 때문입니다.
종교적인 율법에 복종할 것이 아니라, 더욱 예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그때 율법이 요구하는 삶이 우리 삶에서 이루어집니다.
율법의 종이 아니라, 예수님의 종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Law, and faith in Jesus>
4 This matter arose because some false brothers had infiltrated our ranks to spy on the freedom we have in Christ Jesus and to make us slaves. 5 We did not give in to them for a moment, so that the truth of the gospel might remain with you (Galatians 2:4-5)
The early church members believed in Jesus. That faith led christian to <Self-control and Love>. Christians believed that it was the life of God's people.
But Jewish came into the church. They put forward the authority of the law and said that <Self-control and love> were insufficient as the values of God's people. They said that all detailed laws written in the Old Testament must be obeyed.
In today's text, Paul warns them. Their <hidden intent> is to make people obey them. They are talking about the law of God, but they are trying to make people submit to themselves who practice religion. Paul warns them and their hidden intention.
The Old Testament law pursues <loving God and loving neighbor>, and those are fulfilled in faith in Jesus. The faith leads us to <strong self-control and love> more powerfully than any other law.
We should not submit to religious laws, but more to Jesus. Then, the life required by the law is fulfilled in our lives. Live as a servant of Jesus, not as a servant of the law.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갈라디아 1:12)
요즘 교회들 속에서 일어나는 <세가지 현상>이 있습니다.
1) 첫째, 예수님의 죄사함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습니다. 많은 말씀을 배우고 듣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값을 치루셨다는 선포>는 하지 않습니다.
2) 둘째, <십자가의 복음>을 부끄러워 합니다. “예수님안에 죄 사함이 있다”고 말하거나, “예수님만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라고 말하면, 고집스럽고 촌스런 이야기를 하는 것 처럼 무시합니다.
3) 셋째, <예수님의 죽음>을 <죄사함>과 연결 시키지 않고, 예수님을 단순히 <선한 일을 하다 죽은 사람>, 혹은 <정의롭지 못한 기득권에 대항해 싸우다 죽은 사람>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도 그런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맞는듯 하지만 틀린 말입니다.
이런 세가지 흐름에 속거나, 이 흐름을 따라가지 마십시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속에서, 우리의 죄값을 치루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것을 성취 하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뤄 주신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죄로 말미암아 왔던 죽음의 권세가 파괴되었음을 증명해 보이신 예수님입니다. 이 예수님을 붙들고 사시기 바랍니다. 이 예수님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Don't be deceived by the three>
12 I did not receive it from any man, nor was I taught it; rather, I received it by revelation from Jesus Christ (Galatians 1:12)
There are <three phenomena> that are happening among current churches.
1) First, churches does not teach about the forgiveness of sins coming from Jesus. Churches have many activities related with bible, but they do not declare that <Jesus paid the price for our sins>.
2) Second, they are ashamed of the <Gospel of the Cross>. If you say, “There is forgiveness of sins in Jesus,” or “we can be saved only through Jesus,” they ignore them as if they are stubborn and vulgar.
3) Third, they does not link <the death of Jesus> with <forgiveness>, but interprets Jesus as simply <a man who died doing good works> or <a man who died fighting against an unjust government>. It sounds right, but it's wrong.
Do not be deceived by these three flows. In God's plan, Jesus came into this world to pay the penalty for our sins, and He accomplished the plan of God on the cross.
The gospel we believe in is Jesus who paid the price for our sins. And by the resurrection, Jesus has proved that the power of death, which came through sin, has destroyed. Hold onto the promise and live with Jesus Christ.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 1:7-8).
복음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듣기 좋은 모든 소리가 복음은 아닙니다. 하나님이란 단어를 섞은 모든 말이 복음은 아닙니다. 복음은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죄값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치뤄 주셨다는 사실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복음의 흐려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는 뺀채, 사람들이 보이기에 괜찮은 모든 일들을 <복음>이라고 퉁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단지 교회를 다니는 것이 복음을 받아들인 것으로 오해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만 구원이 있는데, 다른 곳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선을 많이 쌓으면 극락 왕생한다는 불교와 다른 종교의 원리를 교회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학자와 목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런 논리를 말합니다. 거짓 복음입니다.
바울이 그들을 저주합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그들이 천사라 할지라도 저주를 받는다고 말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안에 있는 <죄 용서의 약속>입니다. 이 복음안에서 흔들리지 말고 서 있으시기 바랍니다.
<What is the Gospel?>
7 which is really no gospel at all. Evidently some people are throwing you into confusion and are trying to pervert the gospel of Christ. 8 But even if we or an angel from heaven should preach a gospel other than the one we preached to you, let him be eternally condemned! (Galatian 1:7-8)
What is the core of the gospel?
Not all sounds that are pleasant to hear are gospel. Not all words that contain the vocabulary, God, are gospel. The essence of the gospel is the fact that; 1) in Jesus our sins are forgiven; 2) Jesus has paid the price of our sin-coast on the cross.
The gospel is blurring.
Some call another things gospel without the story of the cross of Jesus. So, church members became not to understand what the core of the gospel was. They just understand that attending church is accepting the gospel.
The gospel is shaking.
Salvation is only in Jesus Christ, but some say that there is salvation in other religions as well. They teaches the principle of Buddhism and other religions, saying that if people accumulate a lot of good, they can go to paradise. Even those who are called Bible scholars and pastors in the world speak of this principle. It is a false gospel.
Paul curses them.
They will be cursed by God, even if they are angels. The gospel is the promise of forgiveness of sins only in Jesus. Stand still in this gospel without being shaken.
1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4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시편 72:1,4)
다윗왕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1) 왕으로서 가난한 사람을 공정히 대하게 하소서! 2)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지나치지 않게 하소서! 3)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게 하소서!
다윗은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 그가 가난한 자를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그의 재물을 풍성하게 하시고, 그의 이름을 높여 주시고, 그의 가족과 민족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자를 무시하고 압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가난한 자를 압제하면, 그의 아내와 자녀가 과부와 고아가 됩니다. (출 22:22-24) 2) 가난한 자에게 귀를 닫으면, 하나님도 그의 기도를 더이상 듣지 않으십니다.(잠 21:13) 3) 가난한 자를 못본체 하면, 저주가 큽니다. (잠28:27) 4)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것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잠 17:5)
가난한 사람들을 마음에 품으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The way to prosperity>
1 Endow the king with your justice, O God, the royal son with your righteousness. 4 He will defend the afflicted among the people and save the children of the needy; he will crush the oppressor. (Psalm 72:1,4)
King David prays to God.
1) As a king, let me treat the poor in justice! 2) let me consider the difficulties of the poor! 3) let me not ignore the poor in their needs!
David was confident.
1) When he looks after the poor, 1) God will make his wealth rich; 2) exalt his name; 3) and bless his family and nation.
Yet, what does God treat those who ignore and oppress the poor? The Bible says:
1) If you oppress the poor, your wife and children will become widows and orphans. (Ex 22:22-24) 2) If you close your ears to the poor, God will no longer hear their prayers as well. (Proverbs 21:13) 3) If you ignore the poor, the curse will be great. (Proverbs 28:27) 4) To mock the poor is to mock God. (Proverbs 17:5)
Have mercy on the poor. Listen to their needs. This is the way to prosperity.
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7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시편 63:2,7)
기도를 살려 내시기 바랍니다.
즉흥적인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다시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의 저자는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하나님께 나갑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죽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철저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경험합니다. 본문의 저자는 그것을 <주의 권능과 영광>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싶다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저자의 바램은 막연한 소망이 아닙니다. 7절에 보면 그는 이미 기도가운데 일하셨던 하나님을 경험한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확신 속에서 다시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소망을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Experience God through prayer>
1 O God, you are my God, earnestly I seek you; my soul thirsts for you, my body longs for you, in a dry and weary land where there is no water. 2 I have seen you in the sanctuary and beheld your power and your glory. 7 Because you are my help, I sing in the shadow of your wings. (Psalm 63:2,7)
Revitalize your prayer life.
The prayer does not refer to a prayer seeking for just immediate help, but relying on God in everything in our life.
The author of this text seeks God with <sincere desire>, just as a thirsty person seeks water in a place where there is no water to drink. He believes that without God, he can not sustain his life. He is completely dependent on God.
Those who pray will experience God’s works. Verse 2 describes it as <the power and glory of the Lord>. If you want to experience God, you should depend on God with prayer.
The author's wish is not a vague. In verse 7, he had already experienced God working in prayer. So, in that conviction, he again depend on God through prayer.
Trust God in prayer. God remembers everything you prayed to Him.
15 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둘러싸여 강림하시리니 그의 수레들은 회오리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노여움을 나타내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책망하실 것이라 16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죽임 당할 자가 많으리니 (이사야 66:15-16)
하나님께서 영광을 나타내시는 방법은 세가지입니다. 첫째, 기적을 통해서입니다. 둘쨰, 하나님을 기다린 자들에게 값아 주심을 통해서 입니다. 셋째, 심판을 통해서 입니다.
첫번째와 두번째 영광은 우리가 경험하길 바라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러나 세번째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 보이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사야는 시판중에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께서 불에 둘러싸여 강림하신다”고 표현합니다. 그 불에 죽임을 당하는 자들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살아계심과 당신께서 악을 심판 하시는 분이심을 세상으로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합시다. 하나님은 악을 심판 하심으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 십니다. 하나님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바라는 자들에게 값아 주시고 기적을 행하십니다.
< Three Glories of God >
15 See, the LORD is coming with fire, and his chariots are like a whirlwind; he will bring down his anger with fury, and his rebuke with flames of fire. For with fire and with his sword the LORD will execute judgment upon all men, and many will be those slain by the LORD (Isaiah 66:15-16)
There are three ways in which God reveals his glory: first, through miracles; second, through the rewarding of those who have waited for God, and third, through judgment.
The first and second glory are the <glory of God> that we want to experience. But the third is what we do not want to experience. Nevertheless, we need to remember that God reveals His glory through <Judgment>.
Isaiah described God who is coming down surrounded by fire and he said that there are those who will be killed by the fire. Through it, the world will know that God is alive and that God is the judge of evil.
Let's fear God. God reveals His glory by judging evil. Let’s wait for God. God doesn't just keep watching over evil. He judges those for His glory.
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9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이사야 64:6,9)
BC 586년, 남유다는 비참하게 멸망합니다.
10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경고 하셨지만, 그들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징계 속에서 멸망합니다.
멸망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1) 우리가 죄인입니다. 2) 우리의 죄때문에 멸망에 이르렀습니다. 3) 죄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들이 지금도 계속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5절)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또 이렇게 기도합니다. 1) 하나님, 너무 분노하지 마세요. 2) 우리의 죄를 영원히 기억하지는 마세요. 3)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가만히 보고 계시지 마세요(12절). 4) 우리는 주님의 백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난가운데 이런 기도로 하나님께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죄때문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다고해서 모든 것이 끝난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 징계를 통해, 우리가 다시 하나님앞으로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다시 회복해 달라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Pray even during punishment>
6 All of us have become like one who is unclean, and all our righteous acts are like filthy rags; we all shrivel up like a leaf, and like the wind our sins sweep us away. 9 Do not be angry beyond measure, O LORD; do not remember our sins forever. Oh, look upon us, we pray, for we are all your people.(Isaiah 64:6,9)
In 586 B.C., Judah was miserably destroyed.
God had warned them for over 100 years, but they did not turn from their wicked lives. In the end, they perish under the judgment of God.
The Israelites who experienced destruction confess these in today's text. 1) We are sinners. 2) We have come to destruction because of our sins. 3) The phenomena that appear as a result of sin continue to cause us pain even now. (Verse 5)
Yet, Israel prayed again like this. 1) God, don't be too angry. 2) Don't remember our sins forever. 3) Do not stand still and watch our sufferings (verse 12). 4) We are the Lord's people. Israel is coming back to God in the midst of suffering by such a prayer.
Just because you have been punished by God for your sins, it dose not mean that you are abandoned by God. God's will is to bring us back to Him through the punishment. Ask God to restore you again. God does not turn away from them.
10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이사야 63:10)
끝까지 하나님을 <겸손>으로 섬기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가난했고 보잘것 없을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고, 정결하려고 애썼습니다.
이스라엘이 <돈과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없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이 느꼈고, 더이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지도 않았고, 정결 하려고 힘쓰지도 않았습니다.
선지자들이 <경고>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마음을 하나님께 두라고 말입니다. 그 경고가 이사야 때 부터 시작해서, 거의 100년 이상 외쳐 졌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경고를 무시했고, 자기 길을 계속 가다가, BC 586년 멸망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두가지 이유로 망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첫째, 그들이 하나님을 반역했다. 그들이 마음에서 하나님을 버렸다는 말입니다. 둘째, 성령을 근심 시켰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았고, 정결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멸망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지 않도록 지키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겸비하고, 하나님앞에 서기를 애쓰시기 바랍니다.
<Serve God till the end>
10 Yet they rebelled and grieved his Holy Spirit. So he turned and became their enemy and he himself fought against them. (Isaiah 63:10)
Serve God with <humility> until the end of life.
When Israel was poor and needy, God chose them and blessed them. They lived according to God's word and tried to be pure before God.
Finally, Israel got <money and power>. They felt they could live without God, and they no longer depended on God. Then, they did not try to live according to the word of God, nor did try to be pure before God.
The prophets began to warn.
They urged Israel to put their heart on God. That warning has been proclaimed for over 100 years, beginning with the time of Isaiah. But Israel did not change their mind, ignoring the warning, they continued on their way, and perishes in BC 586.
The prophet Isaiah says that Israel will perish for two reasons. First, they rebelled against God. It means that they have forsaken God in their hearts. Second, they grieved the Holy Spirit, not living according to the Word of God and abandoned purity in God. Eventually Israel has been destroyed.
Keep your heart from turning away from God. Humble your heart and strive to stand before God.
1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이사야 61:1)
사람은 고난을 통해서 정결해 집니다.
우리는 쉽게 악해지고 교만해 집니다. 그때 고난이 오면 <쾌락>을 멈춥니다. 하나님을 찾고 <겸손>해 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고난을 만나면, “하나님이 나를 떠났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고난이란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이란 모습으로 우리를 돌보고 있는 것입니다.
586년,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쉬지 않고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그들의 <의와 구원>을 나타내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이란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기도 하십니다.
<God, being with us through suffering>
1 For Zion's sake I will not keep silent, for Jerusalem's sake I will not remain quiet, till her righteousness shines out like the dawn, her salvation like a blazing torch. (Isaiah 61:1)
We are purified through suffering.
We easily become evil and proud. Yet, when suffering comes into our life, we cease seeking <physical pleasure> but seek for God and become <humble>. For the sake of our purity God allows <suffering> in our life.
When we face suffering, we think, “God has left me,” “God doesn’t take care of me,” No! God does not forsake us. God is interfering in our lives in the form of suffering.
In 586, Judah has met a tragic end by the Babylonians. They thought that God had abandoned them. But the prophet Isaiah says “God did not forsake them; God is with them still now in an appearance of suffering: God will reveal <righteousness and salvation> through suffering.”
Remember that God could be with us in the form of <affliction>. He dose not cease to be with us.
1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이사야 61:10)
이사야는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두가지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공의를 행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도움>이 필요할때 하나님께 나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사람이나 환경을 의지하면 반드시 실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의 도우심과 구원을 경험합니다. 인내로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공의>를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공평해 보이지 않는 일때문에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서 행한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아 주십니다. 지금 당장 공의가 나타나지 않는것 같습니다. 시간이 조금 걸리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나타납니다.
하나님때문에 감사하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구원하시고, 여러분에게 공의를 나타내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Reasons to praise God>
10 I delight greatly in the LORD; my soul rejoices in my God. For he has clothed me with garments of salvation and arrayed me in a robe of righteousness, as a bridegroom adorns his head like a priest, and as a bride adorns herself with her jewels. (Isaiah 61:10)
Isaiah gives two reasons why we should praise God. First, God is our savior. Second, God is doing in justice.
Whenever you are in a difficult situation, turn to God. <Salvation and help> comes from God. If you depend on people or circumstances because those are tangible, you will surely be disappointed. But if you put your hope in God, you will see salvation and help. Trust God with patience.
God is always reveals <justice>. Don't be discouraged by things that seems unfair. God rewards us for what we have done before God. Don't be discouraged if justice doesn't appear right away. It may take some time, but God's justice will surely be revealed.
Be thankful to God, for God is the one who saves us and shows justice to us.
15c …내가 …통회 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16 내가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끊임없이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지은 그의 영과 혼이 내 앞에서 피곤할까 함이라 (이사야 57:15c, 16)
하나님의 <진노>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징계>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를 그 징계안에 영원히 가두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징계를 푸시고 우리를 회복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악한 길에서 돌이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일이 마쳐지면 하나님은 징계를 거두시고, 우리를 회복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이 <징계>로 망하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앞에 겸손하고 바르게 서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돌보시는 하나님께 기억 하시기 바랍니다.
<Punishment doesn't last forever>
15 …I live … with him who is contrite and lowly in spirit, to revive the spirit of the lowly and to revive the heart of the contrite. 16 I will not accuse forever, nor will I always be angry, for then the spirit of man would grow faint before me-- the breath of man that I have created. (Isaiah 57:15c, 16)
God's <wrath> is not eternal.
God <punishes> His people, but it is not forever. When the time comes, He removes the punishment, and restore His people.
The reason God punishes us is to humble us and to turn us from the evil way. When that is done, God takes away the punishment, and restores us.
As today's text, God does not want our souls to perish through <punishment>. What God wants us to be humble and upright before God, through the punishment.
Remember that God cares for our souls.
1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가도다 2 그들은 평안에 들어갔나니 바른 길로 가는 자들은 그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리라 (이사야 57:1-2)
성도의 죽음은 평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활동 후반기에,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왕이 된 므낫세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탄압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사야는 톱으로 켜임을 당해서 죽었다고 합니다.
이사야는 먼저 죽어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죽음을 보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들은 평안에 들어갔으니…”라고 말입니다. 성도에게 죽음은, 캄캄한 땅속에 묻히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평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사야 때와 마찬가지로, 이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박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징조가 너무도 분명해 지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박해 받을 것을 마음에 준비하십시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요. 도리어 죽음 이후에 모든 사람을 심판할 하나님을 두려워 하십시요. 성도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평안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Keep your faith with death>
1 The righteous perish, and no one ponders it in his heart; devout men are taken away, and no one understands that the righteous are taken away to be spared from evil. 2 Those who walk uprightly enter into peace; they find rest as they lie in death. (Isaiah 57:1-2)
The death of the saints is the entrance to peace.
In the second half of the work of the prophet Isaiah, Manasseh became king. Manasseh oppressed the people of God. Tradition has said that Isaiah was cut with a saw and died.
Many righteous people died, and Isaiah saw them die and confessed, “they have entered into peace”. For the saints, death is not the end of life, but the entrance to peace.
As in the days of Isaiah, those who serve God will now be persecuted. We live in a time when the signs are very clear.
Prepare your heart for persecution. Don't be afraid of death. Rather, fear God, who will judge everyone after death. The death of the saints is not the end, but the door to peace.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 이는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공의가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도다 (이사야 56:1)
여러분, 두렵고 떨림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말하는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주 짦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삶에서 그리고 제 주변 사람들의 삶에서, 성경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모릅니다.
지금 당장 아무일도 안 일어나는 것 처럼 보이니까, 사람들은 절제 없이 자기의 욕심을 따라 삽니다. 특별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정의와 의로움>을 버립니다. 그는 결국 나쁜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원리입니다.
여러분, 이 원리를 시험해 볼 필요가 없습니다. 짦은 인생을 살은 저와, 저보다 조금더 긴 인생을 사신 분들은 공감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돌아옵니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하나님앞에서 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산 사람에게 하나님의 날은 구원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렇게 살지 않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날은 심판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Reasons for fear and trembling>
1 This is what the LORD says: "Maintain justice and do what is right, for my salvation is close at hand and my righteousness will soon be revealed.(Isaiah 56:1)
Brothers and sisters, I ask you to live with fear and trembling. Because everything will come true according to the Bible.
As a young pastor, my life what I have been living is not long. But in my life and in other’s lives, I've seen the Bible has always fulfilled.
People behave according to their greed without restraint, because they feel like nothing is happening now. In particular, they throw away <justice and righteousness> in relationships with other people. However, we must remember that eventually they reap bad fruit in their life. This is the principle of God's justice.
Brothers and sisters, we don’t need to test thins principle. I who lived short life and those who have lived longer, know that the principle is true. God's justice will surely return.
Live before God with fear and trembling, for God will repay according to what you have done. The day will be a day of salvation for those who lived along with justice. On the contrary, for those who do not live that way, it will be a day of judgment.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사야 55:6-7)
기회는 지금입니다. 하나님께 돌아 가십시요.
악한 길에 여전히 서 있다면, 그 길에서 나오십시요. 불의한 생각을 품고 있다면, 그 생각을 버리십시요. 돌이키면 여러분의 영혼이 살아 납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언제가 돌이킬 시간입니까?
아직 심판이 내려 지지 않은 지금입니다. 하나님의 권면을 듣고, 여전히 마음이 흔들리는 지금입니다. 본문은 이런 날을 “하나님께서 가까이 있을때” 또는 “하나님께을 만날만 한때” 라고 말합니다. 이 때가 지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돌아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자격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죄든, 어떤 악인이든, 하나님께 돌아가면, 그는 삽니다. 오늘 본문은 약속 하기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너그럽게 용서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악한 길에서 나오고, 불의한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앞에 서는 마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still, not too late!>
6 Seek the LORD while he may be found; call on him while he is near. 7 Let the wicked forsake his way and the evil man his thoughts. Let him turn to the LORD, and he will have mercy on him, and to our God, for he will freely pardon.(Isaiah 55:6-7)
Your chance is now. Go back to God.
If you are still standing on the evil path, get out of it. If you have an unrighteous thought, throw it away. If you turn around, your soul will come to life. God is merciful.
When is the time to turn?
It is now when judgment has not yet been made. It is a time when judgment has not yet been made or when your heart is shaken as you hear the counsel of God. Today’s verse refers to such a day as “the time when God is near” or “the time when God may be found”. After this time, there is not chance to turn back to God.
Do you think you don't deserve to go back?
No. There is no one who is unqualified to go back to Him. No matter what sin he commits, no matter what wicked you are, if you return to God, you live. Today's text promises that God will be merciful and forgive generously.
Come out of the evil way and cast away unrighteous thoughts. If you make your heart stand before God again, you will live again.
12 이르시되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이사야 51:12)
사람을 두려워 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두려워하는 사람보다 크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람을 두려워합니까?
1)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하나님의 뜻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2) 사람에게서 힘과 돈이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하는 것입니다. 3)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옆으로 제껴 두는 것입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마세요.
사람은 변덕스럽습니다. 사람의 힘은 언젠가 풀처럼 마릅니다. 사람은 언젠가 죽습니다. 사람은 사랑해야 할 대상이지, 의지할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세요.
하나님을 의지하면, 당장 손에 들어오는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 결국을 보십시요. 하나님을 의지한 사람이 살아납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 하시기 바랍니다.
<Don't be afraid of people>
12 "I, even I, am he who comforts you. Who are you that you fear mortal men, the sons of men, who are but grass,(Isaiah 51:12)
Don't be afraid of people.
God is greater than the man you fear. That God is holding us.
In what ways do we fear people?
1) Considering people's sights, we abandon God’s. 2) Because money and power come from human, we more lean on people than God 3) In order to get along with people, we put aside God's will.
Don't rely on people.
Humans are capricious. Human's strength dries up like grass one day. Human die someday. People are to be loved, not to be depended on.
Depend on God.
If you depend on God, it seems that nothing is in your hands right away. But look at the end. Those who depend on God will live. Fear God, not man.
7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이사야 51:7).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을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아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앞에서 옳고 그른지 <분별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정직하게 가만히 묵상하다보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하나님의 뜻을 버리는 것입니까? 1) 욕망을 따르고 싶은 것입니다. 2) 세상의 비방과 핍박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것을 선택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권면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앞에 사는 것을 포기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세상의 비방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세상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들을, 세상은 괜찮다고 말합니다. 남자가 남자와 결혼을 해도 괜찮고, 살다 실증이 나면 헤어져도 괜찮고, 뱃속의 아기는 낳기 싫으면 지워 버리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사람을 위한 일, 곧 <인권>이라고 말합니다.
편하게 살려고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죄의 욕망을 자유롭게 표현하면, 결국 남는 것은 목마름과 심판입니다. 거기에는 기쁨과 평화가 없습니다. 그런 세상을 우리는 이미 경험하고 있습니다. 속지 마십시요. 마음의 허리띠를 조이고, 하나님의 뜻안에 사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비방에 흔들리지 마십시요.
<Keep your heart of faith>
7 "Hear me, you who know what is right, you people who have my law in your hearts: Do not fear the reproach of men or be terrified by their insults. (Isaiah 51:7).
Do not throw away the <heart> that God has given you.
God gave his people <the heart to know the will of God>. He also gave them <the heart to discern what is right and what is wrong> in the sight of God>. If we meditate honestly and quietly, we can know what God wants.
However, why do we forsake the will of God? 1) We want to fulfill our desires. 2) We are afraid of the world's slander and persecution. So we choose what is not God's will.
God urges us not to give up on living in front of <God's will> and not to be afraid of the world's slander and persecution.
The world is going strangely. God said it is wrong, but the world says it is fine. They say that it is okay for a man to marry a man; it is okay to break up if marriage life is boring: and abortion is okay when they don’t want to have the baby. They say that everything is a work for people, that is <human right>.
If we abandon God's will to live comfortably and satisfy the sinful greed, only thirst and judgment remain in our life. There is no peace and joy. We are already going through it in our world. Do not be deceived! Tighten the belt of your heart and live in the will of God. Do not be swayed by the slander of the world.
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49:14,15)
하나님께서 떠나신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멸망합니다. 그 멸망이 얼마나 비참 했는지 <예레미야 애가>에 기록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자신들을 포기하셨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합니다. 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잊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여전히 이스라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 가기만 하면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범죄하여 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포기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오는 백성을 거절하지 않습니다. 7번씩 77번 용서해주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버린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 돌아가십시요. 여러분의 죄가 주홍같이 붉어도, 눈처럼 희게 됩니다. 돌아 가십시요. 하나님께 돌아 가십시요.
<You are not going back>
14 But Zion said, The LORD hath forsaken me, and my Lord hath forgotten me. 15 Can a woman forget her sucking child, that she should not have compassion on the son of her womb? yea, they may forget, yet will I not forget thee.(Isaiah 49:14,15)
It's not that God has left you, it's that you are not returning to God.
The people of Israel sinned against God. In the end, they are punished by God and destructed. It is recorded in <Lamentations of Jeremiah> how miserable that destruction was.
Israel thought that God has forsaken them because they have sinned against God. But God is speaking in today's text that; they are not abandoned and not forgotten; God's concern is still with Israel; Everything will be restored when they return to God.
Are you in great pain because of your sins? Do you think God has abandoned you? No! God does not reject the people who come to Him. God forgives us 7times and 70 times more when we return to God.
God does not forsaken you, but it is that you are not returning to God. Now, go back to God. Even if your sins are red as scarlet, those become as white as snow. Go back! Go back to God.
3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4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참으로 나에 대한 판단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이사야 49:3-4)
눈에 보이는 것으로, <여러분 자신>을…그리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판단하는 것은 <세상의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을 당신의 섭리에 합당하게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부모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라온 환경을 선택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는 그 안에서 빚어 졌습니다. 그리고 그 빚어진 모양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삶을 뒤 돌아보면, 별로 한게 없는 것 같고, 유능하지 못한 것 같아 속상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이 고백하는 것 처럼, 무익하게 힘을 쓰는 것 같고, 모든 것이 헛된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삶에서, 이미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평가는 하나님의 몫입니다. 단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빚으신 모양을 인정하며, 내게 주어진 삶을 정직함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여러분을 빚으신 하나님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여러분에게 주어진 삶에서 기쁨을 찾아가며 살아 가시기 바랍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Life, not in vain>
3 He said to me, "You are my servant, Israel, in whom I will display my splendor.” 4 But I said, "I have labored to no purpose; I have spent my strength in vain and for nothing. Yet what is due me is in the LORD's hand, and my reward is with my God.” (Isaiah 49:3-4)
Don't judge <self> and <others> by what you see. This is how the world judges people.
God created each of us according to His purpose. We did not choose our parents. We didn't choose the environment in which we grew up. Everything was given by God, and He shaped us in those. And we are living the way we were made.
When we look back on our life, we sometimes feel that we did not archive anything wonderful, and our life are not successful. Like the confession of the character in today's text, we sometimes feel that we seem to use our power in vain and our efforts seem to be in vain. But God says that in that life, God is already revealing His glory.
Evaluation is not our portion but God’s. We simply acknowledge ourself given by God, and live our life before God who has created each of us. We believe that God is revealing His glory through our life as we live before Him.
4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이사야 46:3-4)
하나님의 백성들도 <죄>에 떨어집니다.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징계>를 경험합니다. 삶이 고통스러워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습니다. 결국, 그들을 회복하시고, 구원해 내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에게 적용합시다. 누가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성경은 말하기를 <예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예수 쟁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모두 하나님의 백성인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진 삶의 여러 특징중 하나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들도 연약해서 범죄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징계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최종적인 운명>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며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에게 예수님의 주님 되심을 알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사는 삶이 어떤 삶인지 교육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 내시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Eventually, God saves His People>
4 Even to your old age and gray hairs I am he, I am he who will sustain you. I have made you and I will carry you; I will sustain you and I will rescue you.(Isaiah 45:3-4)
God's people also fall into <sin>. Also, if they harden their heart and do not turn from sin, they experience God's <discipline> and life becomes painful. However, God does not forsake them. In the end, God restores and delivers them. It is God’s Promise.
Let's apply it to us. Who are God's people? The Bible says that <those who accept Jesus as their Lord> are God's people. We call them Christians.
Not all people who go to church are God's people. It can be one of characteristics of christian life, but can not be a mark of christian identity. The people of God are <people who accept Jesus as their Lord.
They can be weak and fall into sin, so that they can experience God’s punishment. But their <final destiny> is God's salvation. This is the promise of the Bible.
Accept and acknowledge Jesus as your Lord. God does not ask us to be a church attendant. Let your children know that Jesus is Lord, and teach them how to live, acknowledge Jesus as their Lord. Also, let people know that Jesus are Lord.
The people God saves are those who accept Jesus as their Lord.
16 우상을 만드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아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로되 17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받아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너희가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이사야 45:16-17).
<우상>을 섬기는 사람은 <영원한 부끄러움>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앞으로 일어날 분명한 미래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없고, 내 욕망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오심이 가까와 옵니다. 우리의 마음을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하는 마음이, 내 마음의 중심에 있는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애를 쓸때가 아니라, 정말 내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앞에 서야 할 때입니다. 때가 악합니다.
<Time to check our mind.>
16 All the makers of idols will be put to shame and disgraced; they will go off into disgrace together. 17 But Israel will be saved by the LORD with an everlasting salvation; you will never be put to shame or disgraced, to ages everlasting. (Isaiah 45:16-17)
Those who serve <idol> enter into <eternal shame>. However, God's people will receive <eternal salvation>. This is a clear future we should face.
Who is idol worshiper? It is a one who does not fear of God in the center of his heart. He is not interested in God's will and lives only according to his own desires.
The coming of the Lord is near. It's time to check our hearts. Make sure not only whether you have a heart to respect God at the center of our hearts, but also whether you are struggling to follow God’s will in your life.
It is not a time to try hard to show others, but this is a time to check our mind, whether we are standing before God. Times are evil.
21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 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이사야 44:21-22)
죄에 떨어졌습니까?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앞에 서십시요.
하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회개로 하나님께 나가면, 우리의 죄가 안개와 구름이 사라지듯 사라진다고 말입니다. 이 약속을 믿고 날마다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정말 심각한 상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더이상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회개가 우리의 마음에서 사라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완악해진 상태입니다.
용서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다시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앞에 서십시요. 회개를 포기하지 마십시요.
<Don't stop repenting>
21 "Remember these things, O Jacob, for you are my servant, O Israel. I have made you, you are my servant; O Israel, I will not forget you. 22 I have swept away your offenses like a cloud, your sins like the morning mist. Return to me, for I have redeemed you.” (Isaiah 44:21-22)
Have you fallen into sin?
Repent and stand before God again.
God promises. When we come to God through repentance, our sins disappear like fog and clouds. Believe in this promise and repent every day.
Do you know what a serious spiritual condition is?
It is a life that no longer repents and a life that repentance has disappeared from our hearts. This makes our soul hardened.
Believe in <God's promise> of forgiveness, repent again, and stand before God again. Do not give up repentance.
20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하지 아니하며 귀가 열려 있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 (이사야 42:20).
★ 긴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많은 것을 보여 주셨고 들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보고서도 긴장하지 않았고, 들으면서도 경고를 경고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 뒤에는 <심판>이 뒤 따릅니다.
★ 개인적으로 계속 영적인 위기를 느낍니다.
개구리를 찬물에 넣고 끓이면, 물이 뜨거워지는 지도 모르고, 그곳에서 가만히 죽어갑니다.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이렇습니다. 그 현상이 우리 눈에 보이고, 들리고 있는데도, 긴장하지 않습니다. 사실 개구리의 평안은 평안이 아닙니다. 심판 직전의 상황입니다.
★ 다시 긴장해서 하나님앞에 서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앞에 섭니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하나님앞에 서야합니다. 무엇보다도 <기도>의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시간을 따로 떼어 기도하고, 매 순간 순간, 힘을 다해서, 하나님앞에 서야 합니다.
★ 유투브, 페이스북, 인스타, 드라마보기를 줄이시고, 다시 기도의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다시 긴장해서 주님앞에 서야 할 시간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갑자기 땅에 떨어집니다.
<Feeling the Crisis>
20 You have seen many things, but have paid no attention; your ears are open, but you hear nothing.”(Isaiah 42:20)
★ You must be awake, being sensitive in living before God.
God has already shown and let us heard many things. However, as in today's text, we were not nervous about what we saw and heard, not considering those as a warning. If so, then <Judgment> follows.
★ Personally, I continue to feel a spiritual crisis.
If you put a frog in cold water and boil it, it doesn't even know that the water gets hot, and it dies there. This is our spiritual condition. Even though we can see and hear the phenomenon, we do not become nervous and awake. Peace is not peace, but just before for judgement.
★ We need to get nervous again and stand before God. How do you stand before God?
We must stand before God with all our heart, with all our mind, and with all our strength. Above all, we must restore <prayer life>. We need to set aside time to pray and stand before God in every moment.
★ I urge you to educe the times for YouTube, Facebook, Instagram, and watching dramas, but have a time of prayer.
It is time to be warned again and stand before the Lord. If not, we will suddenly fall down to the ground.
29 보라 그들은 다 헛되며 그들의 행사는 허무하며 그들이 부어 만든 우상들은 바람이요 공허한 것 뿐이니라 (이사야 41:29)
여러분의 삶에 스며 들어온 <우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도 인터넷으로 운세와 사주를 보거나, 아니면 무당에게 찾아가기도 합니다. 재미로 한다고 말하지만, 그 안에는 깊은 영적인 갈망이 있습니다. 그런 삶의 모습에서 나오시기 바랍니다.
또 다른 종류의 우상 숭배가 있습니다. 교회는 다니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에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욕망을 채워 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우상 숭배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두십시요. 하나님의 뜻은 선한일이고, 정직한 일이고, 깨끗한 일입니다. 그 일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십니다. 우리의 안전을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내 뜻에 집중하면, 결국 우상에게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헛되고, 허무하고, 바람같으며, 공허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Idols are vain and empty>
29 See, they are all false! Their deeds amount to nothing; their images are but wind and confusion.(Isaiah 41:29)
Throw away the <idols> that has permeated your life.
Even Christians look for fortunes through the Internet fortune website, or they go to a shaman to ask about their future. They say they do it for fun, but there is a deep spiritual desire in it. If you do so, you should come out of that kind of life.
There is another kind of idolatry. Some people say they go to church and serve God, but they are not interested in God's Word and are not interested in obedience. They just regards God as the One who satisfies their desires. This too is idolatry.
Pay attention to the work of God. God's work is good, honest, and clean work. If we obey to God, conducting His works, God will provide for our needs. He keeps us safe.
If we focus on my will, not God's, we will eventually go to idols and server it. It is vain and futile. It seems like wind empty. Focused on the will of God firstly, then God will be with you.
17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41:17)
하나님께 돌아가십시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우상과 간음 했고, 말씀에서 멀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돌아오라고 하셨지만,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망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의 죄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가난해서, 물을 찾아 헤멜때, 그들에게 응답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여러분의 죄때문에 망했습니까? 그래서 가련하고 가난한 상태에 이르렀습니까? 다시 하나님께 가십시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으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God will not give up on us>
17 "The poor and needy search for water, but there is none; their tongues are parched with thirst. But I the LORD will answer them; I, the God of Israel, will not forsake them. (Isaiah 41:17)
Go back to God. God has not given up on you.
The people of Israel sinned against God. He committed adultery with idols and turned away from the Word of God.
God told them to come back, but they did not come back, and eventually they were destroyed. It was not that God caused them to perish, but because of their own sins.
But God says He will not give up on them. When they ask for water in their miserable condition, He will not refuse to give them water. He promises that he will surly give it for them.
Are you ruined by your sin? So have you come to a pitiful and poor condition? Go back to your God. God says He will not give up on you.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사야 40:30-31)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사람은 다시 일어납니다. 그러나 소망을 <사람, 돈, 자기의 힘>에 두는 사람은 넘어집니다.
소망을 하나님께 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는 무능력하지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반드시 나를 일으켜 세우실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현실>이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인정하며, 내게 주어진 길을 바르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약속하십니까? 소년도 피곤해지고, 청년도 넘어지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독수리가 날개치며 날아오르듯 힘차게 일어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우리, 이 말씀을 실험해 봅시다. 끝까지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께만 둬 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는지 아닌지 실험해 봅시다.
소망을 하나님께만 두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독수리처럼 날아오르게 하십니다.
<Put your hope in God alone>
30 Even youths grow tired and weary, and young men stumble and fall; 30 but those who hope in the LORD will renew their strength. They will soar on wings like eagles; they will run and not grow weary, they will walk and not be faint. (Isaiah 40:30-31)
Those who put their <hope> on God will rise again. But those who put their hope in <people, money, and their own strength> fall.
What does it mean to put hope in God? It is what: 1) we believe that God will appear and raise me up, even though we are powerless; and 2) even though we feel that nothing happen in our life, but still acknowledge God and walk the path given to me correctly.
What does God promise to such a man? God promises that even a boy will grow tired, and a young man will fall, but those who put their hope in God will rise as vigorously as an eagle soars on its wings.
Let's examine this promise. Let's put <our hope> only to God. And Let’s see whether God raises us up or not.
For those who put their hope in God alone, God makes them like eagles soaring.
묵상을 위해서 조금 긴 저의 간증을 나누겠습니다.
군대를 제대하면서 목사의 길을 가지 않겠다고 결정했습니다. 대신 형님이 계셨던 중국으로 가서 언어 연수를 하고, 그곳에서 사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형님은 심양 사범대 언어 연수 프로그램을 권했고, 학비도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1년정도 언어 연수를 하고, 그곳에 진출한 한인 회사에 취직을 한후, 5년 뒤에는 중국에서 내 사업을 시작해야 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계획을 구체회하고 나는 중국으로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형님이 하던 일이 어려워 졌으니 중국에 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는 것입니다.
이미 내 인생의 큰 그림을 다 그렸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중국으로 갈 준비만 하고 있었는데, 그런 전화를 받으니 당황 스러웠습니다. 신학을 전공하고, 목사가 안된다면, 한국에서는 취직할 회사도 없었기 때문에, 그 계획이 흔들리는 것은 저에게 절망과도 같았습니다.
생각해보니 군대를 제대한 후로 그때까지 하나님께 정식으로 내 미래에 대해서 물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 했습니다. ‘언어연수가 아니더라도, 일단 중국으로 가서 일을 배우고 사업을 해야 하지 않냐?’고 물으면서 말입니다.
기도를 마치고 교회 청년부 성경 공부에 참여했습니다. 제 순서가 되어 성경 공부 교제에 나온 성경 구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이었습니다.
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야고보서 4:13-14)
하나님께서 나를 꼭 찝어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성경을 읽어내려가는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내 계획에 대해서 너무도 명확하게 아니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하나님이 없는 계획을 세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인생이 안개와 같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계획은 그리스도인에게 무의미합니다.
<Life, like a fog>
Today, I want to share my long testimony for today’s mediation.
When I have completed my military duty in Korea, I determined not to go on the path of a pastor. Instead, I decided to go to China where my brother was, to take chines language training, and to do business there.
My brother recommended the Shenyang University for language training program and offered to help with tuition. I planed to do language training there for about a year, and then to got a job at a Korean company that was in the city. My final goal in china is to do my own business within 5 years.
After refining my plans, I started preparing to leave for China. But one day, I got a phone call from my brother. He said that his business became difficult, so I should reconsider coming to China.
This was a shock to me. I had already planed the big picture for my life, and I was just preparing to go to China to put it into practice. I felt my future in Korea was very vague. Since I have studied theology, and with such a major, it seemed like impossible to find a job in Korea except for the church. Despair came when my plans were shaken.
In that time, I realized that I had never formally asked God about my future until then with the prayer. I got on my knees and started questioning to God. “Even if it’s not for language training, shouldn’t I go to China to start a business?”
After praying, I participated in the Bible study of our church. Leader of the Bible study asked me to read bible verses that was in the study materials. That was the content of today's bible verses.
13 Now listen, you who say, "Today or tomorrow we will go to this or that city, spend a year there, carry on business and make money."14 Why, you do not even know what will happen tomorrow. What is your life? You are a mist that appears for a little while and then vanishes. (James 4:13-14)
I felt that God was speaking to me. While I read the Bible, Tears were flowing uncontrollably. God was answering to me clearly not to go to China.
Have you ever had a plan without God? Life is like a fog. We must all stand before God. A plan without God is meaningless to a Christian.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야고보서 4:8)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서 멀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졌고, 세상을 향해 가버렸습니다. 세상과 하나님을 다 가지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을 누리려고 죄 안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신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려면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를 가까이 하십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가까이 합니까? 1) 죄를 멀리 하시기 바랍니다. 2) 세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찾지 말고,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만 찾으시기 바랍니다. 3) 기도와 말씀의 삶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린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버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읍시다. 금식하고 애통함으로라도 그 삶을 회복합시다. 그것만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 Let’s fast and mourn >
8 Come near to God and he will come near to you. Wash your hands, you sinners, and purify your hearts, you double-minded (James 4:8)
God has not gone far from you, but your heart has gone away from God, going into the world. God did not treat you as a foreigner but you began to treat God as a stranger.
You desire to get both God and the World. You are living amid sin, even desiring to be with God, like a woman trying to keep two husbands. God is not far from you, but you are starting to move away from God.
Draw close to God. If so, God draws close to you again. How do you draw near to God? 1) Stay away from sin. 2) Do not seek the world and God at the same time, but seek only God with all your heart. 3) Restore the life of prayer and the Word.
God has not forsaken us. Yet, Our hearts have begun to forsake God. Let's seek God again with our whole heart. Let’s restore the heart seeking God face even through fasting and mourning. That is the only way we live.
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야고보서 3:14-15)
우리가 하려는 일들 가운데 무엇이 <하나님의 일>이고, 무엇이 <나의 정욕과 귀신>으로 부터 온 것입니까? 야고보 사도는 위의 말씀에서 그것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행동이 <시기와 다투는 마음>에서 온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것은 <정욕과 귀신>으로 부터 온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을 살폈을 때, 우리의 행동이 <시기와 다투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면 가던 길을 멈추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정욕과 귀신>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하나님으로 부터온 행동, 선택, 계획입니까? 1) 먼저는 죄가 아닌것입니다. 2)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베려하고, 자비를 베풀고, 편견을 갖지 않아서, 화평을 이루는 것입니다 (17절).
오늘 우리의 마음을 살펴 보시기 원합니다. 만약 어떤 것이 시기와 다투는 마음에서 왔다면 멈춰 봅시다. 대신 다른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는 일이라면 순종해서 해봅시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God's work and the devil's work>
14 But if you harbor bitter envy and selfish ambition in your hearts, do not boast about it or deny the truth. 15 Such "wisdom" does not come down from heaven but is earthly, unspiritual, of the devil. (James 3:14-15).
How can we distinguish between God’s work and devil’s work of what we are trying to do? There is a clear distinction made by the apostle James.
If any action, choice, or plan comes from <envy and quarrels>, it does not come from God. It comes from <lust and demons>.
When we look at our hearts, if our actions stem from <envy and quarrels>, you should stop on the way, for it is what comes from <lust and demons>.
Then, what kind of actions, choices, and plans is what come from God? 1) First of all, it is not a sin. 2) And it is to be kind to others, to be merciful, to be free from prejudice, and to make peace (v.17).
Today, when you are about to do something, if it comes from jealousy and quarrels, let’s stop to do so. Instead, let’s do what makes peace with others. That is God's work.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야고보서 1:12).
세상이 우리의 <믿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어떻게 흔들고 있습니까?
1) 풍요롭고 안락한 삶으로 흔듭니다. 더이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도 살수 있을 것 처럼 느끼게 합니다. 차라리 가난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면, 그것이 더 복됩니다. 2) 세상의 가치로 흔듭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치가 마치 시대에 뒤떨어 진것 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3) 고난으로 흔듭니다. 여러가지 고난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러한 상황속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기를 바라십니다. 그가 하나님으로 부터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다니엘의 인내가 믿음을 지키는 인내였고, 요한 계시록에 나타난 성도의 인내가 믿음을 지키는 인내였으며, 다윗의 인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인내였습니다. 성경의 모든 인내가, 결국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키는 인내입니다.
앞으로 오는 세상은 더욱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흔들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풍요 때문에 믿음을 버리고, 세상의 가치 때문에 믿음을 버리고, 결정적으로 고난 때문에 믿음을 버릴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는 인내로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How is your faith shaken?>
12 Blessed is the man who perseveres under trial, because when he has stood the test, he will receive the crown of life that God has promised to those who love him (James 1:12).
The world is shaking our <faith>. How does it shake our faith?
1) An abundant life shakes our faith.. It makes us feel as if you can live without relying on God any longer. Rather, If you are poor and depend on God, you will be more blessed. 2) The worldly values shake our faith. It makes us feel as if christian values are meaningless. 3) Persecution shakes our faith. Various sufferings make us unable to rely on God.
God, in a such circumstances, demands us to keep our faith until the end. God promises that the saints will receive the <crown of life> from God.
Daniel's patience was the patience to keep the faith, the saints' patience in the book of Revelation was the patience to keep the faith, and David's patience was the patience to keep faith on God. Ultimate patience Bible is mentioning is that patience which keep faith toward God.
The upcoming world will further shake the Christian faith. Many will forsake their faith because of abundance, worldly values, and persecution.
Keep the faith and you may receive the crown of life with patience.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 1:4)
인내 하시기 바랍니다. 그 시간은 반드시 지나갑니다.
삶은 기본적으로 <인내의 연속>입니다. 우리 모두의 삶이 무겁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좀더 <특별한 인내>가 있습니다. 특별한 상황속에서, 특별한 이유로 주어지는 <인내의 시간>입니다. 그 시간이 요구하는 인내를 채워가시기 바랍니다. 그 인내가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어떻게 인내의 시간을 채워갑니까? 1)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2) 해결할 수도 없고, 해결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며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3) 절망적이지만, 하나님께대한 소망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4) 말 그대로 인내 하는 것입니다. 그 시간은 반드시 지나갑니다.
<인내>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듭니다. 여러분이 그 시간안에 있다면, 인내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 집니다.
<Be more patient>
4 Perseverance must finish its work so that you may be mature and complete, not lacking anything (James 1:4)
Be patient. The time of patience will surely pass.
Life is basically a <continuation of patience>, for life is heavy for all of us. Yet, there is a more <special time of patience>, given due to a special reason and in a special situation. Fill that time with the patience that the time is requiring. That patience makes us mature.
How do we fill our patience time? 1) Believe in the goodness of God; 2) wait for God, even if all your problems are not likely to be solved; 3) in God, do not give up hope, even though everything goes bad. 4) Literally be patient. That time will surely pass.
<Patience> makes us people of God. If you are within that time, complete your patience. you are in the process, being a man of God.
4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고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들에게 마땅하지 않도다 5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곤고한 자들의 송사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 (잠언 31:4-5)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힘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자랑하고, 누리라고 주신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왕이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왕이 술을 먹고 그의 직분을 잊게 될까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에게 힘을 주신 이유는, 그 직분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는 것이지,그 힘을 자랑하고 즐기라고 주신것이 아닙니다. 그 하나님앞에서 왕은 때로 포도주도 마음대로 못 먹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힘을 주셨습니까? 그렇다면, 더욱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 힘을 자랑하거나, 자신을 위해서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세워 나가시기 바랍니다.
<Think about the reason for the power you have>
4 "It is not for kings, O Lemuel— not for kings to drink wine, not for rulers to crave beer, 5 lest they drink and forget what the law decrees, and deprive all the oppressed of their rights. (Proverbs 31:4-5)
There is a reason God gives us strength. It was not for boasting yourself or enjoying it for you. God wants us that with the power, we would accomplish will of God.
Today's text says that it is not lawful for a king to drink wine and strong drink, because the king will forget his duty due to the drinking. God gave us strength for his will, not for boasting and enjoying for ourself. In the purpose of God, the king sometimes even cannot even drink wine.
Has God given you strength? If so, be more careful. Do not boast of that power or use it for yourself. Think about why God gave you that strength. And do God's will.
10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31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잠언 31:10, 30)
진주 보다 귀한 여인이 되십시요.
잠언 31장은 그 여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1)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않는 여인 (12)
2) 부지런히 남편과 자녀를 먹이고 입히는 여인 (13-19)
3) 가난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여인 (20)
4) 자신을 꾸미고 돌보는 여인 (22)
5) 남편을 존중받는 사람으로 세우는 여인 (23)
6) 지혜의 말을 자녀와, 남편에게 하는 여인 (28)
잠언은 그런 연인에 대해서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1) 고운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30) 2) 그 여인은 자신이 행한대로 보상을 받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을 것입니다.(31)
그런데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분명 <지혜로운 여인이 그녀의 남편>에게 어떻게 하는 하며 사는 가에 대해서 촛점을 둡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촛점이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성도의 삶>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주님께 신실하고 충성되시기 바랍니다. 그는 남편과 아내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존귀히 여겨지게 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님을 향해서 <진주 보다 귀한 신부>가 되시기 바랍니다.
<A woman more precious than pearls>
10 A wife of noble character who can find? She is worth far more than rubies 30 Charm is deceptive, and beauty is fleeting; but a woman who fears the LORD is to be praised (Proverbs 31:10).
Be a woman more precious than pearls.
Proverbs 31 describes about the woman:
1) she does good for her husband and does not do evil (12)
2) she diligently feeds and dresses her husband and children by her work (13-19)
3) she takes care of the poor (20)
4) she decorates and takes care of herself (22)
5) she makes her husband respectful (23)
6) she speaks wisdom to her children and husband (28)
Proverbs concludes about such woman:1) Beauty is deceitful and vain, but only a woman who fears the Lord will be praised (30); 2) She will be rewarded for what she has done, and will receive praise from others (31).
Yet, there is one thing you should remember.
This verse clearly focuses on how a wise woman behaves to her husband. Then, there is a more fundamental focus than the previous. This is about <The life of saints toward the Lord>.
Be faithful and loyal to the Lord. He is respected not only by the Lord, but also by husband, wive, and people.
7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 주나 악인은 알아 줄 지식이 없느니라 (잠언 29:8).
가난하고 약하다고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 편에 서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도움이 필요다면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을 무시하지 않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돕고 있다면, 그 사람이 <의인>입니다.
오늘 성경 구절은 의인과 악인의 특징을 이렇게 구분합니다. 1)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 주는 사람이 <의인>이고, 2) 그럴 수 있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악인>이라고 말입니다.
영어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정의>를 행하는 사람은 의인이고, 그렇기 않은 사람이 악인이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이 약하고 가난한 사람편에 서 주고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약하고 가난한 사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Think of the poor and the weak>
8 The righteous care about justice for the poor, but the wicked have no such concern (Proverbs 29:8).
Do not ignore the poor and weak.
If they face injustice, stand by their side. If they need help, help them. If you don't ignore them and help out when they need your help, that person is a <righteous person>.
Today's Bible verse distinguishes the characteristics of the righteous and the wicked in this way: 1) a person who understands the situation of the poor is a <righteous person>, 2) but a person who does not have the heart caring of the poor is a <wicked person>.
The English Bible puts it this way: Those who do justice for the poor are righteous, and those who do not have such a concept are wicked.
Don’t forget to think of the poor and the weak. If you have such kind of heart whenever you meet the poor, it proves that you are living a life that God recognizes.
25 욕심이 많은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 (잠언 28:25)
본문은 말하기를 <욕심>이 많은 곳에 <다툼>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안에 <다툼>이 있다면, 그 안에는 반드시 <욕심>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욕심>은 어떻게 표현됩니까? 그것을 얻기 위한 우리의 <계획>으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그 계획이 다른 사람들과 충돌할때, 다툼이 일어납니다. 만약 다툼이 있다는 것은 <충돌하는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욕심에서 시작됩니다.
본문은 <욕심이 많은 사람>의 반대를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는 소망하는 모든 바가 하나님으로 부터 온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안에서 주어진 것에 자족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계획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다툼이 없습니다.
<다툼>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안에는 <욕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툼을 버리고 주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그가 풍족하게 된다고 약속합니다.
<Choose the path of abundance>
25 A greedy man stirs up dissension, but he who trusts in the LORD will prosper (Proverbs 28:25)
The text says that where there is a lot of <greed> there is a <quarrel>. If there is <quarrel> within us, it means that <greed> must be there.
How is our <greed> expressed in our life? It is through our <plan> trying to get our own benefit. When the plan conflict with other’s plans, quarrels arise. If there is a quarrel, it means that there are <conflicting plans> starting with greed.
The text expresses the opposite of <a greedy person> as <a person who trusts in the Lord>. God’s people thinks that everything he hopes for comes from God, not from their own efforts. They are content with what is given by God's will, not being stick to their own plans. So there is no quarrel.
Is there a <quarrel>? If so, it means there is <greed>. Stop quarreling and lean on God. Today's text promises that he will be prosperous.
18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 (잠언 28:18)
<성실한 사람>이 넘어지면,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키십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은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도 넘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성실한 사람이 넘어진 것을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다시 일으키십니다. 잠언 24장 16절을 보면, 의인은 7번 넘어 질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반대로 <굽은길을 가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그는 곧 넘어진다고 말합니다. 잠언 24장 16절은 그가 <재앙>때문에 엎드러진다고 말합니다. 넘어질것 같아보이지 않았는데, 갑자기 재앙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오늘의 삶을 하나님앞에서 <성실과 정직>으로 채워가시기 바랍니다. 그가 넘어지면,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The faithful will rise again>
18 He who walks blamelessly will be delivered, But he who is crooked will fall all at once. (Proverbs 28:18)
When a <faithful person> falls, God raises him up again.
We think that a sincere and honest person should not fall. But the Bible says he can also stumble.
God, however, does not let a sincere person fall for long time. He raises him again. Proverbs 24:16 says that the righteous may fall seven times, but he will rise again.
On the contrary, how about a person who walks <a crooked way>? He may think he won’t fail, but the Bible says that he will fall soon. Proverbs 24:16 says that he falls because of <disaster>; sudden disaster comes on him and strikes him.
Fill today's life with <sincerity and honesty> before God. If he falls, God raises him up again.
23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잠언 24:23)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안에서 <성실>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재산, 직장, 가족, 이웃들 그리고 교회 등등…지금 가지고 있는 이것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들입니다.
하나님앞에서 충성스러움을 잃으면, 지금 가진 것에는 성실하지 않으면서, 미래으 소망만 바라보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앞에서 성실하지 않은 삶입니다.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인 제가 하나님앞에서 충성스러움을 잃게 되면, 한가지 특징을 보이게 되는데, 현재의 양들은 돌보지 않으면서, 비젼과 미래를 말하며 사는 것입니다.
지금의 가족들과 이웃에게 인정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현제 주어진 직장과 재물 안에서 성실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작은 것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점점 큰 것을 맡겨 주실줄 믿습니다.
우리의 양떼와 소떼에게 마음을 두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Take care of now, not future>
23 Be sure you know the condition of your flocks, give careful attention to your herds (Proverbs 24:23)
Do all your <sincerity> in what you have now.
Property, work, family, neighbors and church and so on... These are the things God has entrusted to us.
People who are not loyal to God are not sincere with what they have now. They only picture what they hope for in the future. It is an unfaithful life before God.
The same goes for pastoral ministry. As a pastor, when I lose my loyalty to God, one characteristic comes into my life. That is, I mention only about a vision and a future without taking care of the present sheep.
Take care of what God now has entrusted to us, doing your best in your family and neighbor and current job and wealth. If you are faithful in small things, God will entrust you with bigger things.
Today, let’s do our best for the present things that God has entrusted us.
21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22 그리 하는 것이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은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 (잠언 25:21-22)
세상은 어떻게 원수를 갚습니까? 그에게 직접 고통을 주는 것으로 원수를 갚습니다. 그래야만 억울한 감정이 풀릴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원수에게 선을 행함으로 원수 갚으라고 말합니다. 배고프면 먹을 것을 주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선한 행동>은 그의 머리에 <숯>을 올려 놓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머리에 뜨거운 숯을 올려 놓으면 어떻게 됩니까? 활활타는 불덩어리가 아니기 때문에 당장 화를 당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곧 그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화를 당하게 됩니다.
<원수>에게 <선>을 행하십시요. 그것은 그의 머리위에 숯을 올려 놓는 것과 같습니다. 그가 깨닿고 여러분에게 행한 악한 행동을 돌이키면, 그는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심판을 면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원수를 친구로 얻게 됩니다. 그러나 원수가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그 숯은 곧 타기 시작해서, 그의 온 몸을 태우게 됩니다.
원수 갚아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그에게 선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The skill of revenge>
21 If your enemy is hungry, give him food to eat; if he is thirsty, give him water to drink. 22 In doing this, you will heap burning coals on his head, and the LORD will reward you. (Proverbs 25:21-22)
How do people revenge on their enemy? They usually want to inflict directly severe pain to their enemy. They think they would feel satisfaction through the avenge.
But the Bible tells us to do good in order to get revenge on our enemies. It says: “Give them something to eat when they are hungry, and water when they are thirsty” The Bible also says, “These <good deeds> are like putting <charcoal> on your head.”
Imagine what would happen if you put hot charcoal on your head. It's not a burning fire, so it won't do any immediate harm. But if you do not remove it, it will soon start to catch fire and harm your entire body.
Do <good> to <enemy>. It's like putting charcoal on his head. If he realizes and turns back the evil deeds that he has done to you, he will escape judgment from God. And you get enemy as friend. But if the enemy does not turn from his evil deeds, the coals will soon begin to burn, consuming his whole body.
Is there anyone on whom you want to revenge? Do good things to him. This is how Christian avenge on their enemies.
8 너는 서둘러 나가서 다투지 말라 마침내 네가 이웃에게서 욕을 보게 될 때에 네가 어찌할 줄을 알지 못할까 두려우니라 (잠언 25:8)
세상에 화나게 하는 일이 많습니다. 속고 속이는 일이 너무 많고, 미워하고 상처 주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 너무 많이 경험하다보니까, 어떤 상황을 만나면, 옛날의 상처들이 기억나서, 화를 참지 못하고 바로 바로 쏟아내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서둘러 화내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일단 화를 참고, 앞뒤 상황을 파악하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도리어 부끄러운 상황을 만난다고 말합니다.
화를 잘못내서 민망했던 경험이 얼마나 많습니까? 앞뒤 상황을 고려하지 않아서 오해를 한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서둘러 화내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화가나는 일이 있다면, 일단 참고, 앞뒤 상황을 가만히 파악해 보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Understand the situation before anger>
8 do not bring hastily to court, for what will you do in the end if your neighbor puts you to shame? (Proverbs 25:8)
In our life, there are many things that make us angry. Many people not only deceive others, but also are deceived by others; many people hate each other, and are hated by other as well.If we are exposed to these situations too often, we get angry too easily, remembering the wounds of the past.
The Bible admonishes us “not to be angry in haste, but firstly to figure out what's going on in your situation.” “Otherwise, you would meet rather shameful situations.”
How many times have we been embarrassed by our wrong anger? How many times have we misunderstood by not taking the situation into account? The Bible tells us not to get angry before we figure it all out.
If something upsets you, firstly be patient, and figure out the situation before you express your anger.
24 악인에게 네가 옳다 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와 25 오직 그를 견책하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 (잠언 24:24-25 )
악한 것을 “옳다” 말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누가 악한 것을 옳다 말합니까? 그럴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 일이 분명히 악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1) 그것이 나에게 이익이 될때입니다. 2) 그것을 인정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수 있을 때입니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슬며시 악한 것을 옳다고 인정합니다.
악한 것을 “옳다”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Don't say evil is right>
24 Whoever says to the guilty, "You are innocent”, peoples will curse him and nations denounce him. 25 But it will go well with those who convict the guilty, and rich blessing will come upon them. (Proverbs 24: )
Don't say "right" to what is evil. God is not pleased.
Who says evil is right? There doesn't seem to be anyone like that, but in our lives, this happens often.
When does this happen?: 1) That’s the time when the evil is beneficial for me; 2) and when evil satisfies our sinful desires. Then we allow evil into our lives, saying it it right, even though it is evil.
Don't say "right" to what is evil. God is not pleased.
17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18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하지 아니하사 그의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 (잠언 24:17-18)
원수가 넘어졌다고 기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넘어지는 것을 보면 마음이 후련합니다. 이것이 자연스런 사람의 마음입니다. 또는 원수가 아니더라도 나에게 서운하게 했던 사람이 안 좋은 일을 당하게 되면 고소한 생각이 듭니다. 성경은 그들이 넘어질때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다윗에게 평생의 적이 있었습니다. 사울왕입니다. 다윗은 그가 전쟁터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금식하며 그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다윗을 괴롭게하던 적군의 장수 아브넬의 죽음 앞에서도 다윗은 금식하며 슬퍼합니다.
미워하던 사람이 넘어 졌다면, 세가지의 신중한 태도를 보이십시요. 1)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2) 내가 할 수 있는 슬픔을 표하고, 또한 도울수 있다면 도와주는 것입니다. 3) 그리고 그가 당한 사건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원수가 넘어졌다고 기뻐하기보다, 함께 슬픔을 표현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Mourn together when the enemy falls>
17 Do not gloat when your enemy falls; when he stumbles, do not let your heart rejoice, 18 or the LORD will see and disapprove and turn his wrath away from him (잠언 24:17-18)
Do not rejoice when your enemy has fallen. It is not pleasing to God.
There are people who are against us. When we see them fallen, we rejoice. It is the natural human mind. Even if he is not an enemy, but just simply a person who made your mind hurt, we are pleased, when they has fallen. However, do not let your heart rejoice in the face of such a fall. God is not pleased with the behavior.
David had a lifelong enemy. This is King Saul. When David hears that he has died on the battlefield, he fasts and mourns his death. Even in the death of Abner, general of enemy, who made David suffered, He fasts and grieves.
If the person you hate has fallen, I think it is right to show three cautious attitudes. 1) make your heart not to rejoice; 2) express the sadness and help him as much as you can; 3) and look back at myself in front of the incident that he suffered.This is God’s will.
16 이익을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부자에게 주는 자는 가난하여질 뿐이니라 (잠언 22:16).
부자에게 말고,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십시요.
본문에는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 하는 두가지 행동이 나옵니다. 첫째, 약한 사람을 학대하는 것입니다. 둘째, 언젠가 나에게 되값아 줄 수 있는 부자를 도와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그는 결국 가난해 진다고 합니다.
돌아올 이익을 기대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도와 주지 못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서는 돌아올 이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자나 유력한 사람들을 돕습니다. 왜냐하면 언젠가 그들이 여러 모양으로 갚아 줄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도와줄때, 돌아올 이익에 대한 기대 없이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방식의 삶이 쉽지 않습니다.무의식적으로 되는 삶이 아닙니다. 나의 생각을 죽이고, 애를 써야 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그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의 삶을 붙들어 주신다고 약속합니다.
갚을 힘이 없는 사람들을 더욱 돕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붙드십니다.
<Help the poor, not the rich>
16 He who oppresses the poor to increase his wealth and he who gives gifts to the rich—both come to poverty (Proverbs 22:16).
Help the poor who cannot pay back.
In today’s verse, there are two actions of people that seek for their own advantage. First, they deprive of the things of the weak people. Second, they help the rich in the hope that one day they will receive something from them. The Bible says that they will eventually become poor.
One who expects a return to return does not help the poor, because they know that there is no profit to return from the poor. However, he helps the rich and powerful, because he expects that one day he will be valued in many ways. God said that he would get poorer over time.
Do good to the poor. Do not expect any return from them. Such a life is not easy; not easily formed in our lives. For such a life, we should make an effort and be aware of the such a life. If we live so, God promises to hold fast to our lives.
Help those who have no ability to pay back. God then guards our lives by His help.
23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 24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 (잠언 21:)
말을 삼가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잠언에서 반복적으로 권면하는 지혜는 말에 절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지혜라고 말합니다. 야고보서는 3장 2절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라고도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말을 절제하지 않는 사람을 무례하고 교만한 사람으로 연결 시킵니다. 그리고 그들은 환란에서 보전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저와 같이 많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들어야할 경고 같습니다. 말을 절제하는 하루를 살아야겠습니다. 신중하게 말하고, 그리고 차라리 말하기를 포기하기까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말을 삼가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refraining from talking>
23 He who guards his mouth and his tongue keeps himself from calamity. 24 The proud and arrogant man-"Mocker" is his name; he behaves with overweening pride. (Proverbs 21:)
It is wise to refrain from talking.
The book of proverbs repeatedly exhorted that the wise man refrain from his words. The proverbs even say that being still without speaking is wisdom. James 3:2 also said that If anyone is never at fault in what he says, he is a perfect man.
Today's text links a person who is not restrained in speech to a person who is rude and arrogant. They are not preserved in the tribulation.
This warning seems to be for someone who talks a lot like me. Today let’s not talk much, but speak in limited words, and even give up on speaking.
Today, hope to speak moderately, refraining from a lot of words.
21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잠언 20:24)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닫으시면, 열 사람이 없고, 하나님께서 여시면, 닫을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측 할 수 있는 미래가 있습니다. 봄에 씨를 뿌리면, 가을에 열매를 거둡니다. 짖은 먹구름이 몰려오면, 비가 내립니다. 수고하면 그 대가를 받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는 예측 가능한 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가 나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시면, 봄에 씨를 뿌려도 가을에 열매를 거두지 못합니다. 내가 수고를 한다해도 얻는 열매가 없습니다. 구름이 지나가지만 비가 내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시면, 우리의 모든 예측은 빗나갑니다. 그래서 성경은 결국 우리의 삶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이 형통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예측하는 미래가 있습니까? 확신하는 미래의 가능성이 있습니까? 그것을 의지하는 것이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God guides the future>
24 A man's steps are directed by the LORD. How then can anyone understand his own way? (Proverbs 20:24)
Our future depends on God.
When God closes, no one opens, and when God opens, no one closes.
There is a future we can predict. If you sow seeds in the spring, you will reap the fruits in the fall: When dark clouds come, it rains; If you work hard, you will be rewarded. As such, there are predictable things in this world. So, we think the future depends on me. But the Bible says otherwise.
If God determines, you cannot reap any fruit in autumn, even though you sow seeds in spring. No matter how hard I work, there is no fruit. Clouds may pass, but it may not rain. If God determines, our predictions is meaningless. That's why the Bible says that our lives are up to God. Therefore, we should acknowledge God and live according to His will, which is the way to make our life prosperous.
Do you have any future predictable? Are there any possibilities of which you are sure for your future? Do not rely on the assurance, but only God.
24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잠언 18:24)
사람을 얻기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친구를 많이 얻는자는 해를 당합니다.
성경은 친구가 많은 사람을 모두 좋지 않게 보지는 않습니다. 전도서 4:12절에서는 혼자보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진실하고 겸손하면,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모입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친구가 형성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고 인위적으로 노력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목적과 유익을 위해서 많은 사람을 곁에 두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사람은 해를 당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어떤 해입니까? 결국 내가 의지하려고 했던 사람들로 부터 당하게 되는 실망감입니다.
신명기 17:16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왕은 많은 <말과 병거>를 갖지 말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왕이 하나님보다 말과 병거를 더 의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의미로, 많은 친구를 얻으려는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의 도움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얻으려고 인위적인 애를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곁에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Seek for God rather than man>
24 A man of many companions may come to ruin, but there is a friend who sticks closer than a brother. (Proverbs 18:24)
Give an effort to seek for God rather than people. The one who gains many friends will be harmed.
The Bible does not view all who have many friends as bad. Because Ecclesiastes 4:12 says it is more beneficial to be with friends than alone. When a person is sincere and humble, naturally many people gather around him. It is not a problem for them before God.
But if one tries to get friend in their own plan and purpose, it is problematic before God. They rely on their people rather than God. Babe warns them: they will be soon disappointed by their friends, or can be even harmed by them.
Deuteronomy 17:16 says that king of Israel should not keep many horses, for they will rely on the power of the horses in their battle field, rather than God. God wants us to rely on only Him.
Do not try to get many friends by your own effort. Rely on God. All you want comes from the power of God.
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잠언 18:12)
마음의 겸손을 유지하세요.
겸손은 우리를 영광으로 이끌고, 교만은 우리를 패망으로 이끕니다.
영어성경은 이 성경구절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넘어지기 전에, 사람은 교만합니다. 그러나 영광을 얻기 전에는 겸손합니다”
어떤 사람이 교만한 자리에 서 있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그가 넘어지기 전 단계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겸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면, 그가 곧 영광을 얻기 전 단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교만은 우리를 넘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겸손은 우리를 영광으로 이끕니다. 마음이 교만해지지 않도록 돌아보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Humility leads to honor>
12 Before his downfall a man's heart is proud, but humility comes before honor. (잠언 18:12)
Keep humility in mind.
Humility leads us to glory, pride leads us to destruction.
The English Bible expresses this verse in this way: “Before his downfall a man's heart is proud, but humility comes before honor.”
If you feel that someone is standing in an arrogant condition, it means that he is standing on the stage before he falls. In the contrary, if we feel that one is in a situation making him humble deeply, it means that he is in the pre-glory stage.
Pride makes us fall. But humility leads us to glory. Today, let’s look back at our life and check whether we are humble or arrogant.
28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 (잠언 17:28)
말을 <절제>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걸리는 말이라면, 한번더 생각하고 말하시기 바랍니다. <감정>이 섞인 말이라면, 감정이 걸러질때까지 기다렸다 말하시기 바랍니다. 확신이 없다면,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잠언은 말에 절제가 없는 사람을 미련한 사람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지적합니다. 반대로 말을 절제하는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여깁니다. 미련한 사람이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려 여겨진다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우리 속에는 온전치 않은 생각과 감정과 고집이 있습니다. 그것을 끌어 올리는 양수기가 말이라서, 끌어 올릴수록 우리의 더러움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말을 절제하는 것이 차라리 지혜로운 것입니다.
말을 절제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Refrain from your words>
28 Even a fool is thought wise if he keeps silent, and discerning if he holds his tongue. (Proverbs 17:28)
Refrain from your words.
If some words are bothering in your mind before you say, think again before you talk. If your words contain emotion, wait until the emotion is filtered before saying. If you're not sure, do not say anything, it is wise.
Proverbs points out that a person who does not control his speech is a typical characteristic of a fool. In the contrary, a person who is temperate in speech is considered a wise person. Even a fool is considered wise when he is silent. This is the wisdom the proverb is referring to.
We are all sinners: our mind is evil, stubborn and crooked, but people can not see the weakness, because it is in our mind. But our words brought out the folly to public. So, Proverbs say that it is wiser to refrain from speaking.
Let’s make a today refraining from saying.
12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 (잠언 17:12)
미련한 사람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미련한 사람은 <새끼를 잃은 엄마곰>보다 더 무섭습니다. 그들은 통제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피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미련합니까? 첫째,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잠언 9:10).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려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행하는데에 아무런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들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충고가 전혀 먹히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충고를 싫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통의 사람들은 충고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은 매 백대를 때린다해도 충고를 듣지 않습니다. (잠언 17:10) 이런 사람은 피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새끼를 빼앗긴 엄마곰>보다 무섭습니다. 상대하려기보다 피하시기 바랍니다.
<Avoid the fool>
12 Better to meet a bear robbed of her cubs than a fool in his folly. (Proverbs 17:12)
A fool is more scary than <a mother bear deprived of baby>. We can not deal with him in common sense. Flee from the fool, it is the wisest way.
If so, who is a fool? Firstly, it is a person who is not afraid of God (Proverbs 9:10). He is not afraid of anything and lives by what he wants. There is no hesitation in doing what he is desiring. Avoid him.
Second, it's someone who doesn't get any advice. Most of us hate advice. Nevertheless, the average person listens to advice and looks after himself. But fools don't get any advice even if they get hit every 100 (Proverbs 17:10). Avoid such people, it is wisdom.
A foolish person is scarier than <a mother bear deprived of baby>. Avoid them rather than to try to deal with them.
16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17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언 15:16-17)
<하나님>과 <성공>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하나님>을 선택하세요. <성공>과 <평안>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평안>을 선택하세요.
<성공>에 대한 유혹이 강합니다. 뭔가를 멋지게 이뤄서 사람들앞에서 뽀대나게 자랑해 보고 싶습니다. 목사인 저도 그런것 같습니다. 멋지게 목회를 해서 사람들에게 <훌륭하다>는 소리를 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 성공에 대한 욕망을 따라 살다보면, 반드시 두 갈래 길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을 선택하는 길과 성공으로 가는 길입니다. 또는 평안을 지키는 길과 다툼이 있지만 성공으로 가는 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평안을 지키는 길>을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선택하고, 사람들과 평안한 길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God and peace rather than success>
16 Better a little with the fear of the LORD than great wealth with turmoil. 17 Better a meal of vegetables where there is love than a fattened calf with hatred. (Proverbs 15:16-17)
If you have to choose between <God> and <Success>, choose <God>. If you have to choose between <Success> and <Peace>, select <Peace>.
The temptation for <Success> is strong. We wish to be successful in some work and boast the success. As a pastor, I also the desire. I would like to hear the compliment from people that Roman (my english name) is an awesome pastor. We all have such desire to be successful.
However, if we follow the desire without control, we must face choices: between God and success, or the way to success and the way to peace with people. Bible says we should choose God and the way for peace with people rather than success.
Choose God, and discern the path for peace with people. The book of proverbs says it is wisdom.
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잠언 14:31)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소외된 사람입니까? 가난한 사람들, 아픈 사람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멋진 사람>이 내 옆에 있기를 바랍니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옆에 살고 싶어 합니다. 내가 도움을 줘야하는 사람이나, 사회적 수준이 안 맞을 것 같은 사람은 멀리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연약한 본성입니다.
그러나 그 본성대로 사람을 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멋진사람>, <이익이 될것 같은 사람>말고, 가난하고 아프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 곁에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높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많은 것을 맡기셔서, 그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이 무엇인가 공급 받으며 살게 하십니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학대하는 것이고, 그들을 존귀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힘든 사람들에게 전화 한통 해주고, 할수 있다면 롤케익이라도 건네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삶입니다.
<Take care of the poor>
31 He who oppresses the poor shows contempt for their Maker, but whoever is kind to the needy honors God. (Proverbs 14:31)
Be with the marginalized. Who is the marginalized person? It is the poor, the sick, and the people in need.
We want <nice person> to be by my side. We want to live next to special person who benefits me, rejecting anyone whom we should help, or who doesn't seem to fit to my social level. This is our fallen nature.
However, do not follow the sinful nature, but be with the marginalized: not a nice person or a famous, but those who are in need, sick. They are usually not a person who is not profitable to us.
If we are with them, God exalts us. God entrusts a lot of things to such a person so that the poor can be provided through him.
To oppress the poor is to oppress God, and to honor them is to honor God. Today, give call to those in need and hand over even a roll cake if you can. That is the life of God’s people who fears God.
14 마음이 굽은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가득하겠고 선한 사람도 자기의 행위로 그러하리라 19 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리고 불의한 자는 의인의 문에 엎드리느니라 (잠언 14:14,19)
오늘의 삶이 미래의 <열매>가 됩니다.
성경이 반복적으로 말하는 원리가 있습니다. “1) 악은 결국 심판을 받는다; 2) 선도 결국 보상을 받는다; 3) 눈물로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 입니다.
오늘 본문도 이 원리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 합니다. 각 사람은 자기 행위대로 보상을 받습니다. 결국 악인은 넘어지고 의인은 서게 됩니다. 지금 당장을 바라보면 이 원리가 안 맞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원리가 삶에 적용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삶을 가만히 지켜 보시기 바랍니다. 각 사람은 각 사람이 행한대로 보상을 받습니다. 정직하게 행하고, 하나님앞에서 선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열매가 되어 돌아옵니다. 반대로, 마음에 악을 작정한다면, 그것 또한 언젠가 내 삶의 열매로 되돌아 옵니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시는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Principle of life>
14 The faithless will be fully repaid for their ways, and the good man rewarded for his. 19 Evil men will bow down in the presence of the good, and the wicked at the gates of the righteous (Proverbs 14:14,19)
Today's life becomes the <fruit> of the future.
There is a principle that the Bible says repeatedly. “1) Evil is finally judged; 2) a righteous eventually gets rewarded; 3) If you sow seeds with tears, you reap with joy.”
Today's text also talks about this principle again. Each person is rewarded for his actions. Eventually, the wicked fall and the righteous stand. However, when we look at right now, this principle doesn't seem to work in our world. But the Bible says that this principle is in work to our life.
Carefully keep watching everyone's lives. Each person is rewarded for what each person does. It is the reason why we should be honest and do good before God. Our live becomes fruit and returns to us. In the same way, if we set evil in my heart, it also comes back to the fruit of my life someday.
Forsake evil and do good.
24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언 13:24)
사랑할 때 때리십시요. 그러면 그가 바르게 섭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자녀를 징계하지 않는 부모는,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자녀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적당한 때에, 적당한 언어로, 징계하고 충고해 주어야 합니다.
사람은 죄인입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사람을 그냥 두면 자연스럽게 죄를 향해 나갑니다. 그때, 그 잘못된 자연스러움을 깨뜨려 주는 것이 <징계와 충고>입니다.
스승으로 부터 징계와 충고를 듣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가족과 친구를 통해 경험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없어서, 하나님이 직접 징계하시고 충고하시게 되면, 우리의 삶은 많이 아파집니다.
누군가의 징계와 충고에 귀를 기울이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징계하고 충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가 살게 됩니다.
<Beat when you love>
24 He who spares the rod hates his son, but he who loves him is careful to discipline him. (Proverbs 13:24)
If disciplinary action is necessary, select the appropriate time and words, then perform <discipline> and <advice>.
The Bible says that parents who do not discipline their children do not love them. This is not just for children. If you love someone, you need to discipline and advise for them at the right time and with the right words.
Man is a sinner. Just as water flows from top to bottom, people naturally go toward sin, when alone. At that time, <Discipline and Advice> break the wrong state.
It is safest to get discipline and advice from their leaders. If someone have no the leaders, friends and family is also good. However, when God directly disciplines and advises us, our lives become hurt a lot.
Let’s accept someone's discipline and advice. Also, if you have someone you love, give them discipline and advice. They will live.
31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 (잠언 11:31)
모든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열매>를 먹습니다.
<정직하고 선한 삶>에는 그에 맞는 열매가 있고, <악하고 경건하지 않은 삶>에는 그에 대한 열매가 있습니다. 각 사람은 그 삶의 열매를 먹게 됩니다.
생각 없이 세상을 보면, 이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잠시 멈춰서 살펴보면, 이 원리가 작용 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삶의 경험이 조금씩 쌓일 수록, 이 원리가 살아 있는 원리임을 더욱 발견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열매를 먹고 싶습니까? 심은데로 거두게 됩니다. 경건하지 않은 삶과 악을 심은 사람은 그에 맞는 삶의 열매를 거고, 눈물로 선한 삶을 심은 사람도 그 열매를 거둡니다.
인내와 소망으로 선한것을 심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원리 앞에서 겸허한 마음을 가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Principles that still work>
31 If the righteous receive their due on earth, how much more the ungodly and the sinner! (Proverbs 11:31)
Everyone eats the <fruit> they have planted in their lives.
If our life is <honest and good> in lives, there are good and honest fruits, but if <evil and ungodly>, there are bad fruits that fit into that life. Each person eats the fruit of that life.
If we look at the world without thinking, this principle doesn't seem to work. But if we pause and look, we can find that this principle is still in action. As our life experiences grow little by little, we more and more discover that this principle is a living principle.
What kind of fruit do you want to eat? You will reap what you plant. Those who plant an ungodly life and evil reap the bad fruits, and those who plant a good life with tears reap the good fruits.
What we are planting now is the fruit we will enjoy in the future. Plant good things with patience and hope. And be humble, remembering this principle.
1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잠언 11:1)
올바르게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정직하게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속이는 저울>을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정직하지 않은 추>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장사를 할때만 <저울과 추>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무엇인가 판단하고 결정을 내릴때도 <마음의 저울과 추>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내 이익을 따라 움직입니다. 분명히 이것이 옳은데,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니까, 옳지 않은 것을 선택합니다. 우리는 감정을 따라 움직입니다. 분명히 이 사람이 잘못했는데, 나와 친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잘못했다고 말합니다.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고 있습니까? 우리 마음의 저울과 추가 하나님앞에서 정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정직하지 않은 저울을 미워하십니다. 마음의 추를 <정직>하고 <공평>하게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Honest weight in heart >
1 The LORD abhors dishonest scales, but accurate weights are his delight.(Proverbs 11:1)
Judge correctly and determine honestly.
God hates <deceiving scale>. God is not pleased with <dishonest weight>. Weight and scale are not needed only when doing business, but also in our lives. We need < a scale and weight of heart> when we judge something and make a decision.
We move according to our benefits. Even though something is obviously right, we choose the wrong one for our gains. Also, we follow our emotions. Apparently some person is wrong, but just because he is close to me, we say he is right.
Why is this happening? This is because the weights and scales of our hearts are not honest. God hates dishonest scales. Keep the weight of your heart <honest> and <fair>. That is what pleases God.
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언 10:19)
말을 줄이고, 말을 절제하시기 바랍니다.
저와같이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참 안되는 권면입니다. 그런데 잠언은 의인의 특징중 하나를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으로 정의합니다.
야고보서 3장 2절도 같은 말을 합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야고보서 3:2)”
우리 모두가 말에 실수가 많은데,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특별히 말을 줄이고, 말을 절제해 봅시다.
<Refrain from too much talking>
19 When words are many, sin is not absent, but he who holds his tongue is wise. (Proverbs 10:19)
Constrain yourself from too much talking and refrain from it.
It is difficult recommendation for people, especially who is like me. However, Proverbs defines one of the characteristics of the righteous as <a person who does not make mistakes in words>. If we speak a lot, we must make mistake.
James 3:2 says the same thing: “We all stumble in many ways. If anyone is never at fault in what he says, he is a perfect man, able to keep his whole body in check. (James 3:2)”
We all make a lot of mistakes in our words, and the one who doesn't make mistakes in words is a "perfect person."
Especially Today, let’s reduce our words and refrain from talking.
8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계명을 받거니와… 14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하거니와…17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 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 (잠언 10:8a, 14a, 17)
<훈계>를 마음에 담으시기 바랍니다.
훈계가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누군가가 나의 부족함을 지적하고 훈계하면 자존심이 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앞에서 깨어 있는 사람은 그 훈계를 마음에 간직합니다.
교만하면 훈계를 <무시>합니다. 마음이 딱딱해지면, 훈계에 <분노>합니다. 마음이 높아지면, 훈계를 <비웃>습니다. 훈계앞에서 우리 마음의 상태가 이렇다면, 이미 위험한 상태 속에 있는 것입니다.
훈계가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마음에 간직하는 사람은 살고, 교만함으로 그것을 무시하는 사람은 이미 위태한 상태에 놓여 있거나, 위태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훈계 앞에서 우리의 마음 상태가 어떤지 돌아보기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딱딱해져 있다면, 다시 하나님앞에서 유순하게 만들기 바랍니다.
<The wise accepting admonition>
8 The wise in heart accept commands…14 Wise men store up knowledge…17 He who heeds discipline shows the way to life, but whoever ignores correction leads others astray (Proverb 10:8a, 14a, 17)
Take <discipline and admonishment> to your heart.
No one like <discipline and admonishment>. If someone points out and admonishes our shortcomings, our pride hurts. Nevertheless, those who are awake before God keep the discipline and admonition in their hearts.
If we are arrogant, we <ignore> discipline and admonishment. When our heart is hardened, we <anger> at the discipline. When the heart rises, we <laugh> at the admonition. If this is the state of our mind before discipline and admonishment, we are already in a dangerous state.
We does not like <discipline and admonishment>. However, the one who accepts those in mind gets live, but the one who ignores those with wrong pride is already in jeopardy or is getting into a dangerous situation.
Let’s reflect today how our hearts react on <discipline and admonishment>. If our hearts are hardened before God, let's make it gentle again.
10 그 때에 기생의 옷을 입은 간교한 여인이 그를 맞으니 21 여러 가지 고운 말로 유혹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22 젊은이가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도다 (잠언 7:10, 21-22)
<유혹>에 넘어가지 마십시요.
유혹에 넘어가면 1) 육체를 따라 살게 됩니다; 2) 삶이 파괴됩니다; 3)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4) 진리를 떠나게 됩니다.
본문은 유혹이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오는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1) 혈기왕성한 청년에게 <기생 옷을 입은 여인>처럼 다가옵니다: 2) 자신의 집 잔치에 초대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3) 남편은 먼곳에 가고, 침대에는 깨끗하고 좋은 이불을 깔았다고 말합니다; 4) 남편은 한참 뒤에나 돌아온다고 말합니다.
유혹은 달콤하게 찾아옵니다. 우리의 몸과 정신을 흔들며 찾아옵니다. 그 즐거움에 잠시만 있다 올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 <미끼>에 걸려 들면, 삶은 파괴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벌어지게하는 유혹을 뿌리치십시요. 진리에서 멀어지게하는 유혹을 뿌리치십시요. 눈한번 질금 깜고, 육체의 즐거움을 즐기라는 유혹을 뿌리치십시요. 그 덫에 걸려들면, 여러분의 영혼이 치명상을 입게 됩니다.
세상이 성도들을 계속 넘어뜨립니다. 세상의 유혹을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유혹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Refuse temptation>
10 Then out came a woman to meet him, dressed like a prostitute and with crafty intent. 21 With persuasive words she led him astray; she seduced him with her smooth talk. 22 All at once he followed her like an ox going to the slaughter, like a deer stepping into a noose. (Proverbs 7:10, 21-22)
Don't fall for <Temptation>.
When you fall into temptation, 1) you live by the flesh; 2) life is destroyed; 3) you leave God; 4) You leave the truth.
The text tells us how temptation comes to us. 1) it approaches to a young man like <a prostitute>; 2) she says the young man that she wants to invite him to her home party; 3) she says her husband goes far away; she says that she puts a clean and good duvet on the bed; 4) and she says that her husband will come back after a while.
Temptation comes sweetly, shaking our body and mind. In our mind, It makes an illusion that the we would come out of the temptation after enjoying the pleasure for a while. However, if you get caught in that <trap>, your life will be destroyed and separated from God.
Resist the temptation making you separated from God and truth. Stop being seduced by temptation that allows a momentary joy of body. If you get caught in that trap, your soul will be fatally wounded.
The world is getting evil and destroys the life of God’s people. Discern the temptations of the world, and keep yourself from that temptation.
4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5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여인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잠언 7:4-5)
<성령님>이 여러분에게 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3:16) 이분은 <인격>을 가진 분입니다. 기뻐하시기도 하고 슬퍼하시기도 하십니다. (엡 4:30)
성령님께서 어떤 일을 하십니까?: 1)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십니다; 2)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14:26)
잠언은 <지혜>를 붙들라고 명령합니다. 지혜를 눈동자 처럼 지키라고 말합니다.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와 내 친척이라고 말하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이 지혜는 성령님으로 부터 옵니다. 성령께서 지혜의 근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성령님을 인정하십시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성령님을 무시하지 마십시요. 성령님께 묻고, 성령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지키십시요. 성령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지혜>속으로 이끄십니다.
세상이 우리를 <이방연인의 유혹>처럼, 유혹합니다. 그 유혹이 달콤하고 우리를 점점 어두운데로 이끌어 갑니다. 성령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어두운 유혹안으로 계속 들어갑니다.
여러분 옆에 또 <다른 인격체>가 있습니다. 성령님입니다. 그분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가운데 여러분의 감정을 그분께 있는 그대로 알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우리를 하나님의 뜻 안으로 이끄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Walk with Holy Spirit>
4 Say to wisdom, "You are my sister," and call understanding your kinsman; 5 they will keep you from the adulteress, from the wayward wife with her seductive words (Proverbs 7:4-5)
Remember that <Holy Spirit> is being with you. (1 Corinthians 3:16) The Spirit has <personality>, as if human have emotion, being happy and sad. (Ephesians 4:30)
What does the Holy Spirit do for us ?: 1) He reminds me the words of God; and 2) He makes us discern the will of God. (John 14:26)
Proverbs commands you to hold onto <wisdom>. It tells you to keep your wisdom like a pupil of eye and to refer to Wisdom as your sister and relatives. The wisdom comes from the Holy Spirit. The Holy Spirit is the source of wisdom.
The values of the world tempt us like <The Temptation of a Gentile woman>. The temptation is sweet and leads us to a darker place.If you do not walk with the Holy Spirit, you have no choice but to enter into that temptation.
There is another personality by your side. This is the Holy Spirit. Walk with Him. In prayer, let your feeling and though be known to Him as it is, and ask for God's will. He will lead us to God’s will and protect us.
25 네 마음에 그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26 음녀로 말미암아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여인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잠언 6:25-26)
<음란>을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당장 즐거워보인다고 그 안에 빠져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문은 그 삶의 결과를 두가지로 요약합니다. 첫째, 그 삶의 끝에는 <빵 한조각만> 남게 됩니다. 둘째, 그 쾌락이 우리의 <영혼>까지 사냥합니다.
성경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이런 삶의 결과를 우리는 주변에서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육체의 쾌락을 따라 사는 사람은 결국 가진 것을 모두 잃습니다. 가족도 잃고, 친구도 잃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혼도 피폐해 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의 욕망은 너무도 강열해서 넘지 말아야 한 선을 넘고, 취하지 말아야 할 것을 취합니다. 그리고 성경이 경계한 결말을 경험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음란>을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에 우리를 내어 주기 시작하면, 그것은 결국 우리의 영혼을 삼킵니다.
<Beware of lewdness>
25 Do not lust in your heart after her beauty or let her captivate you with her eyes, 26 for the prostitute reduces you to a loaf of bread, and the adulteress preys upon your very life. (Proverbs 6:25-26)
Beware of <lewdness> that can appear in our lives at any time.
Today's text summarizes the consequences of the life following lewdness in two ways. First, at the end of that life, only a piece of bread remains. Second, that pleasure hunts even our <soul>.
We've already seen too many case in which people following the physical pleasure lost all what they have. They lost their wealth, family, and all relationship. And their souls are also devastated.
Nevertheless, their desire of the body is so strong that they cross a line that should not cross, and in the consequence, they experience the ending that the Bible warned about.
Be watchful of the <lewdness> in us. If we starts to allow the tiny lewdness, eventually it swallows our souls.
12 불량하고 악한 자는 구부러진 말을 하고 다니며 13 눈짓을 하며 발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질을 하며 14 그의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자라 15 그러므로 그의 재앙이 갑자기 내려 당장에 멸망하여 살릴 길이 없으리라 (잠언 6:12-15)
얼굴은 심령의 상태를 보여주고, 말은 마음에 품은 것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선한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은 <불량하고 악한 사람>에 대해 정의 내립니다: 1) 그는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고, 악한 의도를 따라 말합니다; 2) 그는 당당히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눈짓을 주고 받으며 말합니다; 3) 그는 다툼을 일으킬 만한 악을 계획하고 말합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들에게 <갑작스런 재앙>이 내린다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말들을 할때, 이러면 안된다는 것을 이미 마음에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서 그만 하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분이 불리지 않으니까, 내 악한 의도대로 밀고 나갑니다. 주님께서 그런 우리들에게 멈추라고 하십니다.
오늘 하루, 우리들에게 <악한 의도>를 품고 말하는 바가 없는지 돌아보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말을 그만하라고 하시는지 우리 스스로를 살피길 원합니다. 만약 그런 말이 우리 안에서 풀리지 않는 화에서 나온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마음을 만지시길 기도하기 원합니다.
<Have good words>
12 A scoundrel and villain, who goes about with a corrupt mouth, 13 who winks with his eye, signals with his feet and motions with his fingers, 14 who plots evil with deceit in his heart-- he always stirs up dissension. 15 Therefore disaster will overtake him in an instant; he will suddenly be destroyed--without remedy. (Proverbs 6:12-15)
Our face reveals the state of the soul, and the words reveal what is held in the heart. Keep hearts before God and speak good words.
The text defines <a bad and evil person>: 1) He does not speak as it is, but speaks with evil intentions; 2) He does not speak publicly, but secretly, giving signals with their eyes and feet; 3) He plans and speaks of quarrelsome evils to stir up fight. Bible says that <sudden catastrophe> will come upon such people.
In fact, when we say these things, we already know in our minds that we shouldn't do this, because God tells us to stop the words. However, we keep the condition speaking out such an evil intentions. Lord is telling us to stop.
Today, we want to look back us, if there is anything to say with <evil intention> in our life. God says to us to stop. If it comes out of anger, pray that the anger will be relieved by the grace of God.
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10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잠언 3:9-10)
여러분의 재물로 하나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재물과 소산물 가운데 <처음 익은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합니다. 첫 월급이나, 첫 장사로 번 수식으로 하나님을 먼저 섬겨 보시기 바랍니다.
구약 성경은 <십일조>에 대해서도 명령합니다.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교회운영, 선교사 후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여러분의 소득중에 십분의 일을 사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약속하십니다. 그들의 삶이 궁핍하지 않고, 풍성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내어 드린 사람들입니다. 돈에 있어서도 그러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앞에서 돈을 쓰는 방식을 교육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그 자녀가 풍성해 지는 길입니다.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물질로 섬기는 법을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그때를 놓치면 그 후에는 그런 삶을 갖기 어려워집니다.
돈에 대한 주권을 하나님께 내어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풍성함과 평안함으로 가는 길입니다.
<Serve God with money>
9 Honor the LORD with your wealth, with the first fruits of all your crops; 10 then your barns will be filled to overflowing, and your vats will brim over with new wine. (Psalm3:9-10)
Serve God with your money.
Today's text says to serve God with <the first thing> among the riches and products. Serve God first with your first salary or the gain you earned from your business.
The Old Testament also commands <Tithing>. It is giving <a tenth> of income to God. For church management, missionary support, and for the poor, donate the tenth of your income.
God promises them. Their lives will not be needy, but will be abundant. Christians are those who have surrendered all sovereignty to God. Be surrendered to God in financial matters as well.
Educate <Children> how to spend money before God. That is the way the child will be enriched. In the <Youth Time>, train yourself to serve God with money. If you miss to train yourselves in that time in money matter, it later becomes difficult to live in that way.
Give God the sovereignty over money matters. That is the way to abundance and peace.
20 지혜가 너를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21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잠언 2:20-21)
예수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인의 마음안에 계십니다. 성령님을 인식하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안내해 주십니다. 요한 복음 14장 2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오늘 잠언에 소개되는 <지혜>가 <성령님>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지혜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을 <정직>과 연결시킵니다. 성령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합니다.
성령님은 우리 마음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앞에서 정직해야만 하나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마음안에서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내 생각과 의도로 바꾸고, 내 논리를 만드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인도에 늘 정직함으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정직함을 잃어 버리면, 하나님의 지혜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The wisdom of God>
20 Thus you will walk in the ways of good men and keep to the paths of the righteous. 21 For the upright will live in the land, and the blameless will remain in it (Proverbs 2:20-21)
If you accept Jesus as the Lord, Holy Spirit comes to you, because Holy Spirit is the spirit of Jesus. The Holy Spirit is in the Christian's heart. Recognize the Holy Spirit in us and start a life of walking with the Spirit.
What does the Holy Spirit do in our hearts? He guides the <God's will>. John 14:26 says: “26 But the Counselor, the Holy Spirit, whom the Father will send in my name, will teach you all things and will remind you of everything I have said to you. ”
The <Wise> introduced in Proverbs today is <Holy Spirit>. Proverbs, then, links those who get <Wise Guidance> with <Honesty>, because the honest person In front of the Holy Spirit experiences the guidance of God.
If we are dishonest, we deny the guidance of Holy Spirit speaking in our heart, making excuse and defending ourselves with our own words. The Holy Spirit speaks in our hearts. We should be honest before him to experience God's guidance.
3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4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5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잠언 2:3-5)
우리가 준비할 것은 <순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뜻을 물으면, 반드시 말씀해 주십니다.
본문 4절은 말합니다. 우리가 돈을 버는 열심처럼, 하나님의 지혜를 찾으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소리내어 구하면, 하나님께서 뜻을 응답하신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묻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어도 알지 못하는 이유는 <순종>하기 위해 묻는 것이 아니라, 참고하기 위해 묻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응답을 들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까? 순종을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말고 반복적으로 물으시기 바랍니다. 마치 돈이 필요한 사람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해 주십니다.
<God tells us>
3 and if you call out for insight and cry aloud for understanding, 4 and if you look for it as for silver and search for it as for hidden treasure, 5 then you will understand the fear of the LORD and find the knowledge of God.(Proverbs 2:3-5)
What we will prepare is <obedience>. God surely tells us when we ask for His will.
Verse 4 of the text says that if we find God's wisdom, like the effort for earning money, we will know God's will; If we ask loudly to know God's will, God will answer to us.
We don't know God's will because we don't ask God about His will. Even though, we ask God, we also can not find His wlll, because we are asking God, just for curiosity or simply advice, not for obedience.
Is there anything you need to hear from God? Make up your mind to obey as God would answer. Don't give up asking, like someone who needs money. God speaks clearly.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애굽기 14:)
사람이나 상황을 보고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만히 하나님을 기다리시면, 하나님께서 나타나 일하십니다.
바로의 마음이 또 바뀌었습니다. 장자의 죽음으로 겸손해졌던 바로가 다시 마음을 강팍하게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군대를 일으켜서 다시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습니까? 그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모세에게 불평합니다. 광야에서 칼에 죽는것보다,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것이 더 낳았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들을 끌고나와서, 결국 광야에서 죽게 만들었다고 불평합니다.
분노하는 바로나, 불평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사람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사람은 늘 상황에 반응하고, 자기 중심적입니다. 상황이 좋게 돌아가면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으면 다시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상태를 보면 구원의 소망이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에게서만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라, 내가 너희를 위해서 싸우리라” 라고 말입니다. 가만히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구원이 하나님으로 부터 나옵니다. 변하는 상황이나 사람을 보지마시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시기 바랍니다.
<Still wait for God>
14 The LORD will fight for you; you need only to be still.” (Exoudus 14:)
Do not be shaken by seeing people or situations. If you still wait for God, God will appear and work for you.
Pharaoh's mind changed again. Pharaoh, who had been humbled by the death of the firstborn, changed his mind again. So He raised up an army and pursued the Israelites again.
What about the Israelites? In that situation, the Israelites complain again to Moses. They said that It was better to live in Egypt as a slave than to die by a sword in the wilderness. They also said that that Moses dragged them out and eventually killed them in the wilderness.
Either angry Pharaoh, or the complaining Israelites are what we are. Humans have no hope. We are always react depending on situation and self-centered. When something go well, we praise God, but complain and resent when something go to bad. This is our mind.
Man has no hope of salvation. Salvation only comes from God. God exhorts us, saying "Stay still, and I will fight for you." Please stay still, just look only for God. Salvation comes from God. Do not be shaken by the situation or people. Only one we can trust is God.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출애굽기 13:17)
부족해도 하나님앞에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상태를 가장 잘 이해 하십니다. 그리고 그에 맞게 인도해 주십니다.
이집트에서 가나안땅까지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은 <블레셋 대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않고, 돌아가는 길로 이끄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길은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 속했고, 그 길로 가기 위해서는 그들과 전쟁을 치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런 전쟁을 치룰 <믿음과 마음>이 준비 되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광야로 나오자마자 그런 전쟁을 치룬다면,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수준과 상태를 아시고, 그들을 돌아가는 광야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그들의 마음과 믿음을 준비 시킵니다.
자녀의 상태를 엄마가 가장 잘 알고 있듯이, 우리의 <수준과 상태>를 하나님께서 가장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이끄실때 그 <상태와 수준>에 맞게 우리를 이끄시고 요구하십니다. 앞서지도 말고 뒷서지도 말고,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이끄십니다.
<Leading into the best way>
17 When Pharaoh let the people go, God did not lead them on the road through the Philistine country, though that was shorter. For God said, "If they face war, they might change their minds and return to Egypt.” (Exodus 13:17)
Even if you feel that you are not enough, just stay before God. God understands best regarding your condition. And God guides you accordingly.
The fastest way from Egypt to the land of Canaan is Philistine Road. However, God does not lead the Israelites on that path, but leads them on a wilderness path, which make them turn around. Why does God do this to them? The reason is that it belonged to the land of the Philistines. If they go that way, they have to go through a big war.
The Israelites are not ready to fight such a big war. If they go through the war as soon as they came out into the wilderness, they would try to go back to Egypt. God knows their condition, that He guides them the wilderness road to prepare their mind condition step by step, and after that God made them stand before the war.
Just as a mother knows best regarding their child's condition, God knows best our <level and condition>. So, when he leads us, He leads and demands us according to our situation and condition. Walk with the Lord. God is leading us in the most appropriate way.
37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속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심만 가량이요 38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출애굽기 12:37,38)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심판>이 없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갈때, 같이 나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38절은 그들을 <수 많은 잡족>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출애굽에 참여 하게 된것입니까?
바로왕이 마음을 돌이키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이집트 사람들의 장자를 모두 죽이기로 하십니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의 첫 새끼들도 죽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은 그 심판에서 구별하십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집 대문기둥에 양의 피를 바르면, 죽음의 천사가 그 싸인을 보고 그 대문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그 소식을 그들 곁에 살고 있던 <잡족들>에게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집대문에 양의 피를 발랐고, 장자가 죽는 심판을 피하게 됩니다. 그들이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나온 것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경고합니다.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는 사람은 심판을 피하고, 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심판>앞에 서게 될것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안에 있기 바랍니다. 그들에게 심판이 없습니다. 이 소식을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Avoid judgment in Jesus’ blood>
37 The Israelites journeyed from Rameses to Succoth. There were about six hundred thousand men on foot, besides women and children. 38 Many other people went up with them, as well as large droves of livestock, both flocks and herds. (Exodus 12:37,38)
There is no <judgment> for those who rely on <Jesus' Blood>, but those who deny Jesus will face the judgment.
When the Israelites left Egypt, some people went out with them. Verse 38 records them as <many other nations>. They are not Israelites. How did they come to share in the Exodus?
When Pharaoh does not turn his heart, God decides to kill all the firstborn of the Egyptians. Not only humans, but also the first offspring of the beast die. But God sets the Israelites apart in that judgment. If the Israelites applied sheep's blood to the main pillar of the house door, the angel of death saw the sign and did not enter the house.
Israelites also delivered this news to <the other nations> who were living as their neighbor. And they also applied sheep's blood on the door of the house and avoided the judgment of the firstborn's death. They, then, also participated in the Exodus.
The Bible continues to warn. Those who rely on <Jesus' Blood> will avoid judgment, and those who do not will stand in front of <the Judgement>. Stay in Jesus, that you have no judgment. Share this news with your family and those around you.
24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25 모세가 이르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26 우리의 가축도 우리 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출애굽기 10:24-26a)
우리 삶에는 내가 마지막까지 놓고싶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놓으라고 요구하십니다.
어두움이 이집트 내려 앉았습니다. 낮인데도 이집트 전체가 어두웠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곳은 밝았습니다. 이집트왕은 다시 마음이 두려워졌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요구한데로 <어린아이들>까지 모두 데리고 광야로 나가라고 허락합니다. 그러나 <가축>은 이집트에 두고 가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대답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가축>뿐만 아니라, 바로의 가축중 일부도 가져 가겠다는 것입니다. 바로는 다시 분노하여 모세를 쫓아 냅니다.
바로에게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내보내는 것도 큰 결단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바로에게 재산까지도 요구하는 것입니다. 바로는 그것까지 내어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바로에게 집요하게 요구합니다. 타협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바로가 온전히 순종 하던지, 아니면 계속해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집요하게 추적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절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는데, 그것을 내려 놓으라고 요구하십니다. 그것 마저도 하나님앞에서 내려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진정 우리의 주인이 되십니다.
<God who keeps asking>
24 Then Pharaoh summoned Moses and said, "Go, worship the LORD. Even your women and children may go with you; only leave your flocks and herds behind.” 25 But Moses said, "You must allow us to have sacrifices and burnt offerings to present to the LORD our God. 26a Our livestock too must go with us; not a hoof is to be left behind. We have to use some of them in worshiping the LORD our God… (Exodus 10:24-26a)
There are things in our lives that we don’t want to give up until the end of our life. God is asking us to let it go from our hand.
The darkness settled down in Egypt. Even though it was daytime, the whole of Egypt was dark. But the place where the Israelites lived was bright. The king of Egypt was again afraid of it. So, as Moses requested, he allowed them to go out to the wilderness with all <their little children>. However, he did not allow livestock to go with them.
Then, Moses answered; Israelites will take not only the Israelites' livestock, but also some of Pharaoh's livestock as they go out of Egypt. Pharaoh became angry again and expelled Moses before him.
It was a big decision for Pharaoh to let the Israelites go out. But through Moses, God asked Pharaoh for his wealth. He didn't want to give up the wealth.
God persistently demands of Pharaoh. There is no compromise; Either Pharaoh completely obey what God requires, or he must continue to be judged.
In our lives, there is something that God persistently requires toward us. We never want to give up, but God asks us to put it down. Put it down in front of God. Only then, God truly becomes our Lord.
11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가 구하는 바니라 이에 그들이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 땅 위에 네 손을 내밀어 메뚜기를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여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모든 채소를 먹게 하라 (출애굽기 10:11-12)
하나님은 우리가 부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훈련하십니다.
우박 심판으로 애굽이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온전히> 들어주지 않고, <부분적>으로 들어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사람들>이 광야로 나가기를 요청했지만, 바로왕은 <성인만> 나가라고 말하며, 모세를 쫓아 냈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바로왕을 심판하십니다. 이번에는 메뚜기 심판입니다. 지난번 우박 심판에서는 짐승과 보리만 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늦게 싹을 틔운 밀과 쌀보리는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메뚜기를 보내서, 그 남은 것을 모두 없애 버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삶의 일부분을 상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경고>를 보내십니다. 그때 돌이키지 않으면, 남은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온전한 마음>을 요구하십니다. 반쪽만 하나님께 기대고, 다른 반쪽은 다른 것을 기대고 있다면, 하나님은 그 다른 반쪽을 없애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십니다. 주님께 온전해지는 은혜와 평강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Refinement for Integrity>
11 No! Have only the men go; and worship the LORD, since that's what you have been asking for." Then Moses and Aaron were driven out of Pharaoh's presence. 12 And the LORD said to Moses, "Stretch out your hand over Egypt so that locusts will swarm over the land and devour everything growing in the fields, everything left by the hail.” (Exodus 10:11-12)
God wants us to rely on Him wholeheartedly, not partially.
Egypt was greatly hurt by the hail judgment. King Pharaoh is determined to allow the needs of the Israelites. However, it was not <completely>, but <partially>. The Israelites asked for <Everyone> to go out into the wilderness, but King Pharaoh told them to go out for <Adult Only> and drove Moses out before him.
God judges Pharaoh again. This time the judgement is the grasshopper. In the last hail judgment, only the livestocks and barley were harmed. However, late sprouted wheat and barley remained. So, God sends a locust to get rid of all that remains.
For His people, God sends <His warning> by hurting a part of their lives. If they don't turn back in partial loss, then God deprives everything left. God requires us to have a <complete heart> for Him.
If we lean on God partially, God drives us until we are fully committed, removing the other half we are leaning on. We want to look back on ourselves. Whether we are giving only half of our heart to God or if we are giving it all.
31 그 때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꽃이 피었으므로 삼과 보리가 상하였으나 32 그러나 밀과 쌀보리는 자라지 아니한 고로 상하지 아니하였더라 34 바로가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친것을 보고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 그와 그의 신하가 꼭 같더라 (출애굽기 9:31,32,34)
모든 것을 잃기 전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마음을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를 <우박>으로 심판 하셨습니다. 들에 있던 짐승들이 죽고, 농작물들이 파괴 되었습니다. 바로는 우박이 멈추면, 하나님께 순종하겠다고 약속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박을 멈춰 주셨습니다. 그러자 바로의 마음이 변했습니다. 31절과 32절은 그 이유에 대해서 말합니다. 우박때문에 <보리와 삼>은 상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밀과 쌀보리>는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가 남아 있는 것에 기대어 다시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입니다. 결국 바로는 자신의 아들을 잃은 후에야, 하나님께 무릎을 꿇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기댈만한 것들이 남아 있으면, 하나님의 뜻앞에 잘 굴복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남아 있는 그것들을 의지합니다. 결국 모든 것을 잃어야, 마음을 굽히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려움속에 우리의 삶을 돌아봅니다. 내가 그러고 있는 것은 없는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굴복하라고 하는데, 여전히 남은 것을 붙들고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이 편안한 길입니다.
<Turn to God, before loss>
31 (The flax and barley were destroyed, since the barley had headed and the flax was in bloom. 32 The wheat and spelt, however, were not destroyed, because they ripen later.) 34 When Pharaoh saw that the rain and hail and thunder had stopped, he sinned again: He and his officials hardened their hearts. (Exodus 9:31,32,34)
We should fear God and change our heart, before we lose everything.
God judged Egypt with <hail>. The animals in the field died, and the crops were destroyed. Then, Pharaoh asked Moses that if the hail stop, he will obey God and let israelites go out of Egypt.
God stopped the hail. However, Pharaoh's heart changed. Verses 31 and 32 speak of the reason. The hail hurt <Barley and Hemp>, but <Wheat and Rice Barley> remained. Pharaoh leaned back on what remained and hardened his heart again. Eventually, God killed his first son and Pharaoh he kneeled to God.
We do not surrender to God's will when we have things left to lean on. We rely on those that still remain. After losing everything, we in the end surrender to God, which is our habit.
We look back our lives in fear, questioning “is there anything I am doing so?” When God tells us to surrender, we should do it and make our mind humble before him. It is a safe way before God.
7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본즉 이스라엘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니라 (출애굽기 9:7)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이 경고 하십니다. 그 반복되는 경고앞에 마음을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 왕에게 다시 경고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나가게 하지 않으면, 전염병으로 그 땅을 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전염병이 그 땅에 돌 때, 이스라엘 백성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않지만, 이집트 사람들의 가축들은 죽게 될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음날,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않았지만, 이집트 사람들의 가축은 죽었습니다.
이쯤되면, 바로왕이 마음을 고치고, 이스라엘 백성을 나가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바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에 보니까 바로의 마음이 완강해졌다고 합니다. 애굽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나님의 경고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바로왕의 첫째 아들이 죽습니다. 뿐만아니라 모든 이집트 사람들의 첫 아들이 죽게 됩니다. 그제서야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내보냅니다.
하나님의 경고는 반복적입니다. 혹시 마음이 완강해져서 놓치고 있는 경고가 있다면,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마음을 겸손케 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면 삽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자기 백성을 보호하십니다.
<Warning and protection>
7 Pharaoh sent men to investigate and found that not even one of the animals of the Israelites had died. Yet his heart was unyielding and he would not let the people go. (Exodus 9:7)
God shows us a warning sign. We must humble our hearts in front of God's warnings.
God warns the king of Egypt again. If he don't let the Israelites go out of Egypt, God will strike the land with a plague. God also said that when the plague goes to the land, none of the livestock of the Israelites will die, but Egyptian’s livestock will die. The next day, it was just as God said. None of the livestock of the Israelites died, but the livestock of the Egyptians was killed by the plague.
King Pharaoh should humblel his ming and let the Israelites go out, but Pharaoh didn’t. He did not accept the disaster as a warning of God.
We know the ending of this story. Eventually, King Pharaoh's first son dies and the first sons of all Egyptians as well. Only then, they feared God and sent the Israelites out of Egypt.
God's warning is repetitive. If we are ignoring the warnings, we are not safe. if we feel any warning coming from God, we should humble our mind and obey to God.
We are going through covid-19 pendemic, we believe that churches should listen to God's warnings, making our heart humble, not being harden. If we do that, God will protects us in this pendemic.
30 모세가 여호와 앞에서 아뢰되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이까 7:2 내가 내게 명령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할지니라 (출애굽기 6:30,7:1)
우리는 내가 가진 연약함때문에 늘 불평이 나옵니다. 그 연약함때문에 나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모세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모세가 하나님께 반복적으로 하는 불평은 <자신의 입술은 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두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첫째, 애굽을 너무 오래 떠나있어서, 애굽말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둘째, 말 그대로 말을 잘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사실인지는 모릅니다. 분명한것은 모세에게 말하는 것에대한 <장애>, 혹은 <컴플렉스>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을 때부터, 반복적으로 “자신의 입술이 둔하다”고 불평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감당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모세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그 장애와 컴플렉스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사람을 붙여주어 그 연약함을 채워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가 모세의 형 <아론>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분명한 연약함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안된다고 매일 불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연약함을 극복할 힘을 주십니다. 그 연약한 부분을 대신 채워줄 사람을 보내 주십니다. 안된다고 불평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시선을 여러분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Abandon complain, take obedience>
30 But Moses said to the LORD, "Since I speak with faltering lips, why would Pharaoh listen to me?” 7:2 You are to say everything I command you, and your brother Aaron is to tell Pharaoh to let the Israelites go out of his country. (Exodus 6:30,7:1)
We complain all the time regarding our weaknesses and say that I can not do such things because of the weakness. Moses did as well. Then, what does God say to Moses?
Moses repeatedly complained to God that his lips were dull. What does that mean? There are two interpretations. First, he forgets the words of Egyptian because has left Egypt long time ago. Second, literally, he may has handicap in verbal ability.
We don't know what is fact. However, it was clear that Moses has a <complex> in speaking. So, from the time God called him, Moses repeatedly complained that "his lips are dull” and said that he cannot obey to God's calling.
What then does God say to Moses? He says that disability and complex are not a problem. And God also says that He will put a man to help for Moses’ weaknesses. It was Moses' brother <Aaron>.
You also have a certain weakness and complain every day that I can't because of the complex. God, however, gives us the strength to overcome that weakness. He sends someone to help us in those weaknesses Don't complain about your complex. Instead, let your eyes put on God, not on yourself. God leads you to do everything.
9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12 모세가 여호와 앞에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출애굽기 6:9,12)
하나님의 뜻대로 행했는데 어려움을 당했습니까? 그래서 그 길을 포기해 버렸습니까? 여기 모세를 보시고 다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의 압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줄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도리어 그들의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 놓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했다가, 바로에게 거절당하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신에게 등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이상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바로를 설득할 만한 언어적 능력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시 그 일을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결국 모세는 다시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대로, 하나님의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다가 어려움을 당했다고, 포기해 버린 것이 있습니까? 사람들에게 거절 당해서, 낙심 되었습니까? 그래도 포기하지 마시고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하나님의 일이 여러분의 삶에 드러납니다.
<Obey again>
9 Moses reported this to the Israelites, but they did not listen to him because of their discouragement and cruel bondage.12 But Moses said to the LORD, "If the Israelites will not listen to me, why would Pharaoh listen to me, since I speak with faltering lips ?” (Exodus 6:12)
Did you face any difficulties when you did God's will? So did you give up on that path? See Moses here and get up again.
The Israelites turned their backs on Moses and Aaron. Israelites thought that Moses and Aaron would save them from Pharaoh's oppression, but their situation became more difficult than before because of Moses and Aaron.
Moses complained to God, saying that he did according to God's will, but was rejected by Pharaoh, and the Israelites turned their backs on Moses. He also thought he doesn't have the linguistic ability to persuade Pharaoh.
Nevertheless, God commanded Moses to obey God continually, delivering God’s will to Pharaoh again. Moses ,eventually, went back to Pharaoh and told him the will of God. And, as we know well, from that time, God started to reveal His work.
Have you ever had a hard time due to your obedience and gave up to obey God? Are you discouraged by being rejected by people as you obeyed God? Nevertheless, do not give up and obey God again. Eventually, you will experience God's work in your life.
18 이제 가서 일하라 짚은 너희에게 주지 않을지라도 벽돌은 너희가 수량대로 바칠지니라 (출애굽기 5:18)
하나님의 뜻을 따랐는데,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했습니다. 이집트 왕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나가게 해달라고, 요청 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바로에게 요청합니다.
그러나 그 제안을 들은 바로왕은 분노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게을러서 그런 소리를 한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더 많은 노동을 시킵니다. 그 일로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을 사게 됩니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상황은 더 나빠집니다. 바로왕에게 수치를 당했고, 동족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삶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하나님앞에서 정직한 마음으로 행했는데,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선한 결론>을 가져 오십니다. 수치를 회복하시고, 미움을 칭찬으로 바꾸시고, 눈물을 기쁨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고 소망합니다.
<Still, hop for God >
18 Now get to work. You will not be given any straw, yet you must produce your full quota of bricks.” (Exodus 5:18)
We follow God's will, but sometimes our situation gets worse than before. However, do not give up <hope for God>.
God commanded Moses and Aaron to go to Pharaoh, and to ask him to let Israelites go out into the wilderness. Moses and Aaron did to Pharaoh according to God's command.
However, King Pharaoh was angry when he heard their request. He judged that Israelites suggested such offer because they became lazy. So, the king Pharaoh put more work on them. The Israelites hated Moses and Aaron because of it.
Moses and Aaron only followed God's command. But their situation gets worse. They was shamed by King Pharaoh, hated by his own people, and life became more difficult.
There are times when our lives become more difficult even though we followed God's will. Nevertheless, do not give up <hope for God>. In the end, God will bring <good consequence>; He will restore us from shame, transform hatred into praise, and tears into joy. Do not stop hoping God.
20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출애굽기 4:20)
하나님을 의지하면 살고, 화려하고 강해 보이는 것을 따라가면 결국 망합니다.
모세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집트로 들어갑니다. 이집트는 강력한 군대와 많은 돈을 가진 나라입니다. 모세가 그곳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강한 군대와 많은 돈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집트로 들어가는 모세는 지팡이 하나를 잡고 이집트로 들어갑니다. 너무나 초라해 보입니다. 늙은 모세 만큼이나 초라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지팡이의 정체를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밝힙니다.
그 지팡이는 초라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지팡이 안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모세는 그 지팡이로, 이집트 왕을 떨게 만들고, 홍해를 갈라지게 하고,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40년간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붙들고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없지만 강하고 화려해 보이는 무엇을 붙들고 삽니까? 그것을 의지하면 반드시 넘어집니다. 그 삶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당장은 초라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그 선택이 결국 그를 승리로 인도합니다.
<Choose God's Staff>
20 So Moses took his wife and sons, put them on a donkey and started back to Egypt. And he took the staff of God in his hand. (Exodus 4:20)
If you rely on God, you live, and if you follow something that looks splendid and strong, you will eventually fail.
Moses goes to Egypt to save his people. Egypt is a country with a strong army and a lot of money. In order for Moses to save his people there, he must prepare an army stronger than them and a lot of money.
But Moses, who enters Egypt, grabs a staff and enters Egypt. It looks so shabby. It is as shabby as the old Moses. However, the Bible reveals the identity of the staff as <God's staff>.
The staff looks shabby. However, the power of God rests on the staff. With that staff, Moses made the king of Egypt tremble, split the Red Sea, caused water to burst out of the rock, and led the Israelites for 40 years.
What are you holding on to? There is no God, but what do you live with that looks strong and splendid? If you rely on it, you will surely fall. There is no hope in that life. Even if it may seem shabby right now, please choose God. That choice eventually leads you to victory.
22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출애굽기 2:22)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는 고난의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그 시간에도 침묵으로 동행하십니다.
왕자로 살던 모세는 어느날 갑자기 도망자의 신세가 됩니다. 그리고 <40년>간 광야의 양치기로 살아갑니다. 모세는 자신의 삶을 한탄 하면서, 그 시절에 낳은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짖습니다. “내가 다른 나라에서 떠돌이가 되었다”라는 뜻입니다. 모세가 큰 죄를 지어서 그런 삶을 살게 된것이 아닙니다. 자기 동족을 돕고자 했을 뿐인데, 그 결과가 40년 양치기로의 삶이었습니다.
우리는 모세가 겪는 고난의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시간을 통해서 모세를 훈련하고 계셨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훈련하셨습니다. 양들과 함께 40년간 광야를 돌아다니면서, 광야에서 생존하는 법과 지형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되었을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광야의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모세의 40년>이 있습니다. 인생이 실패한것 같은 시간, 하나님은 더이상 내 삶에 개입하지 않으시는 것 같은 시간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시간에도 우리의 삶에서 당신의 일을 하고 계십니다. 시간이 지나고나면, 우리는 그 시간의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사라진것 같은 그 시간,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는 것 같은 그 시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할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인내로 시간을 채워 나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Walking in Silence>
22 Zipporah gave birth to a son, and Moses named him Gershom, saying, "I have become an alien in a foreign land.” ( Exodus 2:22)
There is a time of hardship that comes suddenly one day. It is a time as if there is no God. However, God walks in silence even at that time.
Moses, who lived as a prince, suddenly becomes a fugitive one day. And for <40 years>, he lives as a shepherd in the wilderness. Moses lamented his life and made his son’name <Gersom>, naming after his situation. It means “I have been a wanderer in another country”. His suffering did not come because of his sin. He just helped his own people, but the result was painful.
We know the reason for Moses' suffering. God was training Moses through that time. He trained Moses to make him abandon himself and rely on God only. Having wandered through the wilderness for 40 years with the sheep flock, Moses has completely understood how to survive in the wilderness and geography of wilderness. And when the time has passed, God called Moes as a leader for Israelites who entered into wilderness.
Each of us has <40 Years of Moses>; A time when life seems to have failed; when it seems like God is no longer intervening in my life. God, however, is still there, doing His work in our lives. As time passes, we come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that time. Keep going your way. Fill your time with patience. God is still working there.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출애굽기 1:17,20,21)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애굽왕 바로가 산파들에게 명령했습니다. 이스라엘 여자들이 남자 아이를 낳으면 모두 죽이라고 말입니다. 왕의 명령을 어기면 산파들은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산파들은 <왕>의 명령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 했습니다. 그리고 남자아이들을 살려 주었습니다. 어떤 결과가 일어났습니까? 산파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의 집안은 더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경외>한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여기에는 두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려워한다” 와 “존경한다” 입니다.
시편 128: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붙드시고 복을 주십니다.
<A person blessed by God>
17 The midwives, however, feared God and did not do what the king of Egypt had told them to do; they let the boys live. 20 So God was kind to the midwives and the people increased and became even more numerous. 21 And because the midwives feared God, he gave them families of their own. (Exodus 1:17,20,21)
God blesses those who <fear> Him.
Pharaoh king of Egypt ordered the midwives. If Israeli women give birth to boys, they are told to kill them all. The midwives could die if they violate the king's orders.
However, the midwives feared <God> more than the orders of <king>. And he saved the boys. What happened? The midwives are not killed. Rather, their families became more prosperous.
God blesses those who fear Him. What is the word <fearing God>? It is not just simple fear, but godly fear and respect.
May you have a godly fear toward God. God also respects you and supports your life.
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누가 복음 24:36-39)
예수님의 부활을 막연한 것으로 여기지 마세요. 예수님의 육체가 실제로 다시 살아나셨고, 아직도 육체가 사라지지 않으시고, 하늘로 올려 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에, 제자들이 모여 이야기하는데, 예수님께서 갑자기 그 자리에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자신들 앞에 있는 분이 <예수님의 영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자신이 <영혼>이 아니라, <육체>를 입고 계심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못자국으로 복, 예수님의 몸을 만져 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로 부활 하셨음을 의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살아나셨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이 우리를 통치하십니다. 주님의 부활을 명확하게 인지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3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도를 의논하매 4 그들이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누가복음 22:2-4)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기로 결심합니다. 유다는 어떻게 이런 결심을 하게 된것입니까? 성경은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왔고, 사탄이 유다에게 그런 계획을 심어 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유다의 잘못이 아니고, 사탄의 잘못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탄이 일방적으로 유다에게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유다가 사탄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 주었기 때문에 그가 유다에게 들어온 것입니다.
사탄은 아담과 하와도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그의 유혹을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탄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 줍니다. 그리고 선악과를 따 먹습니다. 인류 최초의 죄가 이렇게 등장합니다.
지금도 사탄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부정하고 떠나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사탄을 향하여 마음을 열지 않으면 그는 우리에게 들어오지 못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4:7)” 사탄에게 마음을 열어 주는 것이 아니라, 사탄을 대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사탄이 여러분에게서 떠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께 붙들어 매시기 바랍니다. 사탄에게 열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붙드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1:)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지지 않도록 주의 하시기 바랍니다.
방탕하지 않는것, 술취하지 않는 삶이 깨어 있는 삶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여기에 한가지를 더 말씀하십니다.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 지지 않는 것입니다.
집을 사고 팔고, 직장을 가고 오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키우고 살림하는데서 오는 모든 염려들이 <생활의 염려>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 염려에만 집중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집니다. 영적으로 둔감해 져서 하나님을 느낄 수 없게 됩니다.
그 상태를 깨우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36절에서 <기도로 깨어 있으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생활의 염려>에 푹 젖어 있고, <기도>가 내 삶과 가정에서 사라지지는 않았는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혼이 깨어 있을 수 없습니다. 건강 할 수도 없습니다.
다음주부터 <고난주간 특별 새벽 예배>가 시작됩니다. <가정 기도회>와 <새벽 예배>로 여러분의 심령을 다시 깨우시기 바랍니다.
27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28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21:)
예수님께서 다시 오십니다. 구름을 타고 이 땅에 다시 오십니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반복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4복음서에서 강조하고, 서신서들속에서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고, 요한 계시록은 통째로 이 부분을 다룹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성경의 약속은 <비유적인 약속>이 아닙니다. <상징적인 약속>이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 예수님께서 구름의 형상 속에 휩싸여, 이땅에 오시는 것을, 사람들이 보게 될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성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것을 반복적으로 전하고 있고, 이 날을 준비 하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오시는 날들에 대한 징조를 말하기도 합니다. 성도가 신앙 때문에 핍박을 받게 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그 날을 성도는 믿음으로 인내한 후에, 예수님의 오심을 보게 됩니다.
그 날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날을 믿고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인내로 믿음을 지키면서 그 날을 소망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17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18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누가복음 21:17-19)
<핍박과 환란>가운데 <믿음>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본문 17절은 말하기를, 세상 끝이 가까와 올 수록,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크게 두려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18절에서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핍박과 환란>에 대한 소문이 점점더 크게 들려 올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지켜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환란>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명의 길>로 믿는 사람들은 환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킬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환란 속에서 믿음을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19절에서 말씀 하시기를,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라”라고 하십니다. <환란> 속에서 <믿음>을 지킨 사람들을 주님께서 구원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점덤 더 <법>으로 규제되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을 지키려면 <소외, 환난, 핍박>을 각오해야 할 시대입니다. 주님은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라”고 권면하십니다.
30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누가복음 19:30-31)
우리의 것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내 놓으라면 내 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고 우리는 단지 종이기 때문입니다.
다행인것은, 우리의 수준을 아시는 주님께서, 아직 우리가 순종하기 어려워 하는 부분은 안 건드리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그것을 요구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요구하셨듯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려고 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마을에 매어 있는 나귀를 풀어 오라고 명령하십니다. 만약 주인이 왜 풀어가냐고 물으면, 주님께서 쓰신다고 말하라고 합니다.
너무 황당한 말씀이지만, 제자들은 순종합니다. 더욱 놀라운것은 나귀 주인이 그 나귀를 내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일이 있을 수 있는지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나귀 주인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실때가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했던 것 처럼말입니다. 그때 미련 없이 주님께 내어 드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이끄시길 소망합니다. 모든 것이 주님께로 부터 왔습니다.
12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중략)… 27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9:12,27)
우리가 잘 아는 달란트 비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두가지 관점에서 달란트 비유를 이해합니다. 첫째, 각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은사가 있다. 둘째, 그 은사를 묻어 두지 말고 섬겨야 한다. 네, 귀한 이해 입니다.
그런데 누가는 오늘 본문에서 조금 다른 관점에서 달란트 비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달란트를 주고 떠난 사람은 <왕위>를 받아 오려고 떠났습니다. 그가 돌아올 때 그는 <왕권>을 가지고 돌아옵니다. 달란트를 감춰둔 사람에 대해서는 <왕권을 받으러 간사람이 왕 되어 돌아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묘사합니다. 그리고 왕이 되어 돌아온 주인은 그를 심판합니다.
예수님께서 왕으로 재림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환타지나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눈으로 보게될 <미래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세상은, 그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날은 그들에게 심판의 날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왕 되심을 다시 점검하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주인>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주인과 왕>으로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의 음성을 구하고, 그 앞에서 나를 굽히는 사람들입니다. 왕에게 충성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누가복음 19:7,9)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죄인을 대표하는 두 직업이 있었습니다. 세리 (세금 걷는 사람)와 창녀 입니다. 창녀는 왜 죄인인지 이해가 갑니다. 그렇다면 세리는 왜 죄인입니까?
세가지 이유인데, 첫째, 세리는 자기들의 지배 국가인 <로마>를 위해서 돈을 걷기 때문이고, 둘째, 세금을 속여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았기 때문이고, 셋째, 그 돈으로 방탕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죄가 대부분 성(Sex) 과 돈(money) 에 걸려 있습니다. 창녀와 세리 뿐 아니라, 우리들도 이 두가지의 죄에 걸려 있는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속에도 이러한 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은 그런 죄와 전혀 상관 없는것 처럼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위선자>,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하셨습니다.
<세리와 창녀>들은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예수님께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받아주시고 구원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주님이 찾으시는 <잃어 버린 자>들입니다.
죄인임을 고백하고, 주님께 나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앞에서 죄를 고백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죄를 고백하고 나가면, 예수님께서 그를 받아주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용서해주지 못할 죄인은 없습니다. 그 죄가 아무리 주홍빚 같아도, 그가 정말 죄를 회개하면, 예수님께서 눈과 같이 희게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받아 주십니다.
내가 죄인인걸 모르겠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그의 가장 큰 기도제목입니다. 죄가 보이지 않으면,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도 보이지 않습니다. 내 죄의 크기를 보게 해달라고, 그래서 주님과 주님의 십자가가 보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누가복음 18:32-33)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겪으셔야 하는 두가지가 있었습니다. <고난과 영광>, <죽음과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고난과 죽음>을 겪으십니다. 그리고 후에 <부활과 영광>을 겪으십니다. 죽음없이 부활이 없고, 고난 없이 영광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믿음 때문오는 <고난과 죽음>을 감당 하면, 하나님께서 <영광과 부활>로 보답하십니다. <자기 욕망>을 향해 달리다 겪는 고난과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 감당하는 고난과 죽음을 말합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은 <고난 없는 영광>입니다. <죽음 없는 부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리 속에는 그런 법이 없습니다. 그것을 추구한다면, 하나님을 속이고, 믿음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감당해야 할 <고난>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내 뜻대로 살고자하는 자아>를 믿음때문에 죽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광과 부활>로 보답하십니다.
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사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62:1-2)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봐야 할 때가 많습니다. 고난과 위협이 있지만, 아무손도 쓰지 못할때 입니다. 오늘 다윗의 시편은 이런 상황에서 지어진 시입니다.
다윗은 적들이 많았습니다. 본문 3절에서 다윗은 그들을 향해서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라고 말합니다. 또한 4절에서 묘사하기를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고난가운데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놓지 않는 <믿음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반석, 구원, 요새>가 되어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움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열심히 해봐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다해도 여전히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구원, 요새, 반석>이 되신다는 것을 믿고, 가만히 하나님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은 갑자기 떠오르는 <아침 해>처럼 나타납니다. 어두움이 한순간에 서쪽 끝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하나님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2 내 마음이 약해 질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3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 (시편 61:1-3)
다윗의 삶에는 수 많은 적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3:1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다윗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자신의 <피난처와 견고한 망대>라고 고백합니다. 적들로 부터 보호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 자신의 간구와 부르짖음을 들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다윗의 인생을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앞에 살게 되면 많은 고난에 부딪힙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 후서 3:12절에서 “무릇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을 것이다”라고 말했고, 주님은 누가복음 6:26절에서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다. 거짓 선지자들도 그러했다”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이 만나게 될 당연한 고난과 박해에 대해서 말한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고난>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고난 가운데 믿음의 길을 포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고난중에 <기도>로 주님께로 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기도의 줄을 붙들고, 일어 서시기 바랍니다. 보이지 않지만, <피난처와 견고한 망대> 되시는 주님의 보호 하심이 우리의 삶을 두르십니다.
10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1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12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시편 60:10-12)
다윗은 전투중에 큰 어려움을 겪은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지 않는다고 느낀 것 같습니다(1,2,3,10).
다윗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의미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힘있는 사람이 도와 준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국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또한 온전한 승리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에는 잠시의 기쁨이 있습니다. 잠시 승리한 것 같아 보일 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편에 서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분을 의지해서 용감하게 행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적들을 이기실 분은, 다윗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곧 선하시고, 인자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기대시기 바랍니다. 삶의 결과는 사람에게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9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니 그의 힘으로 말미암아 내가 주를 바라리이다. 10 나의 하나님이 그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영접하시며 하나님이 나의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보게 하시리이다. 11 그들을 죽이지 마옵소서 나의 백성이 잊을까 하나이다 우리 방패 되신 주여 주의 능력으로 그들을 흩으시고 낮추소서 (시편 59:9-11)
이 시편의 부제목은 <사울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죽이려고 그 집을 지킨 때>입니다. 다윗은 사울로 인해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편을 통해 두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자신의 <요새>, 다시 말해서 <적의 공격으로 부터 보호해주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피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적들로 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어떻게 피합니까? 그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이 권면이 허무해 보이는 권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실제로 보호하십니다.
둘째, 다윗은 <적>들에게 <보응>해 주실것을 기도합니다. 그들을 죽이지 말아달라고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죽고나면 그들이 했던 일들이 사람들에게서 잊혀 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흩으시고 낮춰달라고 기도합니다. 결국 사울 왕국은 망하고, 그들은 흩어지게 됩니다.
신앙의 여정속에서, 믿음때문에 받아야 하는 핍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피하시고, 그분께 아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지키십니다.
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편 55:22)
다윗은 자신의 고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두려움과 공포가 나를 덮었습니다(5). 근심으로 편하지 못하여 탄식합니다(2). 원수가 나를 압제하고 핍박하기 때문입니다 (3). 만약 나에게 비둘기처럼 날개가 있다면, 이 상황에서 훌쩍 날아가 버리고 싶습니다(6-8).
다윗은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들은 동료였고,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13). 그들과 나와 함께 하나님께 나가고, 함께 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14). 그런데 그들은 자신을 핍박하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됐습니다(13-14). 그들은 기름보다 미끄러운 말을 하지만, 마음은 전쟁을 품고 있습니다 (21).
다윗은 그 핍박속에서 이런 결론을 고백합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하나님앞에 나가 피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그 상황에서 훌쩍 피해 날아갈수 있는 <비둘기 날개>도 없습니다. 대항할 힘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을, 주님께서 그분의 방법으로 구원해 내실 것입니다.
3 낯선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들이 나의 생명을 수색하며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시편 54:3)
다윗은 자신을 괴롭게한 사람들에 대한 중요한 <특징>을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그들은 포악했습니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양심>을 하나님앞에 세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양심>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품고 있는 <생각과 의도>는 그만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양심을 하나님앞에 세우고, 점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들>과 <바리새인들>은, 양심을 하나님앞에 세우지 않습니다. 겁없이 악을 행고, 겉으로만 사람들앞에 좋게 보입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삼은 사람들은, 그들의 양심을 예수님앞에 세운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주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달라서 양심안에서 싸우기도 합니다. 때로는 부족해서 마음에 품은 것과 삶이 다르게 나타나기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양심을 주님앞에 세웁니다. 그리고 결국 주님앞에 자기를 점검하고, 자기를 굽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랜 씨름끝에 주님의 뜻 앞에 자기 삶을 세웁니다.
눈에 보여지는 모습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보이지 않는 <양심>을 주님앞에 세우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세우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4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5 그들이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 하였으니 너를 대항하여 진 친 그들의 뼈를 하나님이 흩으심이라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으므로 네가 그 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하였도다. (시편 53:4-5)
하나님을 무시하고 죄를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두려움 없이 원하는 대로 죄를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사람들의 결말을 매우 <역설적>으로 말해 줍니다.
첫째, 그들은 두려워 해야 할 것이 전혀 없는 곳에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두려울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두려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둘째, 그들은 자신이 <치려는 사람들>에게 도리어 <수치>를 당합니다. 본문의 상황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이 불리한 위치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유리한 위치에 서 있던 <악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살아가십시요. 하나님께서 소망을 일으켜 주시고, 두려움을 이기게 하시고, 헤치려는 사람들에게서 항상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1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2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4 간사한 혀여 너는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5 그런즉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 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시편 52:1,2,4,5)
본문에는 많은 <책망과 저주>가 나옵니다. 본문 이해를 위해서는 <사무엘상 22장>의 사건을 이해해야 합니다. 다윗은 그 사건을 경험한 후에 이 시편을 짖게 됩니다.
다윗은 사울의 추격을 피해 <아히멜렉 제사장>에게로 피신했습니다. 제사장은 다윗에게 먹을 것을 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도엑>이 그 광경을 보고, 사울왕에게 알려 줍니다. 사울의 환심을 사고 출세 한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사울은 군대를 이끌고 가서 제사장 85명과 그들의 가족들을 모두 죽입니다. <도엑>은 그것이 사울을 위해서 자신이 세운 공로라고 자랑했습니다.
다윗은 <도엑>에 대해서 두가지를 저주합니다. 하나는 도엑의 간사한 혀입니다. 그 때문에 제사장 85명이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엑을 멸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그가 간사한 혀로 많은 사람을 곤경에 빠졌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시고, 자신은 하나님을 영원히 의지할 것이라는 것입니다.(8절)
결국 수 많은 세월이 흘러서 다윗은 왕이되고, 도엑은 멸망합니다. 당장의 유익을 위해서 악을 정당화 하거나, 악의 편에 서는 것은 하나님앞에서 어리석은 일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편에 서시기 바랍니다.
11 주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시온 산은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은 즐거워할지어다. (시편 48:14)
심판이 즐겁습니다. 이상한 말같지만, 성경적입니다. 성도에게는 심판의 날도 즐겁습니다. 왜냐한면 <하나님의 공의>가 증명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심판에 대한 <즐거움>을 가장 잘 말해준 성경이 <하박국서>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남유다의 타락때문에 심령이 답답했습니다. 권력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억누르고 빼았았습니다. 재판관들은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떵떵거리며 살았습니다. 그때 하박국 선지자가 따지듯 하나님께 묻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보시고 가만히 계시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박국 선자지에게 <심판>을 예고하십니다. 그들을 심판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응답에 하박국 선지자는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굽어지지 않았기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그 심판을 <부흥>이라 말하며, 그 부흥을 속히 이루어 지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성도가 <악>에 대해서 <참고 인내 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도가 대단히 착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이 악을 심판 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악이 심판을 당하는 날, 성도는 <하나님의 공의>가 거짓이 아님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 하십시요.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굽어지지 않습니다.
6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7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 (시편 47:6-7)
하나님은 <무조건> 찬양 받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이 선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코로나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고, 어떤 사람은 가게를 폐업했습니다. 문을 닫는 교회들도있고, 그렇지 않아도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안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떨어지지 않습니다. 비록 그것이 심판의 모양으로 나타난다 할지라도 그 심판 조차도 선합니다. 우리의 눈에는 선하지 않은것 같지만,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는 그것이 선합니다. 그분의 판단이 옳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고, <끝까지> 당신을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에 가면 <결코> 그들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고, 주님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선하심이 우리의 삶에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46:1-3)
본문은 하나님을 <3가지>로 묘사합니다. <피난처, 힘, 큰 도움>입니다.
저자는 어려움이 있을때마다 하나님께 달려가 피했습니다. 아마도 자기만의 장소에서 깊은 기도로 하나님께 나갔을것 같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평안을 주시고, 현실적인 위협에서 그를 보호 하셨습니다.
그는 약해질때마다 하나님께 힘을 구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를 붙들어 주셔서, 두려워 하지 않도록 하셨던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감당할 힘을 주셨던것 같습니다.
시편 저자는 환란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했습니다. 믿음의 길을 가다보면, 예상하지 못하던 때에, 예상하지 못하던 방식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만납니다.
그 하나님을 경험한 시편 기자가 2,3절에서 고백합니다. 어떤 혼란이 와도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에 자신을 완전히 맡겼기 때문입니다.
저에게…그리고 여러분에게…이러한 믿음, 이러한 신앙의 경험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피난처, 힘, 큰 도움>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7 왕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 왕의 동료보다 뛰어나게 하셨나이다 (시편 45:7)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경건은, <교회 생활>에 성공하는 경건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옳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앱에 날마다 오늘의 말씀이 뜹니다. 새벽 산책을 할때마다, 그 성경구절을 보면서 주절거리는데, 오늘 말씀은 잠언 21:3절이었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옳은일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 더 받으실만한 것이다”라는 구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큐티 성경구절도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왕을 그 동료들보다 더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이유는 그 왕이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했기>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높이시고, 보호하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은 <예배당 모범생>이 아닙니다. 내가 사는 세상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옳은 일을 행하며 사는 삶>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예배당용 믿음>이 아니라, <일상에서 드러나는 믿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인정하시고, 보호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누가복음 16:13)
사람은 둘중에 하나를 섬깁니다. <하나님> 아니면 <돈>입니다. 그렇지 않다고요? 아닙니다. 사람의 모든 <동기의 끝>에 가보면, 둘중에 하나가 있습니다. 돈이나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도 돈이 필요합니다. 돈이 중요한지 알고 있습니다. 돈을 추구하지 않고 살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결국 무엇을 선택하는가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말 해줍니다.
우리의 믿음은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 가려져서 <진위>를 판단하기 힘듭니다. 목사라는 타이틀, 예배 참석, 정기적인 헌금, 때로는 사람을 돕는 봉사가 우리 삶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보일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대단한것은 그런 삶의 모든 이유가 결국 <돈>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과 봉사의 이유가 결국 돈인 것입니다.
둘중에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성경은 둘 다 섬길수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주인 삼으시기 바랍니다.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 하나님이 주인 이심을 삶으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그 사람들에게 약속하십니다. 그러면 당신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우시겠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필요한 돈을 당신이 주시겠다고 말입니다.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 났으며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누가복음 15: 28, 32)
<내가 옳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들을 <자기 의>가 강하다고 말합니다. 자기 의가 강해지면 1) 내가 기준이 되어 다른 사람을 <판단>합니다. 2) 나에게는 어떤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탕자의 비유속에 두 아들이 나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집을 나가, 방탕하게 살다가 거지가 됩니다. 그러나 첫째 아들은 성실하게 아버지와 함께 살았습니다.
거지가 된 아들이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에게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그 아들을 기쁨으로 받아주고 잔치를 베풀어 줍니다. 그 광경을 본 큰 아들이 분노 했습니다. 방탕하게 살다가 돌아온 아들을 그렇게 환대를 해준다고 말입니다.
큰 아들은 자신은 <의롭고>, 아버지에게 더 인정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작은 아들에게 분노하는 것입니다. 큰 아들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앞에서는 그 분노가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아들과 큰아들을 똑같이 봅니다. 큰 아들은 작은 아들보다 조금 지혜로운 처신을 한것 뿐입니다. 조금 참으면 아버지의 유산이 모두 자신에게 오는데, 괜히 아버지의 눈밖에 날 행동을 할 필요가 없던것입니다. 작은 아들은 영악하지 못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 하고, 아버지의 종이 될것을 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속에 살 뿐입니다.
우리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누가복음 15:4)
교회는 의외로 담장이 높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가기를 주저합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자신의 삶과 너무 다른 곳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교회에서 소홀히 여겨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타락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고, 교회가 정한 기준에서 멀어진 사람들입니다. 대표적인 부류가 <세리와 창녀>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잃어 버린 한마리 양>으로 비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양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교회의 담장은 늘 낮아야 합니다. <세리와 창녀>같이 여기는 사람들도 언제든지 들어올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너무 세련되면 그런 사람들이 올수가 없습니다. 교회가 너무 부유하면 그런 사람들이 올수 없습니다.
은혜와 평강교회는 조금 촌스런 교회이길 소망합니다. 은혜와 평강교회는 조금 만만해 보이는 교회이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아픈고, 능력이 없고, 심지어 방탕한 사람들까지 언제든지 교회에 들어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목사나 여러분도 만만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담장은 늘 낮아야하고, 누군가 들어오기에 만만해야 합니다.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 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누가복음 14:27-28)
예수 믿는 것이 <죄 사함>을 받는 길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어떤 대가입니까? 믿음을 지키다가 겪는 불이익입니다. 어떤때는 가족과 분리되어야 하고, 어떤 때는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믿음에는 각자가 져야 하는 <자기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를 지지 않고서는 믿음을 지킬수 없습니다.
<목사>인 저는 제가 져야하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해!”라고 말할수 없습니다. 그것이 내가 져야할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힘들어도 지고 끝까지 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망대 짓는 사람의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망대 짓는 사람이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않고, 짓기 시작하면 중간에 멈추고, 사람들의 비웃음 거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각자가 져야 할 자기 십자가가 있습니다. 예수님때문제 져야 할 십자가입니다. 믿음때문에 져야 할 십자가 입니다. 그 십자가를 지시기 바랍니다.